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부문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롯데의 온라인 사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롯데 유통 쪽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 사업에 매달렸지만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동안 롯데온에 매진하느라 온라인 쪽 인수합병(M&A)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롯데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여할 뜻을 내비친 것은 온라인 쪽에서 지지부진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유통업계 강자 롯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사업은 위축되고 야심차게 준비한 이커머스 ‘롯데온’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롯데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등은 각각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롯데의 유통부문의 대부분 사업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 사 공시에 따르면 2018~2020년 롯데쇼핑 사업부들의 시장 점유율은 롯데백화점(38.9%→37.3%), 롯데마트(23.6%→21.1%), 롯데슈퍼(37.3%→33.7%), 롭스(8.2%→6.8%) 모두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7~2019년, 개별 법인인 롯데하이마트(44.3%→38.7%), 세븐일레븐(25.1%→24.6%)의 시장 점유율도 떨어지는 추세다.
롯데그룹 유통사업이 힘을 잃어가는 까닭은 수년간 이어진 롯데 안팎의 악재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18년 2월 법정구속됐다가 8개월 만에 풀려났다. 2019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국내에는 ‘반일감정’이 커졌고 롯데그룹이 일본기업으로 지목되며 국민들의 ‘노재팬 운동’ 대상에 포함돼 타격을 입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위기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롯데쇼핑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오프라인 매장 119개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올해는 약 70개 점포에 대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1~2년 뒤 영업이익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매출 신장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떨어진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 부문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특히 코로나19 위기에서 온라인 유통이 오히려 힘을 내고 있지만, 롯데의 온라인 사업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쇼핑은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야심차게 준비한 ‘롯데온’을 지난해 4월 공식 출범했다. 롯데온은 모든 계열사의 제품을 한 번에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는 통합 온라인 플랫폼이다. 하지만 들인 공이 무색할 만큼 롯데온은 출범 이후 크고 작은 오류가 발생했고 기존의 이커머스들과 차별성을 내세우지도 못했다. 통합 시너지 효과는커녕 시장의 냉혹한 평가만 이어졌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쿠팡(6위‧2141만 명), 11번가(26위‧886만 명), G마켓(43위‧608만 명), 위메프(49위‧542만 명), 티몬(64위‧442만 명)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현황에서 롯데온은 100위권 밖으로 벗어났다.
지난 2월 2일 교보증권의 유통 보고서 ‘스위트홈’에 따르면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인 이마트의 온라인 플랫폼 ‘쓱닷컴’ 거래액은 2019년 2조 8000억 원에서 2020년 4조 10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롯데온의 거래액은 같은 기간 7조 1000억 원에서 7조 4000억 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수준에 그쳤다.
롯데쇼핑 내 대부분 오프라인 기반 유통사업 시장 점유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월 14일 사장단회의에서 “(롯데가) 업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고도 부진한 사업군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다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 25일에는 해당 사업부 수장이던 조영제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장이 경질됐다. 지난 23일 열린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는 롯데온의 실패를 인정하며 “이커머스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받아 주주들에게 송구하다”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 뒤처진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역량을 쏟아부은 롯데온이 실패하자 M&A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여했으며 온라인 중고거래업체 ‘중고나라’ 인수에도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했다. 롯데쇼핑이 향후 중고나라의 재무적투자자(FI)들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중고나라를 완전히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의 공격적인 행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회사들은 함께 힘을 모으고 서로 도와 빨리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롯데는 부서별 경쟁이 치열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일곱 개의 유통사업 쇼핑몰이 통합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던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롯데쇼핑 한 직원은 “고위층에 있는 분들과 조직이 ‘1위 롯데’라는 안이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다른 회사들은 계속 변화하려고 노력하는데 경직돼 있는 분위기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재 롯데의 그룹 내 기득권으로는 M&A 이후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며 “롯데그룹이 M&A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내부의 관성화된 오프라인 문화를 하루 빨리 바꾸고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