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나에겐 그가 남한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된 과정이 특히 흥미롭다. 그의 망명은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 모두에게 죽음이나 지옥 같은 삶을 뜻했으므로, 웬만한 이유나 동기는 그로 하여금 북한을 벗어나도록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그럴 듯한 동기는 자신이 다듬어 낸 이념을 지키려는 욕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체사상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김정일의 권력세습에 이용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웠을 터이고 자신의 이념을 순수하게 보존하려는 열망을 낳았을 터이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겠지만, 그로 하여금 그처럼 커다란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탈출하도록 만든 결정적 요인은 자신의 이념의 일체성을 지키려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귀순한 뒤, 그는 자신의 이념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 ‘밈(meme) 이론’을 상기시킨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의 기본 단위인 아이디어를 밈이라 불렀다. 그는 밈들이 사람이나 고등동물의 뇌에 자리 잡고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유전자들이 생명체들의 몸속에 자리 잡고 진화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 몸이 거기 깃든 유전자들의 생존과 전파를 위해 존재하듯, 우리 마음도 거기 깃든 밈들의 생존과 전파를 위해 존재한다. 밈들은 자신들에 맞는 마음에 정착한다. 우리 마음이 자유롭게 밈들을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뇌에 깃든 밈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한다. 즉 우리 마음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라기보다 거기 자리 잡은 밈들이라는 얘기다. 아주 낯설고 이상한 주장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도킨스의 주장을 떠받치는 증거들은 많다. 예컨대, 아무도 재산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고 기꺼이 순교해왔다. ‘진리’라 불리든 ‘신의 말씀’이라 불리든, 믿음은 본질적으로 밈들이다.
실제로 밈 이론은 황장엽 선생의 극적인 삶을 어떤 이론보다 잘 설명한다. 보다 중요하게, 그것은 천안함 폭침 사건에 관한 정부의 발표를 그리도 많은 시민들이 믿지 않는 현상을 잘 설명한다. 종류가 같고 친화적인 밈들은 한데 몰려다닌다. 이런 밈들의 집단은 ‘밈 복합체’(memeplex)라 불린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이미 자리 잡은 밈 복합체들은 자신들과 동질적인 밈들만을 받아들이고 이질적인 밈들은 거부한다. 우리 사회의 이념과 체제에 회의적이지만 북한엔 호의적인 밈 복합체를 지닌 시민들은 그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우리 정부의 발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우리를 조종하는 밈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해방시키려고 늘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하는 단 하나의 길은 선입견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밈들을 그 자체의 가치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