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여론’. 사진=커뮤니케이션북스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접두사 ‘post’는 ‘이후’가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됐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은 나날이 짙어졌다. 우리는 오늘도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이 비합리적인 의견을 전파하는 것을 마주한다.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거짓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한다. 악성 루머나 왜곡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인포데믹스(infodemics)는 그 어떤 전염병보다도 빠른 속도로 일상에 틈입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한 세기 전, 월터 리프먼은 같은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가. 여론은 과연 합리적인가’. 리프먼에 따르면 언론은 실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여론은 합리적인 의견의 합이 아니라 편협한 해석의 집합일 뿐이다. 그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다.
여론이 보통 사람들의 지혜라고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당시 민주주의자들이 가진 믿음에 커다란 균열을 남긴 것이다.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언론을 비롯한 사회 제도,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은 크게 변화했다. 누구나 양질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언론은 왜곡된 상을 제공하고 여론은 불확실한 정보에 휩쓸린다. 리프먼의 사상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단단한 용골(龍骨)이다. 이제 리프먼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무엇인지 새롭게 고찰해야 한다.
이 책은 리프먼의 사상에 옮긴이(이동근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풍부한 해제를 더해 자신이 번역한 기존 번역서와 완전히 다르게 구성했다. 이동근 교수는 해제에서 리프먼의 메시지를 재해석하고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맞는 올바른 여론이 무엇인지 묻는다. 리프먼의 전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리프먼이 남긴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