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디플레이션 공포를 벗어나 이젠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처지가 됐다. 시장도 오랜 유동성 랠리가 끝을 보이며 실물 랠리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13년 만에 재가동된 인플레이션 방정식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자산시장은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로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랠리를 이어왔다.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돈이 증시 기술주로 쏠리면서 실물경제 자극 효과는 제한됐다. 모바일 혁신으로 임금 상승은 제한되고, 셰일가스 개발로 국제유가도 하향 안정되면서 물가는 좀처럼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또 다시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자,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원유와 농산물 가격 상승은 물가를 자극, 금리를 높이면서 채권과 주식의 수익률 격차(yield gap)를 좁히고 있다. WTI(근월물)의 최근 5년 평균선이 58달러 선인데, 현재 가격이 65달러다. 올 전망은 이미 80달러 선까지 가 있다. 저금리에서 용인됐던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은 이제 가격부담이 되는 모습이다. 그동안 많이 올랐던 기술주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다.
#긴축발작 3.0…‘태풍의 눈’ 된 미국 국채 발행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통화정책 긴축을 둘러싼 시장 요동이 두 차례 있었다. 2013년 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와, 2015년 말 실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을 때다. 지난 2월부터 세 번째 ‘버전’이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채 수익률과 장단기 금리차는 1차는 물론 2차 때와 비교해도 한참 낮다. 하지만 시장은 올해 1조 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포함한 대규모 국채 발행 물량을 받아내야 한다. 연준이 기준금리 유지는 공언하면서도 추가적인 국채 매입을 회피하고 있어서다. 미국 국채의 적정 발행수익률이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국채를 매입할 투자자들이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실질 수익을 내는 수준이다. 물가가 오를수록 투자자의 눈높이는 오르게 된다. 올해 시장의 미 10년 국채 금리 예상치는 1.9%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국채 발행이 지속된다면 올해 금리는 우상향할 가능성이 크다.
#유동성에서 실물로…패러다임 바뀌는 증시
정부의 국채 발행은 경기 부양 자금 마련을 위해서다. 금융시장에는 부담요인이지만, 자산시장에 쏠렸던 자금을 실물경제로 돌리는 과정이다. 기업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단기금리는 연준 등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는 한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 급격한 부채 축소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글로벌 증시가 부진한 듯 보이지만 고점 대비 조정폭을 보면 미국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만 7% 넘게 하락했을 뿐 S&P500 낙폭은 -1%대에 그치고, 다우존스는 오히려 신고가 행진이다. 유럽 증시도 완만하지만 전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다만 아시아 주요국은 조정폭이 크다. 우리와 중국이 -9~-11%, 일본과 대만이 -4~5%대다. 연초 이후로 보면 대부분의 증시가 플러스다. 다만 우리 증시는 10% 하락 기준을 충족한다. 코로나19로 급락했다 반등한 폭이 가장 큰 탓에 조정의 골도 깊은 모습이다.
#코스피 반등 환율이 변수
우려했던 미국 재무부의 국채발행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직 유럽과 일본 국채 수익률은 마이너스 영역인 만기들이 꽤 있다. 연 1.5%가 넘는 미국채(10년 기준) 수익률은 매력적일 수 있다. 미국 국채를 매입하기 위한 글로벌 자금의 이동은 달러 수요를 촉발시킬 수 있다. 달러 강세, 신흥국 통화 약세다. 최근 5년간 환율과 외국인 주식순매수 추이를 보면 뚜렷한 상관관계가 드러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달러화 환산 자산이 줄어들게 된다. 원화 약세, 즉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게 유리하다.
코스피는 단기·중기 이동평균선인 20일선(3060)과 60일선(3000)을 지키고 있다. 다음 지지선은 120일선으로 약 2730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고점 대비 20% 아래로까지 떨어져 약세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폭락 후 단 한 차례도 약세장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120일 지지선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이다. 외국인의 환차손 우려를 상쇄할 만한 재료는 4월에 나올 1분기 실적이다.
#채권·금 쇼트(short)…주식·원자재 롱(long)
경기가 좋아진다면 채권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채권 보유자에게는 가격하락이다. 채권 이자수익이 높아질수록 안전하지만 현금흐름이 없는 금은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미국 국채 발행시장이 글로벌 자금을 흡수해 달러가 강해지는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기가 좋아지면 생산과 소비가 활발해진다. 생산은 원자재 수요와 직결된다. 소비가 늘면 기업 실적이 개선된다. 증시가 반등한다면 주도주가 달라질 확률이 아주 높다. 보복소비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
원자재는 수급을 잘 살펴야 한다. 산업별로 수요 증가가 얼마나 예상되는지와 어느 정도의 공급 여력이 존재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실물, 선물, 관련주 가운데 어떤 투자접근을 택할지 신중할 필요도 있다.
주식은 실적이 중요하다. 보복소비로 인한 초과수요를 가격상승으로 전가시킬 시장지배력이 있는 종목일수록 상승 잠재력이 크다. 채권에서도 의미 있는 수익이 나게 되면 주식의 상대적 매력 측정이 중요해진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좌우했던 기술주 랠리에서 외면 받았던 기업분석의 필요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