법원이 10일 한국앤컴퍼니 조양래 회장의 가사 조사를 진행한다. 조 회장 자녀들은 그룹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번 가사 조사 결과가 이 갈등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앤컴퍼니그룹 본사.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제공
10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조양래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서울가정법원의 한정후견 조사를 받는다. 조 회장이 85세의 고령인 점을 고려해 조사관이 조 회장을 방문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사 이후 조 회장은 서울가정법원과 업무 협약이 체결된 의료기관에서 신체감정을 받는다.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이렇게 3곳인데, 이 가운데 서울대병원은 조 회장의 진료 병원으로 기존 진료 기록을 이미 법원에 제출한 만큼 객관적인 검사를 위해 나머지 2곳 중 한 곳에서 감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관련 절차가 끝나면 법원은 조양래 회장을 소환해 심문을 진행한다. 가사 조사와 관련된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 작성되는 보고서는 재판에 증거로 활용된다. 심문과 추가 소명자료 등을 통해 법원이 일정 기간 내 후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보통 3∼4개월이 걸린다. 코로나19 여파를 고려해도 올해 안에는 1차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 조양래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신청한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에 따른 후속조치다. 앞서 조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체(23.59%)를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넘겼다. 이후 그룹은 사실상 조 사장 체제로 굳어졌다. 조희경 이사장은 이 같은 아버지의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조 이사장은 “아버지의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졌고 건강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달 뒤인 8월엔 장남 조현식 부회장도 청구인과 같은 자격을 갖는 참가인 신청서를 내면서 조 이사장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차녀 조희원 씨도 조양래 회장의 상태를 염려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경 이사장과 조현식 부회장은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가정법원에 출석해 면접조사를 받았다. 반면 조현범 사장은 성년후견을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해 조 이사장, 조 부회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향후 법원이 조양래 회장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면, 조 회장이 조현범 사장에게 자신의 지분을 넘겨준 것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지분 이동이 없던 일이 되지 않더라도 추후 조 회장이 자신의 재산을 조 사장에게 증여, 상속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어떤 경우든 조 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반대로 조 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장남과 장녀 쪽 주장이 힘을 잃으면서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될 수 있다.
결과가 나오려면 수 개월이 남았지만, 일각에선 조양래 회장의 가사조사 또는 신체 감정에 대한 내용이 미리 알려질 경우 오는 3월 30일 열리는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러지의 주주총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현식 부회장은 한국앤컴퍼니 주총을 앞두고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임명해달라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했다. 그는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히며 직을 내걸기도 했다. 조희경 이사장도 계열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이혜웅 비알비코리아 어드바이저스 대표이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로 제안했다.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참여, 기업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상법이 개정되면서 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최대 3%까지만 인정돼 경영권 분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사회는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측의 주주제안과 별도로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주총은 장남·장녀와 차남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