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24일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경영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1970년 현대차 사원으로 입사한 지 51년 만이다. 사진=일요신문 DB
현대모비스는 24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제44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성환 사장, 배형근 재경부문장(부사장), 고영석 연구개발(R&D)기획운영실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의 사내이사는 총 4명이다. 당초 박정국 대표이사가 현대차로 자리를 옮기면서 생긴 빈 자리만 채우기로 했지만, 최근 정몽구 명예회장이 임기 1년을 남기고 물러나기로 결정하면서 2명을 새롭게 선임했다. 정 명예회장 자리에는 사상 처음으로 상무급 임원인 고 실장이 추천됐다. 직급보다 전문성을 고려한다는 취지에서다. 배형근 부사장은 재선임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해 3월 현대차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같은해 10월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그룹 총수자리를 넘기면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1999년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오른 지 21년 만이다. 정 명예회장은 2015년 현대제철 이사직, 2018년 현대건설 이사직에서도 각각 물러났다.
193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과를 졸업했으며, 1970년 2월 현대차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하면서 독자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형인 몽필 씨가 1982년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장자 역할을 해 왔다.
2000년 현대차 계열 회사로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이후 국내 최초 자동차 전문 그룹을 출범해 자동차 중심 부품산업과 소재산업을 성장시켰다. 홀로서기 당시엔 삼성과 현대, LG, SK에 이은 재계 5위였지만 현재 현대차그룹은 삼성에 이은 2위로 올라서 있다. 2000년 현대차를 비롯해 10개 계열사, 자산 34조 400억 원 규모에서 2019년 말 기준 54개 계열사와 234조 7060억 원 규모로 몸집을 불렸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현대제철·현대건설 등 사내이사에서 차례로 물러나면서도 현대모비스 이사직은 마지막까지 유지해왔다. 정 명예회장이 각별하게 생각해온 회사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성장시키는 발판을 마련한 곳이고, 지금은 현대차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1977년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 초대 사장을 맡아 컨테이너와 H빔 제조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던 회사를 통해 글로벌 컨테이너시장 점유율을 30% 넘게 확보하면서 세계 시장 주도권을 가져왔다. 1987년 현대정공 회장에 취임한 이후엔 현대정공 사업목적에 자동차제조판매업을 추가해 본격적인 자동차 사업도 시작했다. 현대정공이 1991년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가 이듬해 판매량 2만 3700여 대, 시장점유율 52%를 달성하면서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그룹 전문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르고 2002년 현대모비스로 사명을 바꾸면서 각종 사업을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이전했다. 지금은 고부가가치 모듈 등 자동차 부품 생산을 하고 있다.
향후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에도 기업의 실질적인 총수자리에 정의선 회장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는 5월 공정위가 현대차그룹의 총수로 정의선 회장을 지정하면 ‘세대교체’ 작업이 마무리된다.
현대모비스는 이날 주총에서 김대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강진아 서울대 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강 교수는 현대모비스의 첫 여성 사외이사다. 항공 모빌리티·로봇 부품 제조·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포함하는 내용 등의 정관 변경안과 재무제표 승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도 통과시켰다. 배 부사장은 주총에서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중심의 기술 전문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해 나갈 것”이라며 “지속성장을 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