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과테말라 시티에서 생겨난 거대한 싱크홀. 주택 20여 채가 빨려 들어가고 3명이 사망했다. 로이터/뉴시스 |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서 밖으로 나가 보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집 앞에 갑자기 거대한 구멍이 하나 생겨 있지 뭐예요.”
지난 11월 1일 새벽 3시. 독일의 작은 도시인 슈말칼덴에 난데없는 괴구멍 하나가 발생해서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구멍은 직경 60m에 깊이 20m 정도로 무시무시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차장 일부가 무너지면서 자동차 한 대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주민 2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추가로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당국은 “현재 명확한 원인을 조사 중에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땅에 이렇게 거대한 구멍이 뚫리자 독일인들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은 즉시 지난 5월에 발생한 과테말라의 거대한 괴구멍을 떠올렸다. 당시 그렇지 않아도 열대성 폭풍이 한바탕 몰아쳐서 도시 곳곳이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지름 30m, 깊이 60m인 거대한 구멍 하나가 과테말라 수도인 과테말라시티 도심 한복판에 생긴 것이다. 교차로 한복판에 발생한 이 싱크홀은 3층 건물인 의류 공장 한 채와 1층 건물 두 채를 꿀꺽 삼켜 버렸다. 그리고 공장 안에 있던 경비원 한 명도 건물과 함께 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구멍이 얼마나 큰지 처음 사진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포토샵 조작’에 대한 논란까지 벌어졌었다. 도무지 실제 상황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면서 조작한 사진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이 싱크홀은 100% 진짜였다.
▲ 독일의 작은 도시 슈말칼덴(왼쪽)과 미국 텍사스주 유전지대 데어스에타에서도 ‘괴구멍’이 생겼다. |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싱크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그렇다면 이처럼 무시무시한 싱크홀은 대체 왜 생기는 것이며, 또 어떤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 걸까.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발생하는 거대한 구멍은 지질학 용어로 ‘싱크홀’ 혹은 ‘스왈로홀(swallow hole)’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땅이 푹 꺼지는 현상으로 대개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둥근 형태를 하고 있으며, 지름이나 깊이 모두 작게는 1m에서 큰 것은 600m가 넘는 것도 있다. 또한 예고 없이 순식간에 생기기도 하지만 간혹 오랜 시간에 거쳐 서서히 땅이 꺼지는 경우도 있다.
한 번 발생한 구멍을 다시 메우거나 복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데다 설령 자갈 등으로 메웠다고 하더라도 언제 또 다시 무너지면서 더 커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질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땅이 꺼지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작정 복구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싱크홀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자연 현상으로 발생하는 ‘천재’와 과도한 도시 개발 등에 따른 ‘인재’ 등으로 나뉜다. 먼저 ‘천재’의 경우 구멍이 발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표면 아래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의 종류다. 오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싱크홀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의 공통점은 ‘석회암’ 지대라는 데 있었다.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암은 빗물이나 지하수에 의해 쉽게 침식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석회암이 물에 용해되기 시작하면 균열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빈 공간, 즉 지하 동굴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동굴이 윗부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 구멍이 발생하는 것이다.
석회암 외에도 백운암, 탄산염암, 암염 지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종종 발생하며, 미국의 경우에는 플로리다와 텍사스, 앨라배마, 미주리, 켄터키 등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인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도시 개발을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최근 들어 싱크홀이 도심 한복판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지하수를 과도하게 퍼 올릴 경우 대수층(지하수를 품고 있는 지층)의 수면이 낮아져 빈 공간이 생기면서 결국 윗부분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또한 노쇠한 하수관이나 배수관이 파열되면서 물이 샐 경우에도 지하 암석이 윗부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지반이 약한 곳에 무분별하게 주택이나 공장 등 건축물들을 지을 경우에도 땅이 꺼지면서 구멍이 발생한다.
미 지질연구소의 랜달 오언도프는 “근래 들어 도시 한복판에 싱크홀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과도한 도시 인구 증가와 관련이 있다. 석회암 등 지반이 약한 곳에 농사를 짓는 대신 건물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령 2008년 5월 미 텍사스주 데어스에타 유전지대에서 발생한 지름 274m, 깊이 45m의 거대한 구멍은 지하의 암염이 무너진 데 따른 결과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때 과도했던 석유 시추작업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을 뿐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과테말라 싱크홀의 경우에도 천재보다는 인재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처음 구멍이 발생했을 때 시당국은 “열대성 폭풍 ‘애거사’가 동반한 집중호우로 일시적으로 지반이 약해져서 땅이 꺼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이 말을 곧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파열된 채 오랫동안 지하에 방치되어 있던 하수관이나 배수관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새어나온 물이 암층에 스며들었고, 결국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땅이 꺼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테말라시티는 석회암 지대가 아니었다. 이에 과테말라시티에 거주하고 있는 다트머스 칼리지의 샘 보니스 지질학 교수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라기보다는 하수관이나 배수관이 파열되어 발생한 사고 같다”고 말했다.
실제 화산 폭발 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과테말라시티의 지하 암석은 부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석은 화산 폭발 시 분출되는 암석으로 다공질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구멍이 많아서 물을 잘 빨아들이며 그만큼 쉽게 침식된다. 따라서 노쇠한 관에서 물이 새어나올 경우 점차적으로 지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불과 4.8㎞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2007년 싱크홀 역시 비슷한 원인 때문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구멍이 생기기 전부터 시민들은 노후한 하수관을 보수해 줄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시당국은 뒷짐만 진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제때에 하수관만 정비했다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국의 늑장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밖에도 싱크홀은 지역에 따라서 가뭄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하거나, 간혹 오래 된 폐광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단순한 자연재해나 인재로 보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다름이 아니라 지구 종말의 전조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구멍들은 왜 전부 드릴로 뚫은 것처럼 완벽하게 둥글까?”라고 의심하면서 분명히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구멍을 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구멍 표면에 물기가 없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이것은 지하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붕괴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만일 물이 스며들어서 무너진 것이라면 구멍의 모양이 울퉁불퉁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자칭 외계인학자인 스콧 C.는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분명히 외계인의 소행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땅이 꺼진 이유는 아마 외계인들이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에 건설해놓은 지하기지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기지는 지하 3~6㎞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물론 근거 없는 주장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유야 어찌 됐든 갑자기 발생하는 괴구멍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사고를 당할 수는 없다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질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음 몇 가지 ‘싱크홀 발생 징후’를 소개하면서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건물의 경우 우선 바닥과 벽에 갑자기 금이 가거나, 문이나 창문이 제대로 꽉 닫히지 않을 경우 싱크홀 징후를 의심해볼 수 있다. 또한 우물이나 못에서 흙탕물이 나오거나 혹은 물 색깔이 이유 없이 탁해졌을 경우에도 한 번쯤 주의를 기울여 봐야 한다.
지면의 경우에는 둥근 테두리 모양으로 땅에 균열이 발생하거나 혹은 비가 온 후에 새로운 곳에 물이 고이면서 작은 연못이 만들어질 경우, 땅에 심은 농작물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말라 죽거나 울타리 말뚝이나 나무가 갑자기 쓰러질 경우 등에도 싱크홀을 의심할 수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왼쪽부터 중국 쓰촨성, 저장성, 장시성 싱크홀. |
미스터리홀에 떠는 중국
수개월 새 35개나 생겨
올해 들어 갑자기 곳곳에서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미스터리 구멍 때문에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더욱 공포심이 켜지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쓰촨성, 저장성, 장시성 등에서 무려 35개 이상의 구멍이 생겼으며, 그 크기 또한 작게는 1m에서 크게는 60m까지로 다양했다.
지난해 6월 광시좡족자치구의 한 마을에서 마른 연못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지름 80m, 깊이 20m의 구멍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지난 4월 말에는 쓰촨성 이빈에서 두 달 동안 무려 26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무더기로 발생했다.
또한 6월에는 저장성의 고속도로 한복판이 갑자기 꺼지면서 지름 8m, 깊이 10m의 구멍이 발생해서 트럭 한 대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불과 열흘 후에는 장시성 난창의 도심 한복판 도로에서 발생한 지름 4m의 구멍에 자동차 한 대가 빠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후난성에서는 학교 운동장에 지름 80m의 거대한 구멍이 발생해서 학교 건물 전체가 폭삭 무너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0월 허베이성 탕산의 8차선 도로에서 굉음과 함께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트럭 한 대가 구멍 안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런 괴구멍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자 중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지구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인기 포털사이트인 ‘넷이즈닷컴(netease.com)’의 게시판에는 “2012년 지구 종말론이 사실인가 보다”라며 공포에 떨고 있는 누리꾼들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신이 노하셨다. 인간들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행태에 분노해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리꾼은 “어서 빨리 티벳으로 가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계인의 짓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혹시 구멍에서 외계인이 튀어나오는 것 아니냐” “인간의 힘으로는 저렇게 둥글게 구멍을 파진 못한다. 분명히 외계인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