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태백과 정선 지역 대민 급수 지원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연합뉴스
이강일 상병은 급수차량 주차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다 말고 자신의 차량이 비뚤게 주차된 걸 발견했다. 그는 “주차가 이상하게 됐다”며 함께 파견 나온 동료에게 말한 뒤 자신의 차량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여기 축구 골대는 낮은 것 같다?” 연병장을 가로지르던 이 상병 눈에 축구 골대가 들어왔다. 타 부대로 파견 온 지 9일째, 전투체육에 끼지 못했던 이 상병의 눈엔 이 부대 축구 골대가 어딘가 생경했다. 호기심에 축구 골대에 다가선 이 상병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훌쩍 뛰어 축구 골대 가장 위쪽에 있는 골포스트에 매달렸다. 축구 골대는 이 상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곧장 이 상병 쪽으로 쓰러졌다. 이 상병은 땅에 머리를 찧었고, 골포스트는 이 상병의 이마를 그대로 내리쳤다. 크게 다친 이 상병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군 헌병대는 이 사고를 두고 이 상병이 땅에 고정돼 있지 않은 축구 골대를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고라고 결론지었다. 이 상병 과실이 있다는 말이었다. 국가보훈처 또한 이 상병 사망을 ‘불가피한 사유 없이 본인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경합돼 발생한 사망’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이 상병 가족은 아들에게 과실이 있다는 군과 보훈처의 설명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잃은 슬픔을 떨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11년이 지나서야 아들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사고 원인은 아들의 부주의가 아니었다. 부대에서 눈대중으로 만든 축구 골대가 문제였다. 규격에 맞지 않던 축구 골대가 견딜 수 있는 무게는 고작 45kg 정도였다. 파견 인원이던 이 상병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2008년 여름 강수량은 전년 대비 27% 수준에 불과했다. 2009년 강원도 태백과 정선 지역 겨울 가뭄이 극심했다. 태백시장은 군에 급수 지원을 요청했고, 군은 2009년 1월부터 ‘대민 급수 지원 작전’을 펼쳤다. 인원이 부족하자 급수차량을 몰 운전병을 끌어 모았다. 기계화보병사단 화학지원대에서 2.5톤 제독차량을 몰던 이강일 상병이 차출됐고, 2009년 3월 10일 인근 부대로 파견됐다. 이 상병은 오전 2회, 오후 2회 하루에 총 4회씩 인근 아파트 주민에게 식수를 댔다. 사고가 난 건 파견 9일째 되던 날이었다.
전투체육이 있던 탓에 축구 골대는 연병장 밖에서 안으로 이동했다. 전투체육이 끝난 뒤 급수차량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축구 골대는 다시 안에서 밖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축구 골대는 고정 철근(길이 75.7cm)이 풀린 채 방치됐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축구 골대는 부대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었다. 전문가가 제작한 골대가 아니었다. 이 부대의 골대 뒤쪽 아래엔 ‘그라운드바’가 없었다. 그라운드바는 골대가 넘어지지 않고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주요 장치다. 축구 골대 제작 전문가에 따르면 축구 골대를 만들 때 핵심이 하중을 견디도록 하는 것인데, 부대의 골대는 그렇지 못했다. 강원도 지형 특성상 바람이 강하게 불 때면 축구 골대는 자주 넘어가곤 했다. 축구 골대가 잘 넘어지는 걸 알았던 부대 간부들은 축구 골대를 사용할 땐 고정 철근을 박았고, 사용하지 않을 땐 쓰러뜨려 엎어뒀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이강일 상병 가족의 진정을 접수 받아 당시 축구 골대를 조사해본 결과 축구 골대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은 고작 45kg 정도였다. 키 180cm에 몸무게가 100kg이었던 이 상병을 견딜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만약 그 골대에 그라운드바가 있었다면 축구 골대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은 최대 213kg 정도였다. 골대만 제대로 제작했다면 잃지 않아도 될 목숨이었다.
부대에서 자체 제작한 골대는 그라운드바가 없었다. 그라운드바가 없는 골대가 버틸 수 있는 하중은 고작 45kg에 불과했다. 사진=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제공
당시 부대 대대장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대대장은 군 헌병대 조사에서 “본인은 대대장으로서 축구 골대가 전도되어 사고가 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면에 고정시키거나 병력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았기에 이강일 상병이 사망하게 되는 사고를 유발했다”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 축구 골대의 안전조치에 대한 모든 책임은 대대장인 본인에게 있으며, 저의 부주의와 무사안일의 사고방식과 업무수행 태도로 인해 귀중하고 고귀한 한 생명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진술했다.
군 헌병대는 대대장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 상병에게 부주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사건 경위를 유가족에게 알렸다. 이강일 상병 아버지 이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아들은 차량이 비뚤게 주차된 것을 보고 다시 주차하려고 할 만큼 맡은 바 임무에 투철한 군인이었다”며 “11년 전 대대장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사고의 책임이 아들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 군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상병의 죽음 이후 해당 부대는 십시일반 450여만 원을 모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유가족은 이를 부대의 설비를 개선하는 데 쓰라며 다시 부대에 기부했다.
이강일 상병 사건을 재조사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통상 축구 골대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운동시설이 사고를 유발하는 흉구가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주의 의무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파견 병력 관리를 소홀히 한 부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봤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손주희 조사관은 “이번 사건은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축구 골대가 전도되어 발생한 안타까운 인재였다. 아직도 열악한 제반 환경으로 인해 몇몇 부대에서는 자체 제작된 비규격 운동시설, 노후화된 운동기구 등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영내 운동 시설에 대한 안전교육과 시설점검을 철저히 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적 사고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1950년 군 창설 이래 비순직 처리된 사망군인은 3만 9000여 명에 달한다. ‘개인적 사유’에 의한 자해 사망인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인람)는 2018년부터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대 내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순직 처리로 이끄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9년 9월 13건의 의문사를 진상규명한 뒤 매월 성과를 내고 있다. 일요신문에서 진상규명된 사연을 연재한다. |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