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SKT) 커머스 자회사 11번가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손잡고 연내 합작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업계 관심이 쏠린다. 서울 중구 SKT타워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아마존과 손잡고 오는 3분기부터 합작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서비스 형태는 국내 수요가 많은 아마존 제품들을 대량 매입한 뒤 고객 주문 시 배송하는 방식이 언급된다. 11번가가 배송·중개 등의 대가로 아마존으로부터 판매수수료를 받는 형태다. 국내 업체 제품을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 중으로, 11번가를 글로벌 유통 허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아마존 등장, 이커머스 판 뒤흔들까
지난해 하반기 양사 제휴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이커머스 시장의 판을 뒤흔들 플레이어가 등장했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11번가와 아마존의 강점을 조합하면 ‘한국판 아마존’을 외치는 쿠팡을 위협할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SKT가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해 몸집이 더 커지면 아마존과의 협업 시너지는 더욱 커질 수도 있다. 해외직구 이용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따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한 증권사 유통담당 연구원은 “11번가 입장에선 아마존 풀필먼트 서비스나 전략을 활용하고, 해외 상품을 늘려 고객 주목을 받겠다는 복안”이라고 해석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아마존이 한국에 직접 진출하기보단 출혈 없이 11번가를 통해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시도”라면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규모나 성장성이 세계에서 꼽을 만큼 크지만 월마트 등 글로벌 유통사마다 고전하는 독특한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모회사 SKT와 아마존이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2019년 말 SKT는 웨이브·11번가·원스토어북스 등을 이용 가능한 멤버십 서비스 ‘올프라임’을 선보였지만 3월 중 폐지하고 연내 새 멤버십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11번가와 SKT 통신요금제, T멤버십 등 SKT 계열사들 서비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묶어 구독형 서비스로 내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해외직구를 애용하는 국내 소비자와 국내 제품을 사려는 해외 소비자의 신규 유입을 늘리고, 여러 서비스를 연계해 고객을 ‘록인(Lock-in)’하려는 전략이다.
SK텔레콤(SKT) 커머스 자회사 11번가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손잡고 연내 서비스를 시작하지만 업계 기대감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미국 일리노이주 웨이크건의 아마존 창고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빅 이슈, 시장이 싸늘해진 까닭
그러나 현재 서비스 시작을 앞두고 분위기가 지난해와 달라졌다. 아마존은 국내 시장에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상태로 11번가와 제휴했고, 11번가도 물류센터를 최근 처분했다. 3월 이천 물류센터 부지와 건물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에 맞춰 해당 물류센터 운영을 멈췄고, 현재 파주 물류센터에서만 사업 물량을 소화한다.
11번가는 최근 우정사업본부(우체국택배)와 협력해 입점한 소상공인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택배단가를 제공하는 서비스 ‘상생택배’를 출시했고, 입점업체 제품을 익일 배송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아마존 직구 물량 소화를 위해서는 조만간 국내 물류센터를 새로 계약하거나 택배사와 제휴하는 등 배송 거점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경우 보관비 등 부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직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11번가 수익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격 경쟁력과 상품 다양성, 배송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면 11번가는 해외직구만으로 서비스 차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외직구 사이트들이 이미 여럿 존재하고, 아마존에서 직접 주문해도 대부분 일주일 내 배송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직구 제품을 얼마나 빨리 받을지도 모르고, 가격 메리트가 없다면 11번가보다 더 싼 곳에서 거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금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직구보다는 상품구색과 신선식품, 배송서비스가 더 주목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유통담당 연구원은 “11번가 입장에서 아마존 직구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11번가가 국내로 대량 매입할 수 있는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아마존과의 협력으로 차별화에 성공하려면 물류센터를 마련해 더 빨리 배송해야 하는데 물류 인프라가 한정적인 상황에서는 상품 가지 수가 제한적일 테고 배송도 쿠팡을 따라가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판매 수수료 책정에서 11번가가 아마존에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아마존이 타사들과도 접촉했지만 11번가와 손잡은 이유는 아마존이 너무 큰 커미션을 요구하자 타 업체들은 거절했는데 11번가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란 후문이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아마존과의 제휴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SK그룹 각 계열사들이 아마존의 IT 기술을 활용하거나 고객DB(데이터베이스) 활용 노하우를 얻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SKT와 11번가 측은 “아마존과의 서비스 협업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11번가의 물류 투자나 불리한 조건의 계약 등에 대해서는 “물류센터를 마련할 계획은 없고 검토하지 않았다”며 “불리한 조건에 아마존과 커머스 사업 제휴 계약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11번가와 아마존 간 협의가 논의된 과정에 대해서도 추가로 얘기 나온 바 없다”고 설명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