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공사 직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제정에 따른 재발방지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사진=연합뉴스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정부와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진상조사에 나섰다. 정부 여당은 법제정 등을 통해 혐의가 드러난 공직자를 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3월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참담하다. 이번 사태로 분노하고 계실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 여당은 이번 사태 해결에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 확인된 투기이익은 필요하다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환수하겠다. 소급적용도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8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공직자의 투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금융범죄와 마찬가지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이익을 환수하겠다”며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이익 환수·투기 공직자의 취업 및 인허가 취득 제한을 포함한 처벌 강화 등 이른바 ‘LH 투기 방지법’을 3월 국회 최우선 처리방안으로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땅 투기를 한 공직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담은 법안을 앞다퉈 발의 또는 준비 중이다. 이 법안들은 토지를 몰수하거나 차익을 환수하는 것은 물론, 이익의 5배 벌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제정이 되더라도 이번 수사로 드러나는 혐의자들에게는 소급적용이 안 돼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재 문제의 직원들에 적용 가능한 법률은 부패방지법, 공공주택특별법, LH법 등이 거론된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LH 사태에 대해 앞서 몇 차례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일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 당시 미래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백승주 전 의원을 대표로 한 의원 10명이 2019년 1월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LH 임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거나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 받는 형사처벌 벌금 양형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제22조 비밀누설금지 위반은 현행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벌금을 ‘2000만 원’으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할 경우(제26조 미공개정보 이용금지 위반)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벌금 5000만 원’으로 각각 상향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7개월이 지나서야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을 뿐 소관 위원회의 검토보고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이후 법안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2020년 5월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 법안 역시 기존 법안의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등과 비교해 벌금형이 낮으니 적정 수준으로 올리자는 방안만을 담았을 뿐, 부당취득 재산 몰수 및 가중 처벌 등의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진선미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토교통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05년 2기 신도시 개발 당시에도 파주 운정지구 투기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있었다. 사건을 처음 담당했던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당시 운정 택지개발예정지구 공고일 전에 토지를 매입한 것처럼 토지매매계약서 날짜를 위조한 8개 건설업체를 적발, 업체 대표 5명을 구속기소했다.
이어 고양지청을 포함한 검찰합동수사본부는 투기꾼들에게 내부정보를 제공하거나 허위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해주는 등의 혐의로 공직자 27명을 적발, 이 가운데 7명을 구속했다. 고양지청 당시 간부급 인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시 담당 검사로 직접 수사를 했다”고 기억했다.
윤석열 전 총장 역시 지난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2005년 2기 신도시 건설 땐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로서 파주 운정지구 투기 의혹을 직접 수사한 경험이 있다”며 “땅과 돈의 흐름을 쫓아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검찰이 공직자들의 혐의를 적발했지만 마땅한 처벌규정이 없어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한 관계자의 말이다.
“고양지청의 다른 담당검사가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현 LH) 전·현직 임직원들의 땅 투기를 적발했다. 하지만 그 검사는 수사를 하고도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조항이 없어 고민을 했다. 이에 국민권위위원회(당시 국가청렴위원회)에 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권익위에는 현재 따로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청렴위의 권고가 나왔는지 17대 국회였던 2006년 12월 윤두환 전 의원 등 의원 21명이 참여해 한국토지공사법 및 대한주택공사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개정안은 “한국토지공사 직원이 공사에서 조성한 토지를 본인 또는 가족 등의 관련인이 매입하게 하거나 미분양토지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사들이는 등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한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이 중 일부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공사는 내규를 통해 직원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나 실효적인 수단이 되고 있지 못하므로, 금지규정을 법률에서 직접 규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법안은 “공사 임직원은 그 지위 또는 내부정보를 이용해 공급하는 토지 등을 본인 또는 제3자가 부당하게 공급받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위반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계처분을 하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인 건설교통위에 상정돼 소관위 회의를 거쳐 2007년 6월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하지만 소관위에서 법안 내용은 수정됐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낮춘 것.
공사 내부규정인 ‘취업규칙’ 및 ‘공사와 임직원간의 거래제한지침’이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고, 부패방지법이 개정안의 취지를 상당부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8년 동안 국회가 방치해온 이해충돌방지법 역시 통과됐다면, 이번 LH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지난 2013년 국회 논의과정에서 제외된 이후 제출되는 법안마다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정부안을 포함해 5개 법안이 올라와있지만 단 한 차례 심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러 경고음에도 입법부가 강력한 처벌 규정을 정하지 않으면서 LH 임직원들의 부정행위는 다시 반복된 것이라는 비판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사태로 적발되는 임직원에 대한 처벌 소급적용에 대해 고민 중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법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위헌요소를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이 네 가지 정도 있다”며 “친일재산귀속특별법 사례가 있다. 또한 혐의자들이 아직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았다. 이에 처벌 적용시점을 부당이익의 발생시점으로 하면 소급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