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서 드릴작업을 하는 최태원 회장. | ||
그룹 임직원들과의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외부 행사에도 거리낌 없이 나서 업계의 시선을 받고 있는 그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해 SK그룹 사태가 벌어졌을 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인해 수감됐다가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는 시련을 겪었다.
이후 그는 곧장 회사의 경영에 복귀했지만, 외부 활동은 물론이고 내부 임직원들과의 만남조차 크게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예전처럼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SK그룹 내부에서는 최근 최 회장의 모습을 두고 지난해 그룹이 위기를 맞기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활발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최 회장이 빠른 시간 내에 자신감을 회복한 비법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최 회장의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임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오너인 최 회장이 흔들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환경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했다고.
이에 따라 그룹 내부에서는 세칭 ‘회장님 기 살리기’ 프로젝트라는 이례적인 극비 플랜이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의 사태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최 회장에게 임직원들이 자신감을 살려주자는 얘기다.
SK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이 무슨 특별팀을 조직해 기 살리기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최 회장은 물론 임직원들의 사기도 축 처져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확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몇몇 얘기들이 논의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른 사건도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이 경영복귀를 선언한 직후, 한 모임에서 기념사를 하던 중에 원고를 읽어내려가다 주춤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룹 관계자들로서는 최 회장의 이 같은 모습이 여간 당황스러울 수 없었을 터. 이런 일이 벌어진 후 그룹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이후 최 회장의 행보는 달라졌다.
내부직원과의 대화, 외부로의 노출, 해외 순방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내부 임직원과의 모임이 잦아진 점. 최 회장은 지난 6월과 7월 매주 목요일마다 경기도 용인으로 향했다. SK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SK그룹 관계자는 “모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오너와 회사 임직원들 간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냈다”며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자는 의미에서 ‘스킨십’ 경영을 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매주 직원들과 시간을 가진 것이 이런 ‘스킨십’ 경영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다른 시각도 있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충격을 떨쳐버리고 빨리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 부담스러운 외부 인사와의 만남보다는 내부 직원들과의 시간을 자주 갖게 했다는 것.
어떤 이유였든 간에 최 회장은 두 달간에 걸쳐 내부 직원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지속했다. 지난 6월에는 신입사원과의 대화, 7월 신입 팀장급과의 대화, 계열사 임원과의 대화 등 다양한 내부 모임에 참석한 것.
최 회장은 신입사원과의 대화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오버하며, 신입사원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이 이처럼 내부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한 것은 그가 회장에 취임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라는게 SK 관계자의 설명. 사실 이 부분은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몫이기도 했다. 사실상 손 회장의 경영복귀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최 회장이 이 자리를 대신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최 회장은 외부 행사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SK그룹이 전체 계열사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중인 ‘SK 자원봉사단’의 행사에서였다.
SK그룹이 대기업으로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지난 7월 출범시킨 이 행사에는 SK(주)는 물론이고 SK텔레콤, SK글로벌, SKC&C 등 13개의 주력사와 임직원 6천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일 최 회장은 이 모임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깜짝 출연한 것.
그가 ‘사랑의 집짓기 2004’라는 행사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직접 집을 짓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동안 최 회장을 꼭꼭 숨기기에 바빴던 기업문화실에서 최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홍보한 덕분이다.
내달 중순 최 회장은 해외 주주들을 상대로 회사의 미래에 대해 직접 브리핑을 할 예정. 이를 위해 그는 오는 9월 뉴욕으로 떠날 계획이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 등지에서 열리는 SK(주)의 하반기 기업설명회에 직접 참석하기 위해서다. 최 회장이 직접 기업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올 초 주총 이후 주주와의 유대관계 강화 차원에서 오랫동안 논의돼왔던 사항”이라며 “해외주주들과 순차적으로 약속을 잡아 최 회장이 그룹의 향후 비전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오는 9월 초에 그는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SK그룹이 새롭게 만든 ‘베이징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최 회장은 SK그룹의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이다. 원래 이 단체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는 단순한 장학재단이었으나, 보다 전문적인 학술 교류 단체로 만들기 위해 중국 베이징대학교와 교류를 맺었다. 최 회장은 이 행사에 참석해 기념 축사를 읽을 예정이다.
최 회장의 자신감 회복이 그룹의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