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각종 논란에 휘말린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처럼 방송 첫 주에 광고 및 협찬 기업들과 협찬 지자체들이 줄줄이 손절에 들어가는 상황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자들은 왜 유독 ‘조선구마사’에게만 가혹한 것일까. 최근 중국 네티즌들이 한복, 김치, 판소리 등이 원래는 중국의 문화라는, 소위 ‘중국 문화공정(신 동북공정)’을 주장하면서 감정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송관계자들은 tvN ‘철인왕후’ 당시부터 쌓인 앙금이 SBS ‘조선구마사’에서 폭발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케이블 방송 tvN 드라마에서 시작된 분노가 왜 지상파 방송 SBS 드라마에서 폭발한 것일까.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중국풍 논란과 역사왜곡으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조선구마사’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 사진=SBS 제공
#박계옥 작가가 조선족?
네티즌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박계옥 작가다. 그는 ‘철인왕후’와 ‘조선구마사’의 대본을 집필한 작가로 두 드라마의 가장 확연한 공통점이다.
‘철인왕후’의 원작은 중국에서 소설이 나온 뒤 웹 드라마까지 제작됐던 ‘태자비승직기’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의 대표 콘텐츠인 한국 드라마가 왜 하필 중국 소설과 웹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국 드라마를 제작했느냐가 첫 불만이었다. 게다가 방송이 시작된 뒤에는 ‘조선구마사’처럼 전통유산을 폄하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아왔다.
김소용(신혜선 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한낱 ‘지라시’네”라고 말하는가 하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걸작 종묘제례악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라는 발언을 했다. 또한 실존인물인 순원왕후와 신정왕후의 캐릭터를 너무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철인왕후’가 종영하고 한 달여 뒤에 방영을 시작한 ‘조선구마사’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계속되자 일부 네티즌들은 ‘박계옥 작가가 조선족(중국동포)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영화 ‘댄서의 순정’ 등 박 작가가 대본을 쓴 기존 작품에 조선족 캐릭터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불거진 의혹인데 사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선구마사’ 측도 관련 의혹을 보도한 이데일리에 “박계옥 작가는 조선족이 아니”라고 밝혔다.
‘철인왕후’가 종영하고 한 달여 뒤에 방영을 시작한 ‘조선구마사’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계속되자 일부 네티즌들은 ‘박계옥 작가가 조선족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사진=tvN ‘철인왕후’ 홈페이지
그런가 하면 중국 자본의 힘 때문이라는 의혹도 있다. 박계옥 작가가 최근 중국 콘텐츠 제작사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와 집필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유산 폄하와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철인왕후’ 방송이 끝난 뒤 박 작가는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와 계약을 맺었고 바로 ‘조선구마사’를 집필했다.
중국 대형 콘텐츠 제작사인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는 MBC 드라마 ‘이몽’에 투자한 바 있으며 올해에도 한국 드라마 4~5편의 드라마 제작에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 유명 드라마 작가들과의 집필 계약도 추진 중인데 그 첫 번째 계약 대상이 바로 박계옥 작가다.
#공동 제작사들 살펴보니…
중국 자본의 영향력을 얘기하려면 박계옥 작가보다 드라마 제작사에 투자된 중국 자본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철인왕후’와 ‘조선구사마’의 공통점은 제작사에서도 드러난다. ‘철인왕후’는 YG스튜디오플렉스와 스튜디오드래곤, 크레이브웍스가 공동 제작했고 ‘조선구마사’는 YG스튜디오플렉스와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가 공동 제작한다. 두 드라마의 공동 제작사 가운데 YG스튜디오플렉스와 크레이브웍스가 일치한다.
YG스튜디오플렉스는 YG엔터테인먼트가 99.09%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그런데 모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중국 기업 상하이펑잉, 텐센트 등과 오래되고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YG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와 전략적 업무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2016년에는 텐센트그룹으로부터 1000억여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상하이펑잉은 YG엔터테인먼트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420억 원어치의 보통주를 확보했으며 탕 샤오밍 상하이펑잉 자본투자위원회 회장은 YG엔터테인먼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탕 샤오밍 사외이사의 임기는 2022년 3월 22일까지다.
YG스튜디오플렉스와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 등 ‘조선구마사’ 공동 제작사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닌 순수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밝혔다. 사진=SBS ‘조선구마사’ 포스터
상하이펑잉과 텐센트도 별개의 기업은 아니다. 상하이펑잉의 모회사는 중국 1위 온라인 티케팅 업체 웨잉인데 텐센트가 웨잉의 2대 주주다. 지금은 특별관계가 해소돼 상하이펑잉 보유 주식의 향방을 파악하기 어려워졌지만 지난 2월 5일 공시된 자료에는 상하이펑잉이 5.15%, 텐센트모빌리티는 4.36%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두 회사의 지분을 합치면 9.51%나 된다.
이런 중국 자본으로 인해 ‘철인왕후’와 ‘조선구마사’에서 연이어 논란이 야기됐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혹이 증폭되자 YG스튜디오플렉스와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 등 ‘조선구마사’ 제작사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닌 순수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며 “최근 이슈가 됐던 중국 협찬 및 제작 지원 사례와 달리 ‘조선구마사’는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밝혔다. 실제로 ‘조선구마사’에 중국 기업의 PPL이 들어와 논란이 된 것은 아니다. 이번에 광고와 제작 지원 등을 중단한 기업은 모두 한국 기업이다. 따라서 ‘순수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는 입장이 나온 것이다.
다만 근본적으로 제작사 가운데 YG스튜디오플렉스의 모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에 중국 기업의 지분이 존재한다는 지점이다.
#국내 엔터업계 전반 파고든 텐센트 자본
드라마 업계에서는 지분 관계만으로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지금은 YG엔터테인먼트에서 중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3월 17일 특별관계가 해소된 상하이펑잉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투자금 회수 작업을 진행해왔다.
엔터업계 관계자들은 텐센트라는 기업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텐센트의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진출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텐센트는 바이두,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 3대 IT 기업 가운데 한 곳이다. 텐센트의 국내 기업 투자는 YG엔터테인먼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JTBC스튜디오에도 1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크래프톤, 넷마블, 카카오 등에도 거액을 투자한 주요 주주다. 텐센트가 투자한 넷마블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도 협업이 이뤄졌다.
또한 텐센트는 ‘중국판 넷플릭스’ 아이치이의 지분도 갖고 있다. 아이치이는 김은희 작가, 이응복 감독, 배우 전지현, 주지훈 등이 협업해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지리산’의 글로벌 방영권(국내, 중국 제외)을 구매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따라서 단순히 YG엔터테인먼트에 투자된 텐센트의 자본이 ‘조선구마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다. ‘조선구마사’ 외에도 텐센트의 자본이 투자된 드라마와 게임 등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장면 곳곳 중국색 풀풀~ 피단·월병·고쟁이 왜 나와 엑소시즘 판타지 사극을 표방한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에게 영혼을 지배당한 ‘생시’와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다. ‘생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좀비로 ‘조선구마사’는 한국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크리처 장르인 터라 기대치가 높았다. ‘조선구마사’는 이례적으로 광고 없는 드라마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첫 방송에서 충녕대군(장동윤 분)이 구마사제 요한(달시 파켓 분)과 통역사 마르코(서동원 분)를 기생집에서 대접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중국식 소품으로 꾸민 공간이 특히 문제가 됐는데 건물과 식탁 모양, 그리고 음식이 모두 중국식이었다. 식탁 위에는 검은 도자기에 빨간 색으로 ‘주(酒)’라고 적혀 있고 피단(오리 알을 삭힌 음식)과 월병, 중국식 만두, 양갈비 등의 중국 음식이 연이어 나온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도무녀 무화(정혜성 분)의 의상이 요즘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의혹부터 배경 음악도 중국 전통 현악기인 고쟁으로 연주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 등이 연거푸 제기됐다. 또한 악령으로 인해 환각에 휩싸인 태종(감우성 분)이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에선 역사 왜곡 논란이 야기됐다. 후폭풍은 거셌다. 성난 시청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방송 중지를 요청하는 글을 게재했고, 하루 만에 1000여 건의 민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됐다. 촬영 장소를 협찬한 나주시와 문경시에도 민원이 빗발쳤고 온라인 청원도 잇달았다. 이에 나주시는 나주시영상테마파크 사용 관련 제작지원 계약을 철회했고 문경시 역시 제작비 환수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조선구마사’에 제작 지원 및 협찬을 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결국 삼성전자, KT,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하이트진로, 명인제약, 금성침대, 혼다코리아, 한국간편결제진흥원, 블랙야크, 쿠쿠, 시몬스, 웰빙푸드, 아이엘사이언스, 씨스팡, 반올림피자샵, 에이스침대, 바디프렌드, 에이블루, 코지마, 뉴온, 광동제약, 동국제약, 다이슨, 다우니 등의 기업이 광고 편성을 중단했다. 또한 제작 지원 기업인 쌍방울, 탐나종합어시장, 호관원 등도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이로써 ‘조선구마사’는 매우 이례적인 ‘광고 없는 드라마’가 될 위기다. 결국 SBS는 한 주간의 결방을 결정했다. 이 기간 동안 전체적인 내용을 재정비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SBS와 공동 제작사들은 현 시점에서는 조기 종영이나 방송 철회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의 보이콧 선언이 줄을 잇고 있는 데다 광고 없는 드라마가 된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인 방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