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동동다리거리’ 전시 일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슬기는 한국 전통 건축의 요소인 문살과 민요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 설치 작품 ‘동동다리거리’를 선보였다. 심사위원단은 이슬기의 작품이 세련되면서도 독특한 장소특정적 설치로 전통을 현대적이면서도 유희적으로 재해석했고 코로나19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한 은유를 섬세한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동동다리거리’는 한국의 전통 문살과 민요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 설치작품으로 흡사 전통 가옥의 창호지를 바른 문살을 연상케 한다. 이곳을 통과하면 ‘마술적 공간’이 나온다. 달의 회전과 민요의 장단이 문살의 구조에 반영된 커다란 문을 전시실 벽에 그리는 방법으로 구상했으며 전시장 곳곳에서는 한국의 ‘다리세기’ 민요가 흘러나온다.
전시장 한쪽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격리되어 만나지 못하게 된 작가의 지인들이 보낸 세계 각지의 강물이 담긴 유리 용기들을 걸었다.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관계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을 반영했다.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감각과 시적인 분위기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롤리타 자블론스키엔느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작가의 이중적 정체성이 반영된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과 유희적 요소들의 조화”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토퍼 류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는 “우아하면서도 친밀한 공간으로 서로 대조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혼합한 설치가 돋보였으며 일종의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패트릭 플로레스 필리핀대 교수는 “상상력과 생기, 과하지 않은 설치가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올해의 작가상 2020’ 최종 수상자로 이슬기 작가(49)가 선정됐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불 작가’로도 알려진 이슬기는 1990년대 초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작가로 일상적인 사물과 언어, 자연의 근원적 형태에 대한 관심을 조형성이 강조된 조각이나 설치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전통과 민속에서 소재를 얻어 공예 장인들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즐겨 경상남도 통영의 누비이불 장인, 멕시코 산타마리아 익스카틀란의 바구니 장인을 비롯한 공예 장인들과 함께 작업했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해온 미술상이다. 시각예술가 4인을 선발해 신작 제작을 지원하고, 전시를 열어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0’ 후보로는 이슬기, 김민애, 정윤석, 정희승 등 4명이 올랐다. 후보 작가 4명의 전시는 다음달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어진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