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코리아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지난 16일 진행한 예비입찰에 롯데그룹, 이마트, SK텔레콤, MBK파트너스, 해외직구 업체 큐텐 등이 참여를 결정했다. 당초 이베이코리아의 매각 희망가(5조 원)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왔지만 기존 투자설명서(IM)를 수령해갔던 원매자들이 대부분 참여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본격화한 가운데 카카오의 불참과 이마트의 참여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사진=이베이 미국 본사 홈페이지 캡처
#유력 후보로 꼽힌 카카오 불참, 왜?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혀왔던 카카오는 예상을 깨고 참여하지 않았다. 입찰 마감 직전까지 카카오 블록체인 그라운드X 플랫폼 기반의 암호화폐 디카르고(DKA) 가격이 치솟을 정도로 업계 전반이 카카오의 인수전 참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카카오는 1000억 원대 순이익을 내고 있는 커머스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8년 말 카카오 쇼핑사업부를 분사해 만든 카카오커머스다. 분사 첫 해부터 575억 원의 흑자를 냈고 2020년에는 123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100여 개 카카오 계열사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카카오뱅크(1136억 원)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다. 매출 성장률은 최근 3년간 연평균 650%를 기록했다.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과 크게 비교되는 성적표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사업구조를 통해 ‘출혈 마케팅 전쟁’을 피했다. 주요 서비스인 ‘선물하기’와 톡딜 등이 전부 이용자만 4600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통해 이뤄진다.
알짜 계열사를 두고 있었지만 카카오는 이커머스 사업 확대 방안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한계로 거론된 확장성 탓이었다. 카카오커머스의 거래액은 약 3조 원으로 20조 원을 훌쩍 넘는 업계 빅3와 큰 차이가 있다. 초대형 플랫폼을 앞세우더라도 국내 점유율 70%에 달하는 검색엔진이 무기인 네이버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도 물류·배송에 힘을 싣는 쿠팡과 비교하면 몸집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카카오커머스는 오는 2022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만 성공하면 이커머스 업계 3위 사업자로 직행할 수 있는 데다 상장 과정에서 몸값도 높일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이베이코리아 인수 시너지가 가장 큰 곳으로 카카오를 꼽으며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카카오는 비밀유지협약을 이유로 참여 여부는 물론 불참 이유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복수의 카카오, IB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회사는 입찰 마감 직전까지 참여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특히 카카오의 인수합병 전략과 자금조달을 담당하는 투자전략실에선 구체적인 참여 방안 및 자금 확보 방안 등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실무진 사이 참여와 불참 의견이 반반으로 엇갈렸고, 결국 가장 ‘윗선(김범수 의장)’이 최종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인수전 불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카카오의 경쟁사 네이버 의존도가 높은 이베이코리아의 사업 방식이다. 이베이는 PC 유입률이 높고, 대부분 네이버 검색을 통해 유입된다. 또 이용자가 이베이코리아를 통해 상품을 사려면 네이버를 거쳐 관련 페이지로 들어가는 과정을 밟게 되는 만큼 네이버는 일종의 플랫폼 수수료 명목으로 매출을 올린다. 카카오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해 매출을 올릴수록 네이버 매출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커머스 사업을 하고 있는 카카오와 PC 유입률이 높은 이베이코리아의 사업 구조는 시너지 효과가 낮다. 만약 카카오가 인수를 하더라도 플랫폼을 통합하기보다 따로 떼어내 운영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경우 카카오 입장에선 5조 원이나 들여 인수하기에는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
이 같은 사업 구조를 모르지 않는 카카오가 오픈마켓보다 물류망 구축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다른 이커머스와 비교해 카카오커머스의 최대 약점은 자체 물류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베이코리아는 CJ대한통운과 협업을 통해 ‘스마일 배송’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네이버와 지분 맞교환을 통해 ‘혈맹’을 맺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와 이베이의 사업 구조의 결이 너무 다르고 경쟁사가 깊숙이 얽혀 있다. 이를 감수할 만큼 가격이 낮은 것도 아니다”라며 “현재로선 카카오가 예비입찰에 불참했다가 본입찰에 깜짝 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인수 의지가 가장 강한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힌다. 사진=일요신문DB
#이마트 ‘혈맹’ 맺은 네이버와 공감대 형성했나
입찰 참여 업체 가운데 가장 인수에 적극적일 것으로 평가되는 곳은 이마트다. 당초 이마트는 인수 의사가 낮은 곳으로 분류돼 왔다. 특히 입찰 마감일 이마트가 네이버와 지분 맞교환을 공식화하면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불참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IB업계에선 이마트의 이번 인수전 참여가 네이버와 전략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결정한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 1월 말 정용진 신세계그룹 총괄부회장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회동했다. 두 사람은 당시 유통영역에 대한 고민과 협력 가능 여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특히 네이버의 파트너십 방식인 지분 맞교환 방식을 정 부회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최근까지도 실무진 간 교류가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미국 상장 소식이 알려진 직후 협력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이 미국에서 들여온 대규모 자금이 한국에 풀리기 시작할 경우 업계 1위 사업자 네이버와 쓱닷컴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는 이마트 모두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쿠팡에 공동 대응해야 할 명분이 양측에 생긴 셈이다.
이마트의 쓱닷컴이 네이버와 협업하면 몸집 키우기가 수월해진다. 특히 네이버의 최대 무기인 온라인 공급자들(셀러, Seller)을 쓱닷컴으로 유치할 수 있다. 네이버는 이마트의 유통과 물류 인프라를 활용할 방침이다. 이번 이마트의 이베이코리아 인수전 참여도 협력 논의 연장선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베이코리아 사업 구조가 네이버와 깊은 관계가 있는 만큼 지분 맞교환으로 협력을 약속한 이마트가 인수하는 게 양측에 최상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마트는 전략기획본부를 중심으로 이베이코리아 인수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으로 검토가 시작된 건 불과 한 달 전부터로, 강희석 대표이사가 검토 지시를 직접 내렸다. 강 대표는 정용진 부회장과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가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다.
걸림돌은 역시 가격이다. 쿠팡 상장으로 이베이코리아 몸값에 대한 평가도 높아지고 있고, 인수전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마트는 입찰 참여 과정에서 자금을 어디까지 끌어올 수 있을지 꼼꼼히 파악했지만 5조 원 이하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이마트가 네이버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입찰에 참여한 인수 후보자들은 향후 이베이코리아의 경영 지표 등에 대한 상세 실사 등을 통해 인수전 완주 여부를 최종 결정할 전망이다. 이베이코리아의 인수가는 당초 매각사 측의 희망가(5조 원)보다 낮은 4조 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