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월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자 등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안철수 후보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지자 국민의힘은 곤혹과 안도가 교차했다. 제1야당으로서 별다른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았지만 한편으론 안 후보가 여당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국민의힘에서 누가 나오건 지지율이 높았던 안 후보가 단일 후보로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 다녔다. ‘안철수 영입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지만 정작 안 후보는 국민의힘 입당에 선을 그었다.
안철수 후보 측도 국민의힘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단일화 경선 승리는 어렵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국민의힘 경선이 끝난 후 판세는 흔들렸다. 나경원 후보에 비해 열세라고 판단됐던 오세훈 후보가 이변을 일으키며 승리했고, 그 효과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상승세의 오 후보가 하락세의 안 후보보다 단일화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단일화 경선에 느긋해하고 있던 안 후보 진영에도 비상이 걸렸다. 반면, 오 후보와 국민의힘에선 해볼 만하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 후보는 박영선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 있어서도 안 후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1야당 후보로서 서울시장 자리를 절대 내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그리고 안철수 오세훈 간 단일화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던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 국민의힘은 안 후보에게 경선에서 질 경우 1야당으로서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3석에 불과한 국민의당으로선 안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뒤 국민의힘과의 당대당 통합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패배 시 국민의힘으로의 흡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선과는 별개로 일단 단일화 경선부터 이겨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던 셈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단일화 경선은 서울시장뿐 아니라 향후 야권 정계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일정이다. 국민의힘이 단일화에서 지면 앞으로 야권 지형은 제3세력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행보로까지 연결된다. 반면, 국민의당으로선 절호의 기회다. 윤 전 총장이 단일화 경선에 승리한 후보에게 메시지를 던질 것이란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단일화 룰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오세훈 안철수 후보 개인으로서도 단일화 경선은 질 수 없는 한 판이다. 오 후보의 경우 2011년 서울시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2020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 후 도전한 총선에선 정치 신인 고민정 의원에게 일격을 당했다. 안철수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2012년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에 나섰다가 모두 양보를 했다. 그 후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때 연이어 낙선했다. 두 후보가 이번 단일화를 앞두고 사실상 정치적 배수진을 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여기에 LH한국토주주택공사 직원 투기 의혹 사태로 야권 단일 후보 승산이 높아졌다는 점도 단일화 변수로 떠올랐다.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대승적인 양보의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세세한 부분을 놓고 실무진들이 얼굴을 붉히는 일도 빈번했다.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고성도 여러 차례 새어나왔다. 두 후보 간 타협 없이, 실무진 간 협상만으론 단일화가 힘들 것이란 말도 파다했다.
단일화 과정에 관여했던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후보 측이 여론조사 질문을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억지를 부렸고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관계자는 “애초부터 안 후보와 단일화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수당으로서 찍어 누르려는 모습만 보였다. 단일화 하고 싶으면 무조건 양보하라는 자세였다. 여차하면 따로 선거에 나갈 수 있다는 말로 압박했다”고 귀띔했다.
안철수 후보가 3월 1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안철수 비토’도 단일화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김 위원장은 단일화 이전부터 안 후보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해왔다. 최근엔 안 후보를 향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 일각에선 단일화 실무진이 오 후보가 아닌, 김 위원장 지시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일부 중진들은 김 위원장을 향해 “단일화에 재를 뿌리지 말라”고 저격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안 후보는 김 위원장을 가리켜 “상왕”이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 측근 인사는 “김 위원장이 여러 번 인신비하 발언을 해도 안 후보가 ‘정권 교체’라는 대의 때문에 참았다”면서 “지금은 대놓고 ‘안철수가 버티면 3자구도 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3자구도가 필패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을 ‘민주당의 X맨’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주변에선 이러한 스탠스가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선거를 여러 본 치러본 김 위원장이 사람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대사를 그르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협상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두 가지 목적으로 우선,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또 안 후보 기죽이기 차원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감정의 골만 깊어진 채 3월 19일 따로 후보 등록을 마친 두 후보는 서로 상대방 제안을 수용하겠다면서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날 둘은 총 네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 ‘통 큰 양보’를 강조하면서도 가시 돋친 말들을 주고받았다. 안 후보는 “만족하시나”라고 했고, 오 후보는 “바보 같지만 따르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룰을 놓고도 혼선을 빚으면서 이날 정가에선 ‘단일화 대소동’이란 말이 회자됐다. 단일화는 여론조사기관 2곳이 각각 적합도와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를 100% 무선전화 조사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이 단일화 협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3자구도=필패’라는 대전제 때문이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박영선 후보의 우위를 점치는 기류가 강하다. 일단 서울은 인구 구성상 국민의힘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군다나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 특성상 서울 지방권력 장악으로 조직 면에서 앞선 민주당이 유리하다.
신율 교수는 “지금 발표되는 여론조사대로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의힘에서 3자 대결 운운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3자 구도는) 무조건 진다. 재보선은 투표율 싸움이다. 야권 후보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와야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아직까진 불리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서울은 정부 심판 프레임이 먹히는 곳이기도 하다. LH 사태로 인해 표심이 요동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