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단일화 결과에 대해 입장발표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서울시장 선거에 세 번째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번에도 출사 의지를 거두게 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이야기다. 안 대표는 단일화 과정에서 약속했던 합당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야권 내부에서 의견은 분분하다. 199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치 이벤트인 ‘3당 합당’이 회자되고 있다. 노태우 정부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대형 사건이었다. 안 대표가 3당 합당의 두 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길 중 어느 길을 택할지가 정치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관심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 이후 ‘역사에 길이 남을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3당 합당이 수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면서 “민주화 세력의 핵심 인사가 보수 진영으로 편입돼 기존 보수 기득권 세력을 모두 통합해 대선까지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YS는 자신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길을 택하면서 보수 진영의 조직을 활용했다”면서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함으로써 대권 도전에 성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번 단일화를 굉장히 쿨하게 마쳤다”면서 “한국 정치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깔끔한 단일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안 대표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났다. 바로 조직이다. 안 대표가 단일화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당의 조직이 국민의힘을 못 따라갔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개인의 인지도 측면에선 정치권에서 상위 레벨에 속하지만, 그가 속한 당은 ‘1인 정당’이라 불릴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안 대표가 본인의 한계를 절감하고 YS처럼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1990년 1월 3당합당 장면. 사진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 노태우 씨.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사진=연합뉴스
정치권 일각에선 안 대표가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다시 한번 독자 노선을 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JP 모델이다. 앞서 언급한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힘을 합쳤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1992년 대선 이후 3년 만인 1995년 자민련을 창당하며 독자 노선의 길을 택했다. 그는 3당 합당에 이어 1997년 ‘DJP 연합’의 주축이 됐다. 두 차례 모두 승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김 전 총재에 ‘영원한 2인자’란 이미지를 씌운 악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활동했던 핵심 관계자는 “JP는 3당 합당과 DJP 연합 등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두 차례 모두 승리했다”면서 “그럼에도 2% 부족했던 부분은 ‘JP 본인의 승리’가 없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JP는 두 차례에 걸쳐 호랑이 굴을 찍고만 나왔다”면서 “그 과정에서 JP의 존재감은 서서히 약해졌고, 자민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합당을 하지 않는다면 JP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안철수의 정치 생명은 벼랑 끝에 몰렸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개인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같은 길을 가거나, 기존 정당 정치에 몸을 던지거나 둘 중 하나다. 정치는 ‘팀플레이’다. 안 대표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이런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을 거라 본다. 팀 스포츠에서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다른 팀원이 받쳐주지 못하면 경기에 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안 대표가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면 제3지대에서 ‘양보와 패배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안철수 서울시장 선거 캠프 관계자는 “개인적으론 안철수 대표가 구두로 합의한 ‘합당 약속’을 꼭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안철수 정치생명이 끝났다’라는 얘기도 들리는데,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합당을 한다면 대의·양보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3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합당 이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안 대표는 “당원들 의사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합당에도 절차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오세훈 후보 공동 선대위원장 수락 여부와 관련해 안 대표는 “이미 사전에 오세훈 후보와 합의했다”면서 “오 후보가 요청을 해오면 나는 당연히 그렇게(선대위원장 직을 수락) 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