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교동 삼거리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애경타워. 사진=이종현 기자
문제는 AK홀딩스가 자체 사업은 없고 배당 수입 중심으로 운영되는 순수 지주회사라는 점이다. 2019년 기준 AK홀딩스는 배당으로 245억 원, 상표권 수입과 경영 자문 수수료 수입으로 각각 41억 원, 5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며 AK홀딩스는 곤란을 겪고 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멘 곳이 그나마 실적이 양호한 애경화학이다. 물론 애경화학 또한 한 해 순이익의 2배에 달하는 배당액을 토해 내 한계에 다다랐다. 애경화학 내부에서 “노후화된 설비 재투자가 절실한데, 최대주주 때문에 배당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항공 살리려 ‘폭탄 배당’해야 했던 애경화학
애경화학은 원래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2018년 중간배당 때 주당 8000원을 지급한 바 있고, 2020년 초에도 주당 1만 2500원을 배당했다. 애경화학은 AK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이 배당금은 모두 AK홀딩스에 흘러 들어갔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해부턴 배당액이 과도해졌다는 데에 있다.
제주항공의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카운터. 사진=연합뉴스
애경화학은 지난해 7월 주당 3만 6900원의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예년의 3배에 달하는 대규모 배당을, 그것도 사업연도 중간에 결정한 것이다. 중간배당 목적은 당연히 제주항공 지원이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5월 17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후 5차례의 정정을 거쳐 1500억 원으로 규모가 조정됐는데, AK홀딩스가 투자한 금액은 총 688억 원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AK홀딩스의 재무구조를 보면 분명히 600억 원대 투자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가 점점 더 최대주주의 책임을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AK홀딩스는 유증 참여 규모를 줄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차례 고배당을 집행한 애경화학은 4월 중 또다시 ‘폭탄 배당’에 나선다. AK홀딩스는 최근 애경산업이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주당 2만 9500원을 집행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결산 배당으로 AK홀딩스가 수취하게 되는 배당 총액은 79억 9400만여 원에 이른다.
애경화학에서 받는 배당금은 AK홀딩스가 AK홀딩스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배당의 재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AK홀딩스 또한 주당 400원을 배당할 것이라고 지난 2월 15일 공시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 추가 지원 가능성도 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제주항공은 당장은 실적보다는 추가 유동성 확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애경화학 외에 다른 계열사들은 배당을 비슷하게 유지하거나 대폭 줄였다. 2019년까지는 배당을 했던 제주항공은 당연히 이번에는 배당을 하지 못하고, 애경산업도 올해는 전년(450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주당 200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애경유화와 에이케이켐텍은 예년과 유사한 규모인 주당 350원, 100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실적도 좋지 않은데” 직원들은 불만
애경화학 내부에서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애경화학 또한 지난해에는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 때문이다. 애경화학은 복합소재용 수지, 코팅용 수지, 이소시아네이트 경화제 등이 주요 품목인데, 일부 주력 제품은 코로나 타격이 컸다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실제 애경화학은 지난해 순이익이 102억 4400만 원으로, 전년(166억 원) 대비 감소했다.
애경화학 한 직원은 “결국 지난해 중간배당과 올해 결산배당으로 한 해 순이익의 2배를 한꺼번에 뽑아간 꼴”이라며 “직원들은 블라인드 등에 노후화된 설비의 교체가 시급하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경영진은 현장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최대주주만 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경화학 다른 직원도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일년에 2번은 기계가 고장 난다”면서 “입사한 뒤로 여러 차례 놀랐지만 가장 놀란 것이 노후화된 시설”이라고 꼬집었다.
애경화학이 지난 3월 22일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애경화학은 지난해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50억 원을 신규로 장기 차입하기도 했다. 장기 차입 이유는 시설자금이다. 은행 대출을 추가로 늘리면서 굳이 대주주에 폭탄 배당을 해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그룹 차원의 화학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이 2015년 삼성SDI의 케미컬 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인수해 체질 변화를 이룬 것이 대표적인 참고 사례다. 롯데그룹은 당시의 대규모 M&A(인수합병) 덕분에 유통업 장기 불황과 코로나 타격을 그나마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경그룹의 전략은 롯데와 달랐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관광 비즈니스에 방점을 둬왔다. 제주항공은 창립 10주년이었던 2015년 1월 “호텔, 여행사 등을 아우르는 네트워크 컴퍼니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제주항공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지은 애경타워에 600억 원 투자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애경타워 투자는 제주항공의 자금난에 큰 영향을 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애경그룹 관계자는 “과거 제주항공의 실적이 좋을 때는 제주항공에서 그에 걸맞은 배당을 했다”면서 “지주사는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와 더불어 자체적으로 배당도 실시해야 하고 운영비용도 필요하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계열사 배당 정책은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수 지주회사인 AK홀딩스가 계열사에 배당만을 통해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한 그림으로 지주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제주항공이나 애경산업 모두 공격적으로 재투자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이 때문에 지난해 제주항공이 가장 수익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저비용 항공사보다 빨리 유동성 위기를 맞았던 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그룹 차원의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학업계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화학산업을 키우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