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출전 중인 김하성이 타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가 하면 타율은 1할대까지 떨어졌다. 사진=이영미 기자
12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타디움에서 만난 염경엽 전 감독과 샌디에이고 구단 관계자를 통해 김하성의 문제점과 희망을 갖고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김하성은 12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2021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7번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2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을 기록했다. 지난 7일 LA 다저스전에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트레버 바우어에게 3구 삼진을 당했던 김하성 선수는 클리블랜드의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셰인 비버한테도 삼진을 기록했다. 이후 새로운 투수인 히스 헴브리를 맞이해 볼넷을 골라 출루했고, 6회말 타석에서는 아쉽게 내야 땅볼에 그치면서 자신의 경기를 마무리했다.
김하성이 최근 4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고 타율이 0.125로 떨어지자 미국 현지 매체에서도 스윙폼 수정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연수 중인 염경엽 전 감독은 김하성한테서 안타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전 경기들에서 잘 맞은 게 투수 정면으로 가거나 외야에서 잡히는 일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스윙이 커진 부분이 있다. 특히 홈런에 대한 욕심으로 스윙이 커지면서 밸런스가 흔들리기도 했는데 투 스트라이크 전과 후 타격폼을 달리하면서 점차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즉 투 스트라이크 전에는 자기 스윙을, 투 스트라이크 후에는 콘택트 위주의 타격을 하는 것이다. 김하성도 욕심이 있는 선수다.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입성했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조급했던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건 하성이는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강정호나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데뷔 초 엔트리 진입을 놓고 경쟁 선수와 자리다툼을 벌였다면 하성이는 엔트리 진입이 확실시된 터라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기 스윙을 찾다 보면 곧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염 전 감독은 얼마 전 김하성에게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고 말한다.
“자기 스윙을 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야구의 기본을 돌아봐야 한다. 뭔가 변화를 주려 하지 말고 기본을 지켜야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하성이가 히어로즈 입단 후 7년의 프로 생활을 거쳤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루키다. 그걸 인정하고 더 배우며 성장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염 전 감독은 지금의 김하성은 타석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욕심을 냈다가 기본이 무너졌고, 그 무너진 자기 스윙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하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염경엽 전 감독은 “김하성의 엔트리 진입은 확정적인 상황이다.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는 평가를 남겼다. 김하성(왼쪽)은 매니 마차도(오른쪽) 등의 백업 자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사진=이영미 기자
2015년 히어로즈 출신의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포스팅비 500만 2015달러(약 57억 원) 4년 1100만 달러(약 125억 원)에 계약을 맺고 첫 시범경기를 치를 때 그는 시범경기 막바지였던 3월 27일까지 타율이 0.111(27타수 3안타)에 머물렀다. 첫 경기에서 홈런을 만들어냈지만 시범경기 막판까지 빅리그 투수를 상대로 1할대 타율에 그치며 강정호의 앞날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처럼 비춰졌다.
당시 강정호와 유격수 경쟁을 벌였던 조디 머서는 시범경기 타율 0.341을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했다.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현지 기자들은 강정호의 ‘레그킥’ 동작을 지적하고 나섰다. 레그킥으로 인해 투수들의 빠른 공을 공략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강정호는 정규시즌이 시작되자마자 ‘킹 캉’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피츠버그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시범경기에서 18경기 2홈런 5타점 타율 0.200 OPS(출루율+장타율) 0.724를 기록했던 그는 그 해 정규시즌 동안 128경기 15홈런 58타점 타율 0.287 OPS 0.816이란 빛나는 성적을 올렸다.
일본의 초특급 스타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오나티 쇼헤이(LA 에인절스)도 데뷔 시즌인 2018년 시범경기는 11경기 4안타 타율 0.125를 기록했지만 그해 정규시즌에서 22홈런 61타점 타율 0.285의 성적표를 받아 들였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김하성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무적인 부분은 코칭스태프는 물론 현지 매체에서도 김하성의 주루와 수비는 인정한다는 점이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와 4+1년 최대 3900만 달러(약 443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보장액만 4년 2800만 달러(약 318억 원)이고, 연봉이 400만 달러(약 45억 원)다. 메이저리그 루키로선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을 2루수, 유격수, 3루수 등 멀티 플레이어로 활용할 계획이고, 시범경기에서도 세 포지션에 골고루 김하성을 투입시키고 있다. 2루 자리는 제이크 크로넨워스와 교대로 수비를 맡을 예정이고 매니 마차도(3루수)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유격수)가 휴식을 취할 때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을 백업 요원으로 점찍고 있다.
얼마 전 샌디에이고의 제이스 팅글러 감독은 팀 연수 중인 염경엽 전 감독에게 “지금 김하성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염 전 감독은 “휴식”이라고 말했다. 김하성이 캠프 합류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을 소화하고 있고, 경기 출전이 없는 날에도 남아서 개인 훈련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훈련보다 어느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팅글러 감독은 김하성에게 2경기 연속 선발 출전 후 하루나 이틀 휴식을 주면서 체력 안배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스프링캠프 동안 3일 훈련 후 하루 휴식을 취하는 흐름이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프링캠프 종료 시점까지 하루나 이틀 정도밖에 휴식일이 없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김하성으로선 자신이 나서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터. 실제로 괜한 오해 받기 싫어 휴식을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 부분을 팅글러 감독이 파악한 후 적절한 휴식과 경기 출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한 바에 의하면 샌디에이고 구단에서는 김하성의 개막전 로스터 진입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철저히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는 메이저리그에서 김하성의 몸값은 올 시즌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없다고 해도 빅리그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고, 샌디에이고 측에서도 김하성을 빅리그에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포지션에 김하성을 출전시키며 적응할 기회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막전 로스터 진입은 확실하지만 포지션이 주전 2루수가 될지 아니면 제이크 크로넨워스가 주전 2루수를 맡고 당분간은 김하성이 백업 요원으로 활용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12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가 팀 내 최고 스타플레이어인 매니 마차도가 유독 김하성을 잘 챙겨주는 부분이었다. 매니 마차도뿐만 아니라 1루수 에릭 호스머도 김하성에게 다가가 장난을 치고 대화를 이어가려 하는 등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친분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서 김하성 측의 한 관계자는 “그만큼 선수들이 김하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속 94마일(약 151km) 이상의 빠른공에 대처하는 것도 적응하는 과정의 일부다. 염경엽 전 감독은 이와 관련해서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파울이 많다는 건 눈에는 걸리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됐다는 걸 의미한다. 방망이에 커트는 되는데 약간씩 빗맞는 바람에 공이 뒤로 가기도 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한 차례 정타가 나오면 김하성도 그 스피드에 적응하면서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보다 최소 5km/h 이상 빠른 공을 상대하고 있는 터라 여기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다. 적응만 한다면 크게 문제없을 것이다. 시범경기를 치를수록 타석에서 안정을 찾고 생산적인 안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