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태 국민은행장 | ||
특히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외국계 투자자들까지 김 행장의 퇴진문제에 가세할 태세여서 이 문제는 국민은행 임원진-국민은행 내 3개 노조-외국계 투자자들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로 비화될 전망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8월25일 정례회의를 열고 국민은행이 5천5백억원 규모의 회계기준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20억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감사인 지정 2년의 제재조치를 내렸다. 국민은행이 부담해야 할 것은 직접적으로는 20억원의 과징금 정도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김정태 행장이 나서서 이번 징계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민은행 내의 세 개(옛 주택은행 노조, 옛 국민은행 노조, 합병된 국민카드 노조)나 되는 노조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김정태 행장 퇴진’ 혹은 ‘김정태 행장 퇴진은 관치금융’이라며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쪽에선 김 행장의 거취 부분은 ‘신관치금융도, 정부의 개입도 아니다’며 관련 자료를 추가로 공개하는 등 국민은행 경영진의 억울함 호소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왜 국민은행 회계기준 위반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가 이해관계에 따라 정면 충돌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계기준 위반 여부에 따라 오는 10월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행장의 거취가 좌우되기 때문.
국민은행의 이 같은 회계기준 위반 정도는 외부감사 및 회계기준에 관한 규정상 담당 임원에 대한 해임권고가 가능한 중과실에 해당되는 것으로, 금융감독원은 오는 9월10일께 정례회의를 열고 이번 회계기준 위반에 대한 기관 및 임원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융가에선 금융감독원이 이 위반 사항을 들어 김 행장에 대해 연임이 불가능한 문책적 경고 이상의 중징계 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적 경고는 3년간, 업무집행정지는 4년간, 해임권고는 5년간 임원으로 취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감독원의 징계가 이뤄지면 사실상 김 행장은 연임 길이 막힌다.
현재로선 금융감독원의 징계만 없다면 김 행장의 연임은 떼어 논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 4월 행장추천위 규정을 고쳐 주주대표 1명과 사외이사 6명으로 행장추천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게다가 정부 지분도 이미 국민은행에서 자사주 형태로 사들였기 때문에 이번 후임 행장 선출은 사실상 현 경영진의 의도가 적극 반영될 수 있는 구도였다.
그렇지만 금융감독원의 이번 징계 발표가 결정적으로 이런 구도를 흐트려 놓은 것이다. 일단 김정태 행장은 금융감독원 발표 뒤 직접 언론 인터뷰에 나서서 “회계 처리를 잘못한 것은 없다”며 금융당국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응방향에 대해선 “공식적인 금융당국의 입장을 들은 것이 없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가에선 금융감독원에서 제재수위가 문서화될 경우 국민은행 현 경영진들이 소송을 통해 김정태 행장을 적극 방어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측은 “회계팀에서 회계처리의 기술적인 논란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며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태 행장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김 행장 연임이 불투명해지면서 국민은행이 정부로부터 매입한 자사주를 외국계 금융기관에 4억달러에 팔려는 딜이 중단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금융감독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정부가 은행인사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식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가의 시선은 국민은행 내 3개 노조가 보이는 입장차에 집중되고 있다. 현재 국민은행에는 옛 국민은행 노조, 옛 주택은행 노조, 옛 국민카드 노조가 있다. 이들은 내년 1월에나 통합될 예정이고, 여전히 국민은행 노조는 김 행장과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국민은행 회계기준 위반 사실 발표와 임원 중징계 방침이 흘러나오자 옛 주택은행 노조에선 “금융당국의 KB 흔들기, 관치금융 부활의 전주곡”이라는 성명을 내고 금융감독원을 비난했다. 옛 주택은행 노조에선 옛 국민은행 노조와 옛 국민카드 노조에 대해서도 동조하는 입장의 성명서를 내자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반면 옛 국민은행 노조는 “경영진이 금감원 징계 결정을 관치금융으로 호도하고 있다”며 “경영진이 국민은행 내 3개 노조에 금감원 비판 성명 발표 및 조직적 항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김정태 행장의 부실경영 실태와 부도덕성에 대해 추가적인 발표도 불사하겠다”며 김 행장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역적 편중 인사와 김 행장이 정부 입김을 제거하기 위해 수천억을 들여 산 자사주 매입 때문에 은행 손실만도 수천억원에 달한다며 김 행장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주가의 김정태 프리미엄에 대해서 옛 국민은행 노조에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9일 1조2천억여원을 들여 정부로부터 2천7백42만여 주를 평균 4만3천7백원에 사들였지만 징계 발표 이전인 7월 중순 주가가 3만5백50원을 기록해 주당 1만3천원씩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독립경영을 하자면서 오히려 은행에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옛 국민은행 노조의 주장에 대해 옛 주택은행 노조에선 강하게 반박했다. 특히 ‘사측 사주설’에 대해 옛 주택은행 노조에선 “은행측으로부터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며 옛 국민은행 노조의 주장을 반박했다.
밖에서는 김 행장 거취를 놓고 금융당국과 김 행장쪽이 대립하는 양상이고, 안에서는 옛 국민은행 노조에서 김 행장 퇴진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김 행장은 이번 사태가 벌어진 뒤 한 인터뷰에서 후임 문제와 관련 “행장 선임은 이사회 고유권한이나 내 나름의 생각은 있다. 후임자는 전임자와 경영철학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생각이 달라 잘 안된 은행 사례가 많다. 후임자 선정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결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교체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후보를 몇 사람 내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후임 행장을 뽑았으면 한다는 얘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진퇴를 놓고 국민은행 안팎에서 더욱 강한 논란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