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만에 방영 중단 요구부터 방송사인 SBS의 지상파 재허가 취소 청원까지 맞닥뜨린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진=SBS 제공
지난 23일 방영된 2화에서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역사왜곡과 더불어 교묘한 ‘간접 동북공정’이 문제가 됐다.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된 부분은 연변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가 스토리의 흐름과는 크게 상관 없이 농악을 길게 선보이는 장면이었다. 농악 등 한국 전통문화를 조선족의 문화로 포장해 세계에 알려온 중국의 전적 탓이다.
한국의 농악은 2014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그보다 앞서 중국이 2009년 조선족의 ‘농악무’를 등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당시 중국은 한복과 상모춤을 조선족의 문화로 묶어 중국 국가무형문화재로도 지정했었다.
이후에도 중국은 꾸준히 조선족을 앞세워 랴오닝성 톄링시의 판소리와 옌볜 조선족자치주 아리랑, 가야금, 씨름 등 한국 전통 문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왔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모두 중국의 한 갈래로 주장하고 있는 중국의 행태를 국내외 시청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한 꼴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 뿔난 시청자들의 지적이었다.
역사 왜곡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이번에는 고려 말 충신이었던 최영 장군에 대한 왜곡된 비하 묘사가 문제였다. 극중 한 놀이패가 “그 목사가 충신 최영 장군의 먼 일가친척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래도 되겠나”라고 묻자 상대 배우가 “충신? 하이고, 충신이 다 얼어죽어 자빠졌다니? 그 고려 개갈라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해놓고서리 개백정새끼라고 했지비아니”라고 친 대사가 문제가 된 것.
연변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가 농악무를 선보인 장면을 두고 2009년 중국이 조선족 농악무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시킨 것과 맞물려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사진=‘조선구마사’ 방송화면 캡처
후대에 이르러 평가가 다소 갈리긴 하지만 최영 장군은 당시 권문세족들이 으레 그랬듯 개인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조선 건국에 앞서 이성계와 대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최영의 후손 중에 중용할 인재를 고르려 할 정도로 그 가치를 높게 산 인물이기도 했다. 전쟁에서의 활약 외에도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도민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자 관청의 쌀을 내어 구휼에 앞장섰다는 내용도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에 기록돼 있다. 앞서 태종실록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는 최영 장군의 기록 역시 ‘판타지’라는 미명 하에 왜곡됐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런 가운데 SBS ‘조선구마사’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자게시판에는 24일 오후 기준으로 총 3530여 건의 항의 글이 올라와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매국드라마를 방영 중단해 달라”는 청원글이 8만 명 가까운 동의를 얻었다. 심지어 방송사인 SBS에 대해서도 “한국 문화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현재, 지상파 한국 방송사라면 더더욱 올바른 역사 인식과 높은 문화 감수성을 가지고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이러한 공적 책임을 저버리고 거짓 해명을 하며 계속해서 해당 드라마를 편성, 송출하는 SBS의 지상파 재허가 취소를 촉구한다”며 지상파 방송 재허가 취소 청원도 올라왔다.
이처럼 솟구치는 비난 여론에도 SBS와 제작사 측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자 대중들의 분노는 ‘조선구마사’의 제작을 지원하거나 광고를 편성한 기업들에게 향했다. “매국드라마에 지원한 기업들도 그 드라마의 제작 방향과 결을 같이 하는 것으로 판단하겠다”며 브랜드 집단 보이콧 의사를 밝힌 것이다. 각 기업의 홍보실과 공식 SNS 계정에는 이로 인한 항의가 빗발쳤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기업 측은 “광고 계약 당시 정확한 시나리오를 전달 받거나 설명 들은 바가 없다”며 “문제가 있는 작품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광고를 집행했으므로 신속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24일 오후를 기준으로 호관원, 탐나종합어시장, 코지마, LG생활건강, 반올림피자샵, CJ제일제당, 광동제약, 뉴온, KT, 금성침대, 블랙야크, 바디프렌드, 하이트진로, 아이엘사이언스, 쌍방울 등이 광고를 중단하거나 철회할 방침을 밝혔다.
논란이 이어지자 ‘조선구마사’ 제작 지원 또는 광고 협찬을 진행한 지자체와 기업들은 대다수 손을 떼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SBS 제공
촬영을 지원한 지자체와 관련 단체들도 손을 떼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지난해 ‘조선구마사’에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 사업으로 제작비 지출 비용 일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문경문화관광재단은 올해 이뤄질 ‘조선구마사’의 촬영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촬영 장소 계약을 체결한 나주시 역시 ‘조선구마사’ 측에 장소 사용 취소를 통보했다. 또 방송 엔딩에 나오는 ‘제작지원 나주시’ 등도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극 드라마의 경우 특히 장소 확보를 위한 지자체와의 협업이 중요한데, 이처럼 지자체가 먼저 손을 뗀 경우도 ‘조선구마사’가 최초로 파악된다.
단 하루 만에 걷잡을 수 없이 들불처럼 퍼져 나간 논란을 두고 SBS도 고민에 빠졌다. 24일 연예매체 디스패치에 따르면 SBS는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수용해 다음 방송분 부터는 대본을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북공정은 절대 아니라며 “오히려 판타지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허구와 사실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는 것은 사극 드라마에서 늘 있어왔던 일인만큼 이번 논란도 일반적인 이슈에 불과할 것이라고 오판했다는 것.
앞서 같은 작가의 전작 ‘철인왕후’는 역사 왜곡과 실존 인물 희화화로 해당 성씨 종친회로부터 항의를 듣고 풍양 조씨 가문을 풍안 조씨로, 안동 김씨 가문을 안송 김씨로 교체한 뒤 드라마의 허구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구마사’에서는 이러한 ‘이름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의 건국부터 초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만큼 이제와서 태종 이방원과 충녕대군, 양녕대군이란 주요 인물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뿔난 대중들은 “수정도 필요 없고 드라마 자체를 그냥 종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최근 중국이 한복, 김치, 판소리 등을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신(新)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조선구마사’가)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이미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화가 돼 정말로 많은 세계인들이 시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곡된 역사를 해외 시청자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