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소속 기관으로 법원조직법에 존재의 근거를 둔다. 법원조직법 제19조(법원행정처) 1항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대법원에 법원행정처를 둔다’, 2항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송무·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법령조사 및 사법제도연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조인이나 법조계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아니면 그 존재 자체를 잘 몰랐던 조직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인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이 불구속 기소되면서 법원행정처는 개혁의 대상이 됐다. 사진은 임종헌 전 차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는 사법권 독립을 실현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삼권으로 나뉜 사법부의 조직 운영을 위해 사법부 내 인사와 회계, 행정 등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있고, 미국과 영국 등도 법원행정처(Her Majesty‘s Courts Service)를 운영한다. 다만 영국의 경우 법원행정처가 법무부 소속이다.
법원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사무를 지원하는 곳으로 겉으로 보기엔 재판을 하지 않는 사무지원 기관이지만 ‘인사권’이 있다는 점에서 핵심기관 역할을 맡았다. 때문에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통상 대법관이 맡는다)은 전국 법원 내 판사들의 인사권을 가진 법원행정처를 통해 영향력을 뽐내곤 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장관급 격상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 담당했지만, 제5공화국 시절에는 사법부 독립이 무너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인사가 이뤄졌다. 법원행정처장은 정부 수립 이후에는 고등·지방법원장이 맡는 차관급 자리였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지위가 장관급으로 격상돼 일선 법원장들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
하지만 비판사 출신들이 등장해 법원행정처를 장악했다. 육군 대령 출신 전우영(1962~1969년)에 이어, 검사 출신 김병화(1969~1977), 서일교(1977~1981) 등이 잇따라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다. 특히 이 가운데 서일교 처장은 대법관을 희망했고, 전두환 정부에 의해 대법관 신분을 가진 채로 행정처장직을 겸하게 됐다. 서일교 처장은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일요신문DB
#‘승진’ 목맨 차장들의 무덤?
노태우 정부 등장 후 판사들 중심으로 꾸려지기 시작한 법원행정처는 처장(대법관)을 중심으로 법원 내 대다수인 일반 판사 위에 군림하는 조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처장을 보좌하며 법원행정처의 실질적인 사무 전반을 지시·처리하는 ‘넘버투’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 승진을 높은 확률로 기대할 수 있어 누구나 희망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핵심 보직이 돼 버렸다. 법원행정처 1대 한성수 차장부터 36대 김형두 차장(현재)까지 36명의 진로를 분석해 보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승진’한 경우가 27명(대법관 23명)이나 된다.
그만큼 판사들의 꿈 ‘대법관’에 가까운 자리였다. 인사를 포함, 법원 전체 행정을 챙길 수 있다 보니 재판 실력 외에 행정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 중에서도 상위 판사만 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김석수, 김황식 등 법원행정처 차장 자리를 거쳐 국무총리가 된 법조인도 2명이나 된다.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김황식 전 국무총리. 사진=일요신문DB
2000년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들의 행보를 보면 확실하게 드러난다. ‘손지열(대법관)-김용담(대법관)-양승태(대법관·대법원장)-이공현(헌재 재판관)-김황식(대법관·국무총리)-목영준(헌재 재판관)-차한성(대법관)-이진성(헌재 소장)-이상훈(대법관)-김용덕(대법관)-고영한(대법관)-권순일(대법관)’까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법원행정처 차장들은 모두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2014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1년 동안 근무했던 강형주 전 차장이 첫 예외였다.
그리고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강형주 전 차장의 후임이었다. 임 전 차장이 ‘바로 앞에 있던 차장이 15년 만에 승진에 실패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인 임 전 차장은 구속기소,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은 불구속 기소되면서 법원행정처는 개혁의 대상이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1년여 만인 2018년 9월 20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여러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다만 국회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는 만큼 자체적으로 행정처 기능과 권한을 분산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행정처 상근 법관제를 2023년까지 모두 폐지하는 행정처 비법관화 등도 추진 중이다.
자연스레 법원행정처 차장은 승진하지 못하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임종헌 전 차장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된 김창보, 김인겸 전 차장은 아직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되지 못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조직의 운영이 불가피했던 점도 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을 장악하고 끌고 가려 했던 것도 맞다”며 “차장의 경우 ‘대법관이 되고 싶다’는 목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자리가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