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순장조 내각’ 퍼즐 맞추기에 돌입했다. 시기는 미니 대선인 4·7 재보궐 선거 직후가 유력하다. 새 국무총리를 비롯해 경제라인 등이 순장조 내각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 인적쇄신은 ‘포스트 문재인’ 구도와 직간접으로 맞물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순장조 내각의 교체 폭에 따라 하부 조직에선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정무직)’과 ‘늘공(늘 공무원인 직업 공무원)’이 눈치게임에 들어갈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3월 5일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순장조 내각의 최대 미션은 ‘정권 보위’다. 임기 말 친위 내각이 누구냐에 따라 정권의 운명은 갈린다. 추(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윤(윤석열 전 검찰총장) 갈등을 넘긴 문재인 정부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에 휘청거리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민주당 핵심 의원은 “정권 명운이 걸렸다”고까지 했다. 4·7 재보선까지 남은 약 한 달간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 추세가 곤두박질친다면, 친위 내각 교체의 폭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순장조 내각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새 국무총리 인선이다. 이는 ‘포스트 문재인’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정세균 총리는 친문(친문재인)계가 물밑 지원하는 제3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애초 청와대는 정 총리를 연초에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코로나19 3차 유행과 백신 논란 등이 터지면서 4월 재보선 후로 교체를 미뤘다. 4월 재보선 전 인사청문회를 개최하면 실익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후임 총리 인선 지연에 한몫했다.
최근엔 LH발 투기 의혹이 정권 전체를 휘감았다. 미래 권력을 꿈꾸는 정 총리도 최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 총리는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한 뒤 4월 재보선 이후 여의도로 복귀할 전망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의 데드라인은 ‘선거일 전 180일’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이르면 4월·늦어도 5월께’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해야 한다.
총리 인선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사제청권의 작동 여부다. 이는 ‘영남·여성·경제형’ 총리로 축약된 후보군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현행 헌법(제87조)에 따르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 각부의 통할권을 가진 총리가 국무위원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대 총리들이 인사제청권을 행사한 사례는 거의 없다. 책임 총리와는 거리가 먼 ‘무늬만 총리’에 그쳤다.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 인선은 총리실이 아닌 청와대 비서실이 주로 담당했다. 청와대가 인사를 한 뒤 총리실로 내리꽂으면, 총리가 형식상 제청권을 행사하는 식이었다. 역으로 실세 총리라면, 인사제청권 행사의 여지는 넓어진다. 여권 시나리오인 친문계의 ‘정세균 옹립’이 현실화한다면, 후임 총리에 ‘정심(정 총리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정 총리 측 관계자는 “인사제청권은 총리의 권한”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말 여의도 안팎에선 정 총리가 후임 총리로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여권 관계자들은 설에 불과한 특정 인사의 실명을 듣자, “(만약에 맞는다면) 깜짝 인사”라고 했다. 정심이 반영된 인사가 막판까지 최종 리스트에 올라있다면, 정 총리와 친문계의 접점 찾기는 한층 수월해진다. 정 총리의 인사제청권 행사 여부가 ‘친문계의 제3후보론 퍼즐’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유력한 총리 후보군은 김부겸 전 의원(영남), 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여성) 등이 꼽힌다. 국무총리 인선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제형)과 원혜영 전 의원(협치형) 등도 후보군이다.
이 중 가장 유력한 콘셉트는 ‘영남형 총리’다. 문 대통령이 호남 총리를 통해 정권 초중반을 끌고 나갔다면, 임기 말에는 지역 탕평책과 함께 차기 대선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으로 영남형 총리를 세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총리가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진 특정 인사도 영남 출신이다. 전북 구심점인 정 총리로선 ‘호남 대선후보·영남 총리’ 전략을 짤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야권 관계자들도 이와 관련해 “여권으로선 최선의 카드”이라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문재인 정부 경제라인의 대대적인 쇄신도 임박했다. 신호탄은 때마다 패싱설에 휘말렸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교체 여부가 될 전망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갈등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던 홍 부총리는 오는 4월 1일이면, 윤증현 전 장관(842일)을 제치고 ‘최장수 재정 곳간지기’ 반열에 오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라는 비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 의중이 담긴 경제 전문가가 ‘마지막 재정 곳간지기’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론되는 후임자로는 그간 경제 컨트롤타워 교체 시기마다 하마평에 올랐던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있다. 그간 가장 많이 거론된 인사는 은 위원장이다. 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수출입은행장을 거쳐 장관급인 금융위원회 수장을 맡은 ‘국제 금융통’으로 불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국제금융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은성수 카드’는 임기 말은 맞은 문재인 정부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만 최근엔 ‘구윤철 카드’ 얘기가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설 연휴를 지나면서 구 실장이 조금씩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구 실장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기획재정부 제2차관 등을 거쳐 국무조정실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다.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과 민주당 여성 중진 의원 등의 이름도 꾸준히 거론된다.
문 대통령이 ‘홍남기 교체’로 가닥을 잡으면, 장기 집권 중인 산업통상자원부(성윤모)와 고용노동부(이재갑), 해양수산부(문성혁), 농림축산식품부(김현수) 등 경제 부처에도 쇄신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국회 한 보좌관은 “새로운 경제 컨트롤타워와 손발을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교체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강점 등을 청와대 라인에 어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장조 개각인 만큼, 상대적으로 메리트는 떨어지지만 문재인 정부 장관직에 오를 마지막 기회라는 이유에서다. 현역 의원 입각은 청와대도 반기는 카드다. 청와대 경험이 있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현역 의원 등용의 장점은 ‘인사청문회 프리 패스권’”이라며 “보수든 진보든 임기 말 정부가 이 유혹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이번 순장조 개각은 청와대 경제라인 인적쇄신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관전 포인트는 김상조 정책실장의 교체 여부다.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호 전 민정수석 등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으나, 문 대통령은 김 실장의 사표만 콕 집어 반려했다. 문 대통령이 김상조 교체 카드를 택한다면, 이호승 경제수석도 자연스럽게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1년 뒤 지방선거에 출마할 청와대 행정관 등도 서서히 몸풀기에 들어갔다. 최근 청와대 내부에선 어공과 늘공의 눈치게임이 시작됐다고 한다. 오는 2022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인 어공은 순장조 개각 전후로 사임하고 지역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 복귀를 희망하는 어공들도 늘고 있다. 그간 어공에 치인 늘공 일부도 과도한 업무 탓에 청와대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의원은 “4·7 재보선 이후 개각을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선거 결과가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