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해외에 도전하지 않는 ‘내향적인’ 일본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가 유행 중인 도쿄 하라주쿠 거리의 젊은이들. 사진=교도/연합뉴스
사이토 치히로와 사이토 세이카는 쌍둥이 자매다. 그래서 그런지 공통점도 많다. 26세인 그녀들은 도쿄 북부에서 함께 자랐다. 둘 다 영화 마니아라는 점을 포함해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하다. 하지만 20대에 들어서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치히로는 약학을 공부하기 위해 헝가리로 떠났고, 세이카는 예술 계열의 일본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치히로는 자신에 대해 “언제나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한편 세이카는 “해외 유학을 고려해봤지만, 결국 일본에 남기로 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이카는 “더욱이 해외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며 솔직한 심경을 내비쳤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해외에 도전하지 않는 ‘내향적인’ 일본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해외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일본 정치인 및 언론인, 비즈니스 리더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전체 대학생 중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단 4%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사에서도 ‘유학을 가고 싶다’고 응답한 젊은이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은 66%, 독일의 경우 51%가 유학을 가고 싶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해외 근무에 대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일례로 2017년 일본 산업능률대학이 조사한 결과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직장인의 비율은 60%에 달했다. 2007년 같은 설문조사에서는 36%였으니, 10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과거와 비교하자면 분명 큰 변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하려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엔고(円高) 덕분에 장학금이나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유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은행의 경우 매년 수백 명의 직원들을 미국 비즈니스 스쿨로 연수를 보내기도 했다. 오사카 세이케이대학 경영학부의 히라가 도미카즈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했을 당시 교실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학에 그렇게 큰 가치를 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일본 네티즌의 의견. 그 기간 일본에 있어도 배울 건 많다고 주장한다. 사진=야후뉴스 댓글 캡처
내향적인 일본 젊은이들과 달리, 일본 내 중국인과 인도인의 유학생 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일본의 강력한 노동시장”이라고 분석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퍼지기 전, 3년간 일본의 실업률은 3% 이하에 머물렀다. 사실상 완전 고용상태를 유지해왔던 것.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이 낮아 청년들이 쉽게 취직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 해외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더 이상 메리트가 없다”고 덧붙였다.
도호쿠대학 국제전략실의 요네자와 아키요시 교수는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노동 시장 구조가 학력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도 배경”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과 국내 대학 졸업자의 급료 차이가 거의 없으며, 해외에서 일한 경험도 대우에 반영되지 않는다.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가토 에쓰코 교수는 “그 대신 많은 기업들이 ‘일본인다운 사원’을 중시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글로벌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해외지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일본 내에서 근무처를 옮기는 편이 승진이 빠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본 젊은이들이 해외 도전을 꺼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판단의 근거로 꼽히는 것이 “일본 젊은이들 상당수가 ‘영어 알레르기’, 즉 외국어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글로벌 교육기업 ‘EF 에듀케이션 퍼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영어능력순위를 보면 일본은 해마다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2020년에는 100개국 가운데 55위를 차지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한국은 32위, 중국은 38위를 기록해 ‘보통’ 등급의 성적을 거뒀다.
앞서 인터뷰한 사이토 세이카의 경우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헝가리로 떠난 치히로만큼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면서 “안정적인 일본에 있으면 편하다는 점도 대학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정부로서는 국내에만 머무르는 내향적인 젊은이의 증가가 자못 곤란한 문제일 것”이라고 평했다. 왜냐하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어 하기 때문.
또 다른 네티즌은 “현재 일본은 열심히 공부한 것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토양이 유실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사진=야후뉴스 댓글 캡처
이에 대해, 히라가 도미카즈 교수는 “일본은 뒤처지고 있으며 그 쇠퇴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미 아시아나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쇠약해지고 있고 그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젊은이들을 적극 채용하지 않는 것은 ‘해외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요네자와 아키요시 교수 역시 “다른 나라들의 경우 해외로 나가는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다 그들을 지원하는 움직임도 있다”면서 “일본도 그 흐름을 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기사가 보도되자, 일본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열심히 공부한 것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토양이 유실되어 버린 것 같다”고 적었다. 그는 “고졸자든 대학원 수료자든 ‘평등하게’가 옳다고 여겨져 오히려 오래 공부한 사람은 그 기간 학비만 지불하고, 배우면 배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해외로 나가려면 나름 경비가 들지만 그에 맞는 평가가 국내에는 없다. 중국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미국이나 유럽도 일본보다는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지향적인 젊은 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글도 눈에 띄었다. 그는 “지금 젊은이들은 해외는커녕 국내에서도 전근을 매우 싫어한다”며 “환경 변화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마치 노인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안정지향적인 것을 비난하지만 솔직히 인생을 좌우하는 건 결국 돈 아니겠느냐”며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의견을 달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l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