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역대 80번째 한일전이 열린다. 마지막 한일전이었던 2019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 모습으로 황인범(왼쪽 16번)의 결승골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1-0 승리를 거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세계 주목 라이벌 관계, 대한민국과 일본
한일전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국가 간 라이벌전이다. 2014년 영국 ‘가디언’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제 라이벌 관계’를 꼽으며 한일전을 브라질-아르헨티나, 독일-네덜란드, 이집트-알제리, 잉글랜드-스코틀랜드에 이어 다섯 번째로 언급한 바 있다.
한일전을 대하는 선수들과 국민들의 특별한 감정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부터 비롯됐다.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더 뜨거운 경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1954년 첫 공식 A매치로 공인된 경기가 열리기 이전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축구 경기가 열릴 때면 유난히 뜨거운 분위기가 펼쳐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간 첫 A매치 기록인 1954년 이후 대한민국의 한일전 전적은 79전 42승 23무 14패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 전적만 보면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에 적수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은 65년의 역사에서 14패만 당했다.
한일전 역사 속에서 초반기에는 일본이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과거부터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최순호, 김주성 등 아시아 축구 스타들을 배출해낸 한국은 1954년 첫 한일전부터 약 35년간 당했던 패배는 7패에 불과했다. 7패를 안는 동안 올린 승수는 30승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월드컵 개최를 위해, J리그 출범 등으로 축구에 관심과 투자가 쏠려 일본의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한일전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횟수가 늘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전적은 12승 12무 7패로 여전히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한국이 우세했던 과거와 다르다.
이민성의 중거리슛으로 승리한 1997년 ‘도쿄대첩’은 지금도 회자되는 한일전 명승부 중 하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유난히 뜨거웠던 한일전
한일전의 열기는 친선전이나 소규모 대회 이외에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로 가는 길목인 아시아 예선 대회에서 양국이 만났기에 더욱 뜨거웠다.
특히 월드컵 예선에서의 만남은 숱한 명장면을 연출했다. 첫 한일전이었던 1954년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1·2차전(1954년 3월)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져야 했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 입국을 금지해 원정에서만 2경기를 치렀다. 당시 이유형 감독이 원정을 떠나며 남긴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은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유형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원정 2연전에서 1승 1무를 기록,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으로 향했다.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1994 미국월드컵 최종예선(1993년 10월) 과정에서도 한일 양국은 미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당시 한국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비기며 예선 과정에서 가시밭길을 걸었고 이어 열린 한일전에서는 미우라 카즈요시에게 골을 내주며 0-1로 패배했다. 북한과 최종전에 승리해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이 북한을 3-0으로 이기는 사이, 일본은 이라크와 일전에서 경기 막판 골을 내주며 2-2 무승부를 거뒀다. 함께 선두경쟁을 벌이던 사우디도 이란에 4-3 승리를 거뒀다. 일본은 월드컵 본선 티켓을 눈앞에 두고도 최종전 무승부로 사우디와 한국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일전 역사에서 ‘도쿄대첩’도 빼놓을 수 없다. 주요 길목마다 만났던 한일 양국은 1998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1997년 9월)에서 또 만났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도쿄 원정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후반 20분 선제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후반 교체 투입된 서정원이 후반 38분 동점골을 넣었고 정규시간 종료 4분을 남겨놓고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졌다. 이 승리에 힘입어 대표팀은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을 수 있었고 차범근 감독은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민성의 역전골 당시 송재익 캐스터가 외쳤던 “후지산이 무너집니다”는 지금까지도 스포츠 중계 역사에 남은 멘트다.
A매치뿐 아니라 각 연령별 대표에서도 많은 한일전을 치러왔다. 가장 최근 U-23 대표팀의 성과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인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은 모두 한일전을 이겨내고 얻어낸 결과다.
동메달을 차지했던 2012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도 한일전으로 치러졌다. 당시 박주영은 일본 수비수 여러 명 속에서 홀로 이겨내 결승골을 터뜨렸다. 사진=연합뉴스
#80번째 맞대결은
오는 25일 요코하마에서 열릴 일본과 A매치는 역대 80번째 한일전이다. 이번 경기는 오는 6월 재개되는 2022 카타르월드컵 2차예선에 앞서 치르는 ‘모의고사’ 성격이 짙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최정예 선발을 원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선수가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다.
황의조 이재성 황인범 손준호 김민재 등이 각각 소속팀의 반대, 부상 등 이유로 빠졌다. 이들은 그간 벤투의 부름을 꾸준히 받던 선수들이다. 24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황희찬 역시 독일 현지 사정 때문에 소집 명단에서 제외됐다. 지난 15일 소속팀 토트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교체됐던 손흥민의 합류 여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일전 특유의 긴장감은 여전할 듯하다. 현역 시절 한일전 5회 출전 경험이 있는 이상윤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과거부터 한일전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경기다. 소집 단계부터 선수단 내 미묘한 긴장감이 든다. 경기장 위에서도 선수들의 태도가 다르다. 경합 과정에서 선수들이 몸을 내던지는 장면을 보면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이번 경기는 친선경기지만 다른 나라를 상대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80번째 한일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 △공격수=이정협(경남 FC), 조영욱(FC 서울) △미드필더=나상호(FC 서울), 남태희(알사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엄원상(광주 FC), 윤빛가람(울산 현대), 이강인(발렌시아 CF), 이동준(울산 현대), 정우영(알사드), 정우영(SC 프라이부르크), 주세종(감바 오사카) △수비수=김영권(감바 오사카), 김영빈(강원 FC), 김태환(울산 현대), 박주호(수원 FC), 박지수(수원 FC), 원두재(울산 현대), 윤종규(FC 서울), 홍철(울산 현대) △골키퍼=김승규(가시와 레이솔),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조현우(울산 현대) *손흥민은 부상 상황에 따라 명단 제외 가능성 존재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