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키는 아내에게 가사 비용을 시급으로 지급한다. 사진= TV도쿄 프로그램 ‘집에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캡처
아이코(39)와 가즈키(42)는 게임회사 동료로 만났다. 호감이 싹튼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성향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단 입맛부터 달랐다. 아이코는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가즈키는 간이 센 음식을 선호했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맞질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이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결혼을 택했다. ‘가능한 서로를 터치하지 말고, 독립적인 상태로 관계를 지속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2년 전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도쿄 네리마구의 한 아파트를 임대했다. 월세는 12만 엔(약 120만 원). 결혼 후에도 소득을 각자 관리하고 있으며, 집세를 비롯해 식비, 수도세, 전기세 등 모든 생활비를 균등하게 부담한다.
다만, 남편 가즈키의 회사 일이 좀 더 바쁘기 때문에 청소와 요리는 주로 아이코가 맡는다. 가즈키는 “공정성을 위해 아내가 가사 일을 할 때마다 시간당 1500엔씩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매달 4만 엔(약 40만 원) 정도를 아내에게 입금한다.
가계와 노동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 외에도 두 사람은 각자의 생활패턴에 따라 하루를 보낸다. 가령 식사는 휴일에만 같이 하며, 평일에는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먹는 식이다. 심지어 침대도 따로따로다. 한방에서 잠들긴 하나, 각자 1인용 침대가 있다. 이 밖에도 화장지, 샤워젤, 비누 등 위생용품 또한 다른 것을 사용한다.
둘은 서로 취향에 맞게 각자 다른 디자인의 결혼반지를 선택했다. 사진=TV도쿄 프로그램 ‘집에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캡처
이처럼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상을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이유는 취향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 예를 들어 결혼반지를 고를 때도 둘은 엇갈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라 다투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가즈키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각자 끼자”고 제안해, 결국 결혼반지조차 디자인이 다르다.
드물게 의견이 일치했던 적도 있었다. 다름 아니라 ‘결혼식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희한하게도 의견이 찰떡같이 맞는다. 둘은 결혼식을 따로 올리지 않았고 혼인신고만 마쳤다. 대신 “그 돈은 호화롭게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데 썼다”고 한다.
‘서로의 생활패턴을 간섭하지 않는다.’ 가즈키와 아이코의 결혼생활 방식이다. 이렇다보니 거실에 함께 있는 시간보다 각자의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부부지만 아직까지 상대를 부를 때도 꼬박꼬박 성을 붙여서 풀네임으로 부른단다.
가즈키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아이코는 “처음엔 남편이 독특하다고 느꼈지만, 내 취미와 선택에 대해서도 남편이 존중해주기 때문에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신혼집에는 결혼하기 전 각자 사용했던 싱글침대 2개를 가져왔다. 사진=TV도쿄 프로그램 ‘집에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캡처
확실히 흔한 부부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이에 대해 아이코는 “결혼 후 모든 것을 꼭 공유해야 하나 싶다”며 “서로 얽매이지 않으니 좋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비록 다른 부부들만큼 친밀하지 않아도, 그래도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것이다. 아이코는 “행복함을 느끼니 일반적인 부부와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방식을 바꿀 의향이 없음을 내비쳤다.
방송이 나간 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두고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부부가 아니라 파트너로 보인다” “룸메이트 같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또 “아내에게 시급을 주는 건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아이가 없고 늦게 결혼한 사이라면 오히려 평화롭고 좋을 것 같다” “부부라도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며 가즈키와 아이코의 결혼생활 방식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인 부부의 지갑 사정은 어떨까. 결혼정보회사 프라코레가 2020년 10월 ‘신혼부부의 가계관리’에 관한 설문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1127명의 신혼부부에게 “누가 가계관리를 하고 있느냐”고 묻자 “아내가 관리하고 있다(478명)”는 답이 가장 많았고, 이어 “각자 관리한다(458명)”, “남편이 관리한다(117명)”, “기타(74명)” 순이었다.
상세 답변으로는 “아내가 관리하면서 세세히 가계부를 쓰고 있다”는 부부가 많았다. “가계부 앱 등을 통해서 수입·지출 내역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맞벌이 부부 증가로 인해 ‘각자 관리한다’는 쪽이 크게 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답변 가운데는 “집세나 고정비는 남편, 식비나 일용품은 아내가 낸다” “가계는 완전 더치페이, 그 외 지출은 자유”라는 응답을 찾아볼 수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