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얼마면 되겠니?
3월 22일 공개된 CJ ENM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시세끼’와 ‘신서유기’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CJ ENM 소속 나영석 PD는 2020년 연봉으로 12억 9000만 원을 챙겼다. 기존 시리즈 외에도 지난해 배우 최우식·정유미를 앞세운 ‘여름방학’을 비롯해 ‘윤식당’에 이은 ‘윤스테이’까지 성공을 거둔 결과다. 이는 허민호·허민회 대표이사가 받은 연봉인 12억 700만 원과 10억 5200만 원보다 많다.
‘프로듀스 101’과 ‘쇼미더머니’ 시리즈 등을 만든 한동철 PD가 2020년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수령한 연봉은 18억 7100만 원인 것으로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확인됐다. 사진=펑키스튜디오 제공
나영석 PD의 연봉은 CJ ENM을 통틀어도 톱5 안에 든다. 2020년 ‘기생충’ 신화를 쓴 이미경 부회장(29억 7600만 원)이 가장 높았고 이재현 회장(28억 6200만 원) 변동식 총괄부사장(27억 3900만 원) 순이었다. 나 PD를 비롯해 신원호 PD 등을 이끄는 수장 격인 이명한 상무(14억 3900만 원)만이 크리에이터 가운데 나 PD보다 연봉이 높았다.
이 놀라운 연봉은 하루아침에 추월당했다. ‘프로듀스 101’과 ‘쇼미더머니’ 시리즈 등을 만든 한동철 PD가 2020년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수령한 연봉은 18억 7100만 원인 것으로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확인됐다. 2020년 한 PD가 YG를 떠나며 챙긴 퇴직금 9200만 원까지 합치면 연간 보수 지급총액은 19억 6300만 원까지 치솟는다. 나 PD와 이 PD의 연봉을 크게 웃도는 수준.
한 PD와 함께 YG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던 MBC 출신 조서윤 PD와 제영재 PD 역시 각각 15억 2600만 원, 13억 7800만 원을 받았다. 둘은 2020년 태광그룹의 방송채널(PP) 계열사인 티캐스트로 이직했다.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연봉이다. 하지만 이를 통상 임금으로 볼 순 없다. 나 PD의 연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급여는 2억 8900만 원이고, 상여금이 9억 4000만 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여금은 성과를 기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나 PD가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에 따른 보상이라 할 수 있다.
CJ ENM은 “사업부문 매출, 영업이익 지표 및 제작 콘텐츠의 시청률, 화제성, 콘텐츠 판매액 등 계량 측정 지표에 기준해 콘텐츠제작 성과를 반영했다”며 “또한 업무 전문성과 PD직군 코칭 및 사업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PD들의 높은 연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이 포함된다. 바로 계약금이다. 성공작을 내고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통상 이적 비용에 해당되는 계약금을 받는다. 프로야구에서 FA(프리에이전트)로 풀린 실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며 계약금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각 PD의 이름값에 따라 계약금의 규모는 10억∼30억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초A급에 해당되는 성공작을 낸 PD의 계약금은 50억 원선까지 치솟는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3월 22일 공개된 CJ ENM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시세끼’와 ‘신서유기’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CJ ENM 나영석 PD는 2020년 연봉으로 12억 9000만 원을 챙겼다. 사진=최준필 기자
#고공 행진 몸값, 타당한가
지상파 예능국 PD의 연봉은 10년 차 기준으로 볼 때 1억 원 초반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이 붙으면 연봉 수준이 올라가지만 2억 원에 닿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작을 낸 후 좋은 조건을 제안 받으면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다가 지상파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이직 러시에 더욱 불이 붙었다.
예능 PD들의 몸값은 결국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및 우량기업들의 자본이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TV를 기반으로 한 기존 방송 시장에서는 아무리 자본력이 강한 기업이라도 두각을 보이기 어려웠다. TV 전파를 사용하고 채널을 배정받는 과정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활성화는 업계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콘텐츠가 TV를 벗어나면서 SM·YG와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에 이어 유통 플랫폼을 갖춘 KT와 SK, 신세계, 쿠팡 등이 앞 다투어 뛰어들었다. 당연히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찾는 수요가 늘었고, 지상파나 케이블채널에서 내공을 쌓은 PD들을 향한 러브콜도 많아졌다.
예능 PD들의 이직이 더 활발한 이유는 예능이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100억 원 안팎이라 부담이 크지만 예능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즉시 갈아탈 수 있다.
게다가 성공 사례가 나오면 시즌제로 제작되며 긴 생명력을 유지한다. 드라마의 경우 짧으면 4∼6회, 길어도 50회 정도로 6개월 동안 방송되지만, 성공한 예능은 10년 넘는 장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드라마가 긴 호흡을 가진 콘텐츠인 반면, 최근 젊은 층이 쇼트(Short) 플랫폼과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도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가진 예능 PD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한 유통 플랫폼 대표는 “과거 MBC ‘무한도전’의 경우 매년 500억 원 이상의 광고 매출을 가져온다고 알려졌다. 사업 초기에는 투자 비중이 높아 적자를 기록하겠지만 일단 성공 사례가 나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회사의 이미지까지 좋아질 것”이라며 “2020년 ‘기생충’의 성공으로 CJ ENM이 전 세계적으로 값으로 책정할 수 없는 홍보 효과를 누렸듯, 향후 콘텐츠 사업이 더욱 각광받을 것을 내다보고 능력 있는 크리에이터를 웃돈까지 주며 영입하려는 대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