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건설이 인수한 르메르디앙호텔. 한때 이곳에는 폭행사건으로 논란이 된 클럽 버닝썬이 있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벼랑 끝에 내몰린 호텔업계
지난 3월 10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중앙회)는 3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관광업계에 대한 특단의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국회 여·야 정책위의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중앙회는 여행업을 집합금지 연장 업종에 준하는 지원 대상으로 정하고 호텔업 재산세 경감을 위한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호텔산업이 생존 마지노선까지 몰렸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문화·체육·관광 분야 코로나19 피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관광업계 피해액은 14조 10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 중 호텔업(4조 원)은 여행업(6조 4000억 원)에 이어 피해가 두 번째로 컸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9월 국내 호텔업 객실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7.7% 감소했다. 호텔업 직원(정규직·비정규직·일용직 포함) 4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3~4성급 호텔의 매출·고용 하락 폭이 컸다. 1년째 투숙률도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휴업이 속출하고 있다. 4성급 밀리오레호텔과 3성급 더 그랜드 호텔, 뉴 오리엔탈 호텔 등이 문을 닫았다. 외국계 호텔 체인인 데이즈 호텔과 소테츠 프레사 인 서울 명동도 마찬가지다. 1957년 국내 최초 민자 호텔인 사보이 호텔도 지난해 9월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휴업한 호텔은 43곳으로 전년(9곳) 대비 약 4.7배 늘어났다. 폐업한 곳은 53곳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는 벌써 26곳이 새롭게 휴업에 들어갔다.
신라·신세계·롯데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희망퇴직을 받거나 현재까지 유·무급휴직을 진행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적자는 쌓이고 있다. 호텔신라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853억 원으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신세계조선호텔)는 전년 대비 5.7배인 70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최대주주인 이마트는 2021~2022년 조선호텔앤리조트 사업에 신규 투자하지 않겠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호텔롯데의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각각 4631억 원, 7685억 원에 이른다. 부채비율은 130.9%에서 162.5%로 늘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호텔롯데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워커힐호텔은 43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GS리테일이 약 76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파르나스호텔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14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은 전년(1750만 명) 대비 85.6% 감소한 250만 명에 불과했다. 업계 추산 전국 호텔들의 평균 객실가동률이 20~30%대로 급감했다. 정상 가동률 범위(60~70%)를 훨씬 밑돈 셈이다.
한국호텔협회 관계자는 “2~4성급 비즈니스호텔들이 외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인한 악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5성급 호텔들은 호캉스(호텔+바캉스), 다양한 이벤트, 홈쇼핑 판매 등을 통해 매출 타격을 상쇄했다.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들은 다른 사업부에 기댈 수도 있다”면서도 “비교적 낫다는 거지 호텔업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대기업도 하나투어처럼 호텔 매각에 나서거나 휴·폐업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이태원 크라운호텔에 이어서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호텔을 인수하면서 향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최준필 기자
#매물로 쏟아지는 호텔·리조트
결국 적자를 견디지 못한 호텔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항공 업황 악화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한진그룹이 호텔 사업을 접은 것이 대표적이다. 칼호텔네트워크는 △그랜드하얏트인천 △제주칼호텔 △서귀포칼호텔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등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한진칼은 100% 지분을 보유한 미국 하와이에 있는 와이키키리조트호텔 매각에 나섰다. 하나투어는 티마크그랜드호텔, 센터마크호텔, 호텔앤에어닷컴 등 호텔 관련 자회사 청산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CDL호텔코리아가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매각을 위해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 신규 개발부지를 찾는 건설사, 디벨로퍼들이 호텔 인수에 나섰다. 디벨로퍼 더랜드는 지난 2월 영업을 중단한 강남 최초의 5성급 호텔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을 3500억 원에 인수했다. 지난 1월 현대건설은 디벨로퍼 웰스어드바이저스와 컨소시엄을 맺고 클럽 ‘버닝썬’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호텔을 7000억 원에 인수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현대건설(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RBDK) 컨소시엄은 이태원 크라운호텔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돌연 크라운호텔은 올 1~2월 2회에 걸쳐 매각을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3월에 다시 매각하겠다고 의사를 번복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매각 관련해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디벨로퍼 MDM그룹은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그랜드호텔’을 2400억 원에 매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워져 저렴하게 나온 호텔을 인수해서 고급 아파트·주상복합 등으로 개발하면 차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며 “특히 서울에 개발할 택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 중심부에 있는 호텔 부지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 곳도 있다. 알펜시아리조트는 4차에 걸친 공개경쟁입찰이 무산됐다. 3월 4일 강원도개발공사에 따르면, 자산처분시스템 온비드를 통해 진행된 알펜시아리조트 공개 매각 4차 입찰에 계약금의 5%에 해당하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한 기업이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매각에 실패하면 강원도개발공사는 파산에 이를 수 있고, 보증·출자기관인 강원도 역시 출혈이 불가피하다. 강원도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1조 6325억 원을 들여 알펜시아리조트를 조성했다. 문제는 리조트 분양에 실패하면서 건설비 1조 4000억 원이 부채로 남았다는 점이다. 이자만 연간 180억 원에 달해 강원도개발공사·강원도의 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 원금과 이자로 6094억 원을 갚고도 7344억 원의 부채가 남은 상태다. 2023년 1500억 원, 2024년 5000억 원의 부채를 일시상환해야 한다.
이와 관련, 강원도개발공사 관계자는 “공개입찰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관심을 보이는 기업을 개별 협상 대상으로 수의계약에 나서면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