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이 사모펀드 칼라일 측과의 뚜레쥬르 매각 계약을 철회하고 그룹 캐시카우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CJ푸드빌. 사진=일요신문DB
#베이커리 경쟁과 외식업 쇠퇴 속 정체성 못 드러내
CJ그룹은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과 뚜레쥬르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최근 매각을 철회했다. 매각 철회는 가격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CJ는 몸값 3000억 원을 고수했지만 칼라일은 2000억 원 초반을 주장했다. CJ 측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외식 업계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는데 칼라일은 여전히 뚜레쥬르를 저평가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저가에 무리해서 팔기보단 더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성장성에 대한 의문도 매각 협상 결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2013년 프랜차이즈 제과점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가맹점의 매년 신규 출점 가능한 수는 전년 점포 수 기준 2% 이내로 제한됐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수익을 내려면 점포를 늘려서 점당 매출을 늘리거나, 점포 한 곳당 매출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점포당 매출 향상 전략은 주변에 아파트 한 세대가 더 생기는 등 환경 변화가 있거나 신제품의 인기 등을 통해 가능하다. 즉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시장 반응이 좋은 제품도 트렌드 변화가 빨라 경쟁력이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결국 수익성을 키우려면 점포를 최대한 늘려야 하는데 출점 제한으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쟁 브랜드와의 점유율 차이도 크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공정거래위원회와 각사 홈페이지를 참고해 낸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바게뜨의 가맹점 수는 3366개, 매출액 기준 점유율은 61.1%인 반면, 뚜레쥬르는 1318개, 점유율은 16.6%다.
이런 가운데 동네 빵집은 물론 카페와 편의점에서도 빵을 직접 구워 팔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베이커리 전문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에어프라이어 등 베이커리 장비와 재료 구매가 쉬워지고 집에서도 간편하게 구워 먹을 수 있는 제품이 많아져 홈베이킹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개성이 필요한데 뚜레쥬르는 차별화 포인트가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파리바게뜨는 점포마다 빵을 직접 만들어 팔면서 신선도를 차별화해 성장했다”며 “파리바게뜨 점포가 500~600개로 늘어났을 때쯤 뚜레쥬르가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파리바게뜨처럼 점포에서 만들어 팔았지만 이외 색다른 방식이나 차별성이 없었고 출점 제한 규제로 한계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어윤선 세종사이버대 외식창업프랜차이즈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프랜차이즈보다는 개인 단독 매장, 그중에서도 베이커리 오너셰프들이 하거나 외곽에서 대형매장으로 파는 것이 트렌드”라며 “뚜레쥬르는 파리바게뜨처럼 꾸준히 제품 개발을 한다거나, 투썸플레이스 케이크가 맛있다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등 R&D(연구개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유무형의 자산도 적다. 앞서 CJ푸드빌은 지난해 투썸플레이스를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같은 해 ‘비비고’ 브랜드 상표권과 생산설비 등을 CJ제일제당으로 이전하고 레스토랑간편식(RMR)을 생산하는 진천공장도 양도했다. 매장 1300여 개는 회사 소유가 아닌 자영업자들 소유다.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는 대기업의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CJ푸드빌은 여러 CJ 계열사 중 한 곳이고 이재현 회장도 베이커리, 외식보다는 영화, 엔터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는 처음부터 회사가 빵을 만들어왔고 오너도 관심이 많기에 뚜레쥬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외식업 부진도 CJ푸드빌이 수년간 적자에 시달린 배경이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외식업 브랜드는 빕스, 더플레이스, 계절밥상 등이 있는데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뷔페 인기가 하락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CJ푸드빌 연결기준 2015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빕스는 가격대가 너무 높았고 그만큼 고급의 분위기를 내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그 돈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개인 셰프가 하는 음식점을 가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계절밥상은 외식문화에서 굉장히 센세이션했다. 시장에 없던 모델로 초기엔 호기심에 고객들이 차별적 요소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접하는 집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정체성이 각인되기 어려웠다”고 짚었다.
CJ그룹이 사모펀드 칼라일 측과의 뚜레쥬르 매각 계약을 철회했다. 코로나19 타격에 뚜레쥬르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판단 아래, 더 키워보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2020년 말 서울 중구 시내의 뚜레쥬르 매장 입구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믿을 것은 백신 효과에 대한 기대감
투자업계에서는 백신 접종으로 외출이 많아지고 소비가 회복되면 CJ푸드빌이 뚜레쥬르 수익성을 높여 매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CJ푸드빌은 현재로서는 재매각에 선을 긋고 있다. 일단 뚜레쥬르의 실적 개선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재평가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CJ푸드빌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년보다 더 나은 실적을 냈다“면서 “올해 백신 접종으로 소비 심리가 살아나면 하반기 턴어라운드를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뚜레쥬르 빵이 건강하다는 인식이 2019년도부터 자리 잡았다. R&D에 많이 힘쓰고 있는 만큼 히트상품 개발과 마케팅에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종백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팀장 역시 “뚜레쥬르는 프랜차이즈 인지도도 확실하고 소비자층도 다양해 코로나가 끝나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최지혜 박사는 “맛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마케팅 콘텐츠가 중요하다”면서 “색다른 맛과 재미를 주는 차별적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의 이영애 교수는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경험을 차별성 포인트로 하거나, 기존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HMR 시장에서 역량을 보여주든 전략이 필요하다. 가격부터 대표 메뉴 선정, 타깃 소비자층 등 여러 측면에서 포지셔닝을 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컨대 음식점에서 DIY(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도록 하는 상품)를 한다거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못가는 만큼 동남아 분위기 인테리어와 메뉴로 차별적 경험을 제공하라는 조언이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