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훈 사장은 취임 후 각종 신사업에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추진했던 신사업을 정리하고 본업인 철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철근에 대한 전망은 좋은 편이지만 실적 대부분이 철근에 의존하고 있어 경기에 따라 대한제강의 실적 변동성도 클 것으로 보인다.
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은 고 오우영 대한제강 회장의 넷째 자녀다. 2020년 1월,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찾은 오거돈 전 시장. 사진=최준필 기자
오치훈 사장은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사업 외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05년부터 가덕도 내 토지 1488㎡(약 450평)를 보유 중이다. 가덕도신공항이 오거돈 전 시장의 핵심공약이었기에 일각에서는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 사장은 해당 토지를 급매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5일, 황규환 국민의힘 상근대변인은 “급매로 땅을 내놓은 오거돈 전 시장의 조카(오치훈 사장)는 12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게 됐다고 한다”며 “즉각 강력한 진상조사 의지를 밝히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도 오 사장의 투기 사실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오거돈 전 시장 일가가 가덕도 일대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전수 조사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 투기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서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부산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대한제강의 모태는 1954년 고 오우영 대한제강 회장이 설립한 동래공장이다. 오우영 회장이 1975년 별세한 후 그의 장남 오완수 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오완수 회장은 1990년 사명을 대한제강으로 변경했고, 부산 신평공장을 준공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오거돈 전 시장은 오우영 회장의 넷째 자녀고, 오성익 전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은 일곱째 자녀로 알려졌다.
1974년생인 오치훈 사장은 오완수 회장의 장남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제강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오 사장은 컨설팅기업 아서디리틀 서울지사를 거쳐 MaxEV 대표이사로 근무한 후 2001년 대한제강에 입사했다. MaxEV 법인등기부에 오 사장이 대표로 근무한 기록은 나오지 않아 미등기임원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MaxEV는 이장석 전 서울히어로즈 대표가 2001~2002년 대표로 있었던 컨설팅업체로 2002년 10월 해산했다.
오치훈 사장은 2006년 대한제강 상무, 2007년 부사장을 거쳐 2014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대한제강은 2012~2014년 3년 연속으로 매출 1조 원을 넘겼지만 오 사장 취임 후인 2015년과 2016년의 매출은 각각 8897억 원, 8979억 원이었다. 주택 경기가 살아나면서 대한제강의 2017년 매출은 1조 2264억 원으로 상승했지만 이후 2018년 1조 1338억 원, 2019년 1조 217억 원, 2020년(잠정) 1조 961억 원으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대한제강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 공급 정책으로 인해 철근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현욱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철근 수요는 올해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전방산업을 고려하면 최소한 2023년까지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철스크랩(철근의 원재료)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철근 가격 인상으로 실적 증가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대한제강 매출에서 철근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또 대한제강은 내수 시장에서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제강에 따르면 2020년 1~9월 대한제강의 철근 수익 4604억 원 중 99%가 넘는 4566억 원이 내수로 발생했다. 국내 건설경기가 불황이면 대한제강의 실적도 부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한제강 매출에서 철근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국내 건설경기가 불황이면 대한제강의 실적도 부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 때문인지 오치훈 사장은 한때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대한제강은 2017년 광케이블업체 유나이브를 107억 9200만 원에 인수했다. 유나이브는 2015년 매출 76억 원, 순이익 4억 원을 거둔 흑자 기업이었지만 2016년에는 매출 33억 순손실 26억 원을 기록했다. 대한제강이 인수한 후에도 유나이브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25억 원, 21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매출도 예전만 못한 20억 원 수준이었다. 결국 유나이브는 대한제강 실적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2019년 매각됐다.
유나이브의 실패 이유로는 광케이블 원재료인 광섬유의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꼽힌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글로벌 광섬유 가격은 2016년 1f·km당 7달러(약 8000원) 수준에서 2017년 말 12달러(약 1만 4000원)까지 치솟았다”며 “중국 기업들이 광섬유 생산량을 크게 늘리면서 2018년 말 광섬유 가격이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강은 2016년 대한투자파트너스를 설립했고, 2019년에는 경남벤처투자를 설립해 벤처캐피털 사업에도 진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대한투자파트너스는 2020년 7월 대양금속에 매각됐고, 경남벤처투자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제강은 올해 2월 부산 센텀사이언스파크 건물을 매각하며 부동산 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대한제강은 센텀사이언스파크 매각에 대해 “투자자산 회수 및 차익실현을 통한 자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것”이라고 공시했다.
대한제강은 신사업을 하나둘 정리 중이지만 철근 사업은 강화하고 있다. 2020년 9월, 대한제강은 철근 전문업체 YK스틸을 인수했다. 국내 철근 생산 3위 업체인 대한제강이 5위 업체 YK스틸을 인수하면서 2위인 동국제강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오치훈 사장은 직접 YK스틸 대표이사로 취임해 철근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철근 사업에 대한 당장의 전망은 나쁘지 않지만 국내 건설경기에 따라 수익이 언제든 감소할 수 있다.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신사업에 연이어 실패한 오치훈 사장으로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잘나가는 기업이라 해도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거나 여러 이유로 시장이 사라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신규 사업 진출은 대비책 중 하나이며 사업 다각화는 모든 기업의 숙명적인 과제”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