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활동 당시엔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강조(위)했던 브레이브 걸스는 4년 만에 다시 활동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수용해 상큼하고 발랄한 콘셉트를 택했다. 사진=브레이브 걸스 무대 영상 캡처
이처럼 ‘시대를 읽는 콘셉트’를 취한 사례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는 역주행의 새로운 아이콘, 브레이브걸스다. 2017년 발매된 곡 ‘롤린’(Rollin‘)의 역주행으로 전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한 브레이브걸스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 전 대중들로부터 “콘셉트를 바꾸라”는 신신당부를 들은 바 있다.
당초 ‘롤린’의 활동 당시 콘셉트는 몸에 달라붙는 탑과 숏 팬츠로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청량한 곡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기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 점을 우려한 대중들이 “만일 다시 활동한다면 콘셉트를 바꿔서 나와달라”고 요청했고 소속사 브레이브 사운드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소 선정적이었던 앨범 표지도 팬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미지로 교체했다. 또 방송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멤버들의 의상도 노출이 많고 딱 붙는 옷에서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한 의상으로 변경됐다. “훨씬 보기 편하다”는 대중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2020년 데뷔한 7인조 걸그룹 시그니처는 두 번째 데뷔 싱글 ‘아싸’(ASSA) 활동 당시 수트 콘셉트로 눈길을 끌었다. 몸매를 부각시키는 딱 붙는 수트가 아니라 다소 헐렁헐렁한 쓰리 피스 수트를 입은 걸그룹에 특히 여성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위키미키는 무대 의상인 수트와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점프 수트 의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사진=판타지오 뮤직 제공
보통 여성 연예인들은 이처럼 콘셉트로 수트를 입을 경우 하이힐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일이 잦았다. 옷은 편하게 입더라도 신발만큼은 섹시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게 가요계에선 불문율 같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위키미키와 시그니처 모두 신발도 굽이 낮은 단화를 착용한 채로 무대에 오르면서 “보기에 아슬아슬하지 않고 편안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은근한 섹시함’을 표방하며 스커트의 기장을 짧게 줄이고, 가터벨트나 망사스타킹 같은 섹시한 아이템을 추가하는 방식을 고집해 온 걸그룹의 스쿨룩 콘셉트도 최근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아이돌계 최초로 ‘교복 바지’를 멤버 전원의 스쿨룩 콘셉트로 내세운 7인조 걸그룹 위클리다. 2017년 걸그룹 다이아가 미니 3집 ‘러브 제너레이션’(Love Generation)을 공개하며 일부 멤버들이 바지를 착용하긴 했지만, 멤버 전원이 교복 바지로 무대에 오른 것은 위클리가 최초다.
위클리는 2020년 10월 미니 2집 ‘위 캔’(We can)을 공개하며 5부 팬츠 형태의 스쿨룩을 갖춰 입고 무대 활동을 소화해 냈다. 학교 콘셉트를 바탕으로 생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10대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았다고 밝힌 위클리의 의상을 보며 “딱 그 나이대의 청소년으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걸그룹의 ‘테크 웨어 패션’도 최근 주목 받는 콘셉트 변화 가운데 하나다. 테크 웨어란 스트리트 패션 가운데 하나로 첨단 소재를 활용해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충족시키는 패션을 말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장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매 활동마다 다양한 콘셉트를 공개해 온 마마무는 지난 2019년 활동 당시 테크 웨어 패션을 선보였다. 사진=RBW 제공
와일드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표방하는 패션이기에 주로 보이그룹, 특히 남성적인 매력을 강조해 온 그룹의 콘셉트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복장도 최근 걸그룹으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매 활동마다 다양한 콘셉트를 선보여 온 4인조 걸그룹 마마무는 2019년 ‘힙’(HIP)으로 활동하면서 테크 웨어 패션과 밀리터리룩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걸크러시 열풍과도 맞물리면서 블랙핑크, 에스파 등 다른 걸그룹에서도 다양한 테크 웨어 패션을 콘셉트 가운데 하나로 도입하기도 했다.
엔터업계에서는 이 같은 콘셉트 변화를 두고 “시대가 변해가는 속도에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사회 분위기와 대중 선호도의 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해 적용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엔터사 관계자는 “평균 나이가 어린 걸그룹을 데뷔시킬 때는 무조건 데뷔 초는 청순함, 순진함을 강조하고 세 번째 컴백 즈음에 섹시한 콘셉트로 변신하는 게 관례 같은 것이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게 먹혀왔다”라며 “그런데 이 섹시 콘셉트가 또 어렵다. 대부분 남성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그룹이 적극적인 성인 여성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은 싫어하고 은근히 보여주는 걸 원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런 이유로 노골적인 섹시 또는 걸크러시 콘셉트를 내세우는 여성 솔로가수들과 달리 걸그룹의 콘셉트는 팬들이 원하는 방향과 대중성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고충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