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오후 정부합동조사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의혹 1차 조사결과 발표에서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 진주시 LH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정책 실질 실행하는 매머드급 공기업
LH는 국토교통부가 하달하는 정책을 검토 집행하는 국토부 산하 공기업이다. 때론 LH가 정책을 건의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제안을 검토하며 국토부 승인 아래 이를 실행한다. 토지 취득과 개발, 공급, 도시개발정비, 주택 건설 공급 관리가 핵심 업무다.
LH 사장은 조직 전체를 이끌며 국토부와 정책적 협의 후 실행하는 ‘손발’ 역할을 한다. 공식 임명 절차는 공모로 접수한 뒤 LH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해 3배수로 후보자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윈회(공운위)에 올린다. 이후 공운위가 적임자를 선임해 국토부에 임명 제청하고, 국토부에서 대통령에 임명 요청한다. LH 관계자는 “부서 실무자들이 협의하고 최종 결재나 경영 방향은 사장이 정한다”고 설명했다.
사장 아래 상임 기관장과 상임 감사위원도 사장 선임 절차와 같다. 이하 부사장 기획재무본부장, 주거복지본부장, 공공주택본부장 등 각 본부의 장은 사장이 임명 가능하다.
LH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업무 중복 등 행정 비효율을 이유로 2009년에 통합되면서 현재의 거대한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LH 전신 한국토지공사(1975년 설립된 토지금고가 시초)는 정부의 각종 토지정책 사업을 집행한 기관으로 신도시·혁신도시 건설, 경제자유구역 조성, 개성공단 조성 등 남북경제협력사업, 산업단지·물류단지 조성, 지역 종합개발사업 등을 수행했다. 또 다른 전신 대한주택공사(1941년 창립된 조선주택영단이 모태)는 공공분양·공공임대·영구임대·국민임대 주택을 공급하고, 주택건설계획과 택지개발, 도시정비사업을 수행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LH 초대 사장으로는 현대건설 대표와 경동대 총장직을 역임한 이지송 씨가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2대 이재영, 3대 박상우 사장이 그 자리를 지켰다. 모두 국토해양부와 국토부를 거친 인사들이다. 문재인 정부인 2019년 4월 임명된 4대 변창흠 사장은 지난해 말 국토부 장관에 임명됐다. LH는 현재 장충모 부사장이 직무대행을 맡았고, 차기 사장으로 김세영 SH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유력하게 꼽힌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국토부에 있다가 공직을 그만두고 LH 사장을 가는 경우는 많은데 LH 사장에서 국토부 장관이 되는 케이스는 아주 드물다”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 시절 변창흠 사장이 함께 3기 신도시 정책을 실행했기에 정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LH 사장은 정부 기조에 따라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에 청와대 차원에서 내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최근 임직원들의 땅 투기 등 각종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3월 11일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진보당이 정부 합동조사단 1차조사결과 발표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주거안정화 기여…공공만능주의 폐해로 각종 부작용
LH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토지개발과 주택공급을 도맡으며 국가 발전과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수요에 대응해 주거안정화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은 힘을 통해 조직은 막강해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사는 주택의 4분의 1가량을 LH가 공급해오는 등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다하는 나라가 드물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LH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주택관리 공기업”이라고 말했다
개발과 공급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임직원 역시 고도의 청렴도를 요구받늗다. 하지만 최근 임직원들의 땅 투기와 허위 출장 등 부적절한 행위로 신뢰를 잃고 있다. 정부가 국토부와 LH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총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 여기에 ‘가짜 출장’으로 불신을 키웠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LH 직원 2898명이 지난해 3~5월 허위 보고서를 작성해 4억 9228만 원의 출장비를 부정 수급했다. 그러나 LH는 이와 관련 환수 조치 후 어떤 인사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내뱉은 망언으로 공분을 키우기도 했다. 블라인드는 회사 메일 계정으로 인증해야 가입과 글 작성이 가능하다. 블라인드에 한 작성자는 지난 3월 9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서 물 흐르듯 지나가겠지.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고 적었다. 다른 이용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우리 쪽에서 정보 요구해서 투기한 것 몇 번 봤다. 일부러 시선 돌리려고 LH만 죽이기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상식적인 임직원들의 모습은 공공 만능주의의 폐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 주도 공공개발로 LH라는 한 조직만 커지고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쏠려 정보 독점으로 생긴 결과라는 지적이다.
앞서의 심교언 교수는 “LH의 사업 근거인 ‘택지개발촉진에 관한 법률’은 국민 의견 수렴 없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사유 토지 개발을 가능케 하고 있다”며 “토지개발 절차를 LH와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의견 수렴을 거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1980년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은 공공부문이 택지의 취득・개발・공급 및 관리 전 과정을 직접 주도할 수 있게 해 주거용 토지에 있어서도 공영개발이 가능토록 한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모든 공공택지개발을 맡은 LH의 예산과 조직이 비대화하면서 정보를 독점했고, 이를 토대로 투기 현상이 만연해지면서 이 사태가 터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LH 퇴직 직원들이 LH 하청 건설사에 전관예우로 재취업함으로써 카르텔이 형성돼 LH가 해당 건설사에 계약을 몰아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실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LH에서 수의계약을 따낸 건축사무소 상위 20곳(수주액 기준) 중 11곳에서 LH 출신이 대표로 있거나 임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확산되면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정동 국토발전전시관에서 나와 차량에 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내부 통제 강화하고 전관예우 없애야”
이번 사태로 인해 LH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개발 정보를 독점하는 공직자들은 토지 취득을 원천 봉쇄하고 불가피하게 토지 취득 시 사전 허가를 받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LH 퇴직 고위직들의 LH 하청 사업자 재취업 역시 금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재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개발정보가 있는 공기업임에도 감사직에서 직원들을 항상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생기면 소명 요구 및 징계하는 통제 시스템이 없었다”며 “그 시스템을 만들고, LH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다른 공무원들도 내부정보를 접하고 있을 것이기에 LH 감독기관이 어디고 무엇을 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해충돌방지법 도입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금전·부동산 거래, 인허가, 지정, 등록, 조달, 구매 등 직무와 관련해 직접 이익·불이익을 받는 개인·법인·단체(직무관련자)가 자신이거나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인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시 기관장에게 신고하고, 직무 회피를 신청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LH 관계자는 “내부감사는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투명성 차원에서 감사보고서도 올리고 징계 조치도 하고 있다. 다만 조직과 직원 수가 워낙 많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블라인드 글과 관련해서는 “LH 전 직원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조사와 혐의자에 대한 강력 처벌, 재발방지대책 신속 시행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며 “블라인드 운영 구조상 현직 외 파면 해임 퇴직자의 계정이 유지될 수 있어 게시글 작성자는 현직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