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근은 “윤 전 총장의 발언들이 달라졌더라”며 “전에는 (정치 참여 얘기에 대해) ‘임기를 채울 것’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면, 올해 초부터는 전과 다른 뉘앙스로 얘기를 해서 ‘정치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달라진 행보를 설명했다.
정치계는 물론 법조계도 윤 전 총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벌써부터 윤 전 총장의 대선 참여 가능성을 상정해 ‘캠프 멤버’가 거론되기도 한다. ‘검찰 밭’이 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 구체적인 이름도 거론된다. 하지만 측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 전 총장은 한동안 칩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도 책 집필이나 강연 등으로 운신의 폭을 조금씩 넓힐 것으로 보인다. 법조인의 입장에서 검찰개혁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조언과 비판을 하면서, 정치인의 역할을 찾아갈 것이라는 추론이다.
3월 4일 오후 대검찰청에 도착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 앞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한동안 칩거할 듯
검찰총장직 사퇴 이후 윤석열 전 총장은 대외 활동 없이 칩거 중이다. 3월 7일 잠시 집을 나서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지만 공개된 행보는 아니었다. 윤 전 총장이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전까지는 공개 행보를 하지 않고 칩거하며 ‘물밑 접촉’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사람은 “퇴임 후 행보를 묻자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며 “사의로 항의의 뜻을 내비쳤으니 4월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흐름을 지켜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려고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김웅·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등 검찰 출신 야권 정치인들과의 교류도 당장 가능하지만, ‘정치적’이라고 비춰질 행보에는 신중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윤 전 총장은 대검 연구관들과의 마지막 간담회 때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찰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검찰 관련 이슈에 입장을 내비칠 것을 시사했을 뿐, 정치 참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사회 이슈, 정치적인 메시지 전달 가능성도 낮다. 윤 전 총장 지인들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앞선 법조인은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기성 정치인과 다른 ‘검사’였던 사람”이라며 “정치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것도 아닌데 SNS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전 총장은 사임한 뒤에도 자신의 카톡 프로필을 변경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징계 때 카카오톡 프로필 남김 말을 ‘Be calm and strong’(침착하고 강렬하게)이라고 바꿨던 윤 전 총장은 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Be calm and strong’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대어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노인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던 말이다).
적극적인 소통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의 소통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저서 출간이나 강연 등을 통한 메시지 전달 방식이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자택에 머물며 검찰개혁을 포함한 사법 질서나 법치주의·헌법 질서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에 정통한 윤 전 총장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치주의에 관한 내용을 논문이나 책으로 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외부 강연 활동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이 역시도 4월 보궐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고, 정치권의 제안으로 이뤄지는 강연은 더욱 신중할 것이라고 한다. 측근들에게 ‘검찰개혁 관련 책을 쓰겠다’고 얘기했다는 보도 등을 감안할 때, 책 출간 후 이를 토대로 한 강연도 가능하다.
윤 전 총장의 다른 측근 중 한 명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사람이 옷을 벗자마자 정치권의 제안으로 열리는 강연에 참석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모양새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 사람”이라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저서나 논문 발표와 같은 명분을 만든 뒤, 검찰개혁이나 민주주의와 헌법, 법치주의 등에 대해 대학교 강연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적’이라고 비춰질 행보에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사의를 표명한 윤 전 총장이 대검찰청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검찰 이슈, 언론 통해 비판
검찰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윤석열 전 총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비판에 나섰다. 아내 사무실을 찾았던 다음날 ‘조선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LH 투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표가 수리되고 난 뒤 처음으로 나온 입장 표명이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불공정과 부정부패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수사 필요성을 강조,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으로 빈틈이 생겼음을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과거에는 이런 사안은 (검찰이) 수사를 즉각 개시했다. LH 직원을 전수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며 “선거를 의식해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소통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검사장 출신 법조인은 “윤 전 총장은 특수수사를 하면서 ‘큰 얼개’를 만들어 놓고 상황마다 발생하는 변수들을 잘 통제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사람”이라며 “지금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자리를 가기보다는 신중하게 앞으로 나갈 방향의 큰 얼개를 짜야 할 시간이라고 판단해 주변 조언을 받아가며 방향을 설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룡’ 윤석열, 추미애가 낳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과도한 행보’가 법조인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걷게끔 몰고 갔다는 평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 “주어진 임기를 채울 것이다. 총장이 내 마지막 자리”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는데, 추미애 전 장관의 무리한 징계 추진 이후 이 같은 발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실제, 추미애 전 장관과의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국정감사 자리에서 퇴임한 뒤 계획에 대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정치 참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을 잘 아는 법조인은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야망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지만 윤 전 총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추 전 장관이 법조인이었던 윤 전 총장을 정치인으로 갈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고 본다”며 “추미애 전 장관의 징계와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및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만 없었다면 윤 전 총장은 그냥 ‘검찰총장’으로 공직을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