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한국앤컴퍼니가 3월 30일 주총을 앞두고 있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왼쪽)과 차남 조현범 사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한국앤컴퍼니 갈등 구도는 ‘아버지 조양래 회장·차남 조현범 사장과 장남 조현식 부회장·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으로 형성돼 있다. 지난해 6월 조양래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보유 지분 23.59%를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매도한 게 발단이다. 장남과 차남의 지분율이 비슷했던 상황에서 지분을 차남에게 몰아주면서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장남과 장녀는 아버지 결정에 의구심을 가졌다.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아버지가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의사인지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도 누나의 편에 서면서 힘을 보탰다. 차녀 조희원 씨는 당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 입장으로 가족 간 경영권 다툼에선 다소 떨어져 있었다.
한국앤컴퍼니는 3월 30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감사위원 선임 등의 안건을 의결한다.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양 측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표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지분율로만 보면 최대주주인 조현범 사장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분 19.31%에 아버지 지분 23.59%가 더해지면서 총 42.9%로 늘었다. 반면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율은 19.32%, 조희경 이사장 지분율은 0.83%로 둘이 합해 20.15%다.
국민연금(5.21%)과 소액주주(21.61%)가 장남·장녀의 손을 들어주면 차남 조현범 사장 지분율과 비슷해진다. 이때는 차녀 조희원 씨가 들고 있는 지분 10.82%가일 캐스팅보트가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가 지분 전체를 일제히 밀어주는 일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변수가 있다. 올해 주주총회부터 적용되는 3%룰이다. 지난해 말 상법 개정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위원이 있는 상장사는 다른 사외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하고, 특히 이 경우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했다. 지분율에서 밀리더라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감사위원을 내세워 주총에서 선임에 성공하면 경영을 감시할 수 있다. 한국앤컴퍼니는 3월 일부 감사위원의 임기가 끝나 개정안 시행 첫해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지분율은 차남 조현범 사장이 크게 앞서고 있지만 올해 주총부터 적용되는 3%룰이 변수로 떠올랐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앤컴퍼니그룹 본사.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제공
조현식 부회장은 3%룰 적용을 감안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앤컴퍼니에서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타이어 일가와 항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3%로 동일하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결권도 줄어들지만 최대주주인 조현범 사장의 제한 폭이 훨씬 더 크다. 조 사장은 감사위원 선임 시 보유 지분 42.9% 중 3%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40% 가까운 지분율이 무용지물이 된다.
조현식 부회장은 배수진을 쳤다. “한국앤컴퍼니가 보다 독립적이고 투명한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자신이 추천하는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회 위원에 선임하라고 회사 쪽에 요구했고, 이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자 주총에서 분리 선출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면 현재 맡고 있는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직까지 걸었다. 조현범 사장 측은 감사위원 후보로 김혜경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추천하며 맞불을 놨다.
결국 소액주주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이번 표 대결의 결말이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소액주주 표심의 향방은 예측이 쉽지 않다. 국민연금의 선택은 일반적으로 소액주주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3%까지 제한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는 참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꾸준히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매각해왔던 만큼 소액주주들이 국민연금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월 감사위원 선임 내용을 담은 조현식 부회장의 주주서한이 공개된 이후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소액주주들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총을 앞두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안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장남 조현식 부회장 손을 들어줬다. 차남 조현범 사장이 지난해 말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2심 판결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로 새롭게 선임된 점을 문제 삼았다.
서스틴베스트는 “사외이사가 과반수인데도 대표이사로 선임된 건 이사회 독립성이 결여됐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또 회사 수익성이 하락해 주주가치가 훼손되는데도 임원 보수가 계속 늘어난 점도 독립적인 감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도 조현식 부회장 안건에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조현범 사장 쪽 감사위원인 김혜경 후보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직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한 것을 두고 독립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했다.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다. 또 조현식 부회장 쪽 감사위원인 이한상 후보의 과거 지배구조 개선 및 다른 기업들의 사외이사 경험에도 높은 평가를 했다.
반면 또 다른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조현범 사장의 문제는 신임 후보자에 대한 반대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 이한상 후보자가 선임될 경우 이사회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조현범 사장 쪽 손을 들었다.
올해 주총에서 벌어질 표 대결이 끝나도 경영권 분쟁은 계속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총이 임박한 최근 조현식 부회장이 입장문을 내고 자신이 내세운 감사위원 선임에 성공하더라도 회사와 관련된 모든 직을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조 부회장은 대표이사 외에도 사내이사와 부회장직을 갖고 있다. 조 부회장이 감사위원 선임으로 대표이사에 사임하더라도 사내이사와 부회장직을 유지하면 감사위원이라는 우군을 얻은 만큼 이사회와 기업 경영에서 오히려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
조현식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조 부회장 쪽으로 승기가 기울면 내년에는 사내이사 연장안을 두고 다시 한 번 붙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주총은 경영권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고, 실제 본 게임은 내년 주총이 되는 셈이다.
현재 서울가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성년후견 신청 소송도 관심사다. 법원이 조양래 회장의 정신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면 조현범 사장이 지분을 넘겨준 것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지분 매매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조 회장이 재산을 조 사장에게 증여 또는 상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조 회장이 재산 증여와 같은 의사 결정을 할 때 후견인이 관여할 수 있어서다. 앞서 조 사장은 아버지에게 지분을 넘겨받을 때 이 지분을 담보로 은행에 돈을 빌려 2400억 원을 지급했다. 상속·증여 등으로 이 빚을 갚아야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된다.
지난해까지 중립 입장이었던 차녀 조희원 씨도 올해 3월 성년후견 소송에 ‘참가인’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서울가정법원에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관계인으로 소송에 참여했으나 절차에 더욱 깊게 관여할 수 있는 참가인으로 자격을 바꾼 만큼 향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 중이다. 법원은 지난 3월 10일 조양래 회장의 건강상태 판단을 위한 가사 조사를 시작했다. 법원의 후견 개시 여부 결정은 이번 조사를 포함해 짧으면 3~4개월 걸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