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그룹은 최근 오너 일가에 유리한 합병을 시도하다 소액주주 반발로 철회하면서 대표적인 소액주주 운동 성공사례로 꼽히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사조산업 본사. 사진=일요신문DB
사조산업은 지난 8일 비상장 계열사인 캐슬렉스서울과 캐슬렉스제주의 합병 결정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앞서 사조산업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흡수합병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합병 철회 공시를 통해 “양사 간 합병절차 진행 과정에서 회사의 내부사정과 경영판단의 사유로 합병 철회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사조산업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조산업 소액주주들은 지난 5일 소액주주연대 카페를 개설하고 사조산업에 대한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법무법인과 법률자문계약을 체결,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했다(관련기사 사조그룹 도 넘은 ‘오너 일가 밀어주기’ 비판 나오는 까닭).
캐슬렉스서울은 사조산업이 지분 92%를 보유한 회사고, 캐슬렉스제주는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의 아들 주지홍 부사장(49.5%)과 주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사조시스템즈(45.5%)가 지분 95%를 보유한 회사다. 주 부사장의 개인회사나 마찬가지인 캐슬렉스제주는 수년간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져오던 터여서 합병 시 캐슬렉스서울이 캐슬렉스제주의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두 회사가 합병하면 주 부사장은 자연스레 캐슬렉스서울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사조산업 소액주주들은 캐슬렉스제주 합병 반대 이후에도 임시주총 개최 및 주주제안, 감사선임 요구 등 경영참여를 이어나갈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종국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오너 회사를 상장사들 위에 옥상옥으로 만들어 이익 몰아주기를 해가며 상장사 실적을 떨어뜨리고, 상장 계열사로 하여금 부당대여금 등을 오너 개인회사에 지원해 사익편취를 하며 편법 승계하는 재벌그룹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너 일가의 변칙적 승계를 위해 사조그룹 상장사들이 활용되며 자산가치가 저평가되고 이로 말미암아 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조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룹 지주사 격인 사조산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26.12%를 보유한 비상장사 사조시스템즈다. 주진우 회장의 사조산업 지분율은 14.24%, 주지홍 부사장은 6.9%다. 그런데 사조시스템즈의 최대주주는 주 부사장으로 지분 39.7%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 회장도 13.7%를 갖고 있다. 오너 일가, 특히 주지홍 부사장이 비상장사 지배력을 통해 그룹 지주사 격인 사조산업을 지배하고 이어 나머지 계열사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오너일가(주지홍 부사장)→사조시스템즈(비상장)→사조산업→나머지 계열사’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다.
소액주주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캐슬렉스서울 부지의 자산가치 저평가다. 사조산업의 자회사 캐슬렉스서울이 보유한 비영업자산 가치(부동산 가치)가 시가총액을 상회하지만, 사측이 승계를 고려해 자산재평가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주지홍 부사장이 주식 매입이나 상속을 통해 현재 6.9%인 사조산업 지분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조산업의 주가가 낮을수록 유리하기 때문.
과거 증권가에서도 소액주주들의 주장과 비슷한 분석이 나온 바 있다. 2018년 1월 22일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사조산업의 호실적을 전망하며 “사조산업 및 연결 자회사가 보유한 비영업자산 가치는 현재 사조산업의 시가총액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충청북도 청원의 30만 평 부지(장부가 68억 원), 제주도 제2공항 부근 부지 1만 4000평(장부가 34억 원), 연결 자회사 캐슬렉스서울의 경기도 하남시 골프장 및 부지(장부가 45억 원)는 자산 재평가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향후 자산 재평가에 따른 주가 리레이팅이 기대되는 대목”이라며 “견조한 실적개선 및 풍부한 자산 가치 감안 시 현저히 저평가되어 있다는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사조산업의 주가와 캐슬렉스서울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사조산업 및 연결 자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현 시세로 재평가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2월 28일 종가 기준 6만 8300원이던 사조산업 주가는 3월 11일 종가 기준 4만 900원으로 하락했다. 현재 사조산업 시가총액은 2045억 원이다. 이마저도 지난 5일 소액주주연대가 카페를 개설하고 경영참여를 밝힌 이후 상승한 가격이다.
재무제표에 반영된 장부가액도 요지부동이다. 캐슬렉스서울의 2019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캐슬렉스서울의 유형자산 장부가액은 총 960억 원이다. △토지 564억 원 △건물 155억 원 △구축물 100억 원 △조경수목 30억 원 등이다. 2010년 감사보고서에서 토지에 대한 장부가액이 564억 원으로 기록돼 있는 것과 비교해봤을 때 지난 10년간 가격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송종국 대표는 “사조산업 핵심자산인 캐슬렉스서울 부지 56만 평(184만㎡) 가운데 2400평이 위례신도시 택지개발로 160억 원에 수용된 것을 감안할 경우, 나머지 부지의 자산가치는 약 4조 원대로 추정된다”며 “상속 승계를 위해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아 전체주주에게는 사조의 자산과 이익은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