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두 질문
‘구미 3세 여아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핵심은 ‘왜 방치했나’에서 시작됐다. 김 씨는 재혼을 위해 기존에 살던 집에 3세 여아만 홀로 두고 떠났고 결국 그 아이는 사망에 이르렀다. “전남편 아이라 보기 싫었다”는 김 씨의 말에 대중은 더욱 분노했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에 살던 김 씨의 부모는 손녀가 방치돼 사망한 사실을 6개월 동안 몰랐다고 했다. 당시 석 씨는 바로 위층에 살았던 딸 김 씨와 사실상 인연을 끊은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석 씨가 구미경찰서에서 검찰로 이동할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망한 아이가 김 씨가 아닌 석 씨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집중됐고 그만큼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미스터리 핵심 요소가 부각된다. 석 씨가 외도로 아이를 가진 것이 알려지면서 ‘왜 출산했나’라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애초에 외도로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것이라면 출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한 출산의 목적이 존재할 것이라는 게 갖가지 추측의 출발점이 됐다. 석 씨는 임신 사실을 주위에 감춰가며 어렵게 아이를 출산해 딸의 아이로 둔갑시켜 손녀로 만들었지만 결국 아이를 홀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결국 ‘왜 출산했나’와 ‘왜 방치했나’라는 두 가지 상반된 질문의 답이 충족돼야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
#난자 기증설
가장 먼저 제기된 설 가운데 하나는 석 씨가 김 씨에게 난자를 기증했다는 소문이다. 석 씨가 거듭 임신과 출산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석 씨 남편은 경찰이 석 씨가 출산한 것으로 지목한 시점에 촬영한 사진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만삭으로 배가 나왔다고 보기 힘든 사진이다. 석 씨가 실제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았는데 딸 김 씨가 출산한 아이와 친자 관계인 것으로 유전자 검사가 나왔다면 ‘난자 기증’이 답일 수 있다. 김 씨가 모친 석 씨의 난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는 설이다. 그렇지만 당시 스무 살 즈음이던 김 씨가 굳이 모친의 난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할 이유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가진 아이를 방치해 사망하게 했다는 부분은 더더욱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석 씨가 친부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친부가 상당한 거부로 아이를 출산한 뒤 친부에게 보내기로 해 출산을 강행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를 낳아 보내주고 상당한 금액을 챙기려 했지만 모정으로 자신의 아이를 보내지 않고 딸 김 씨가 낳은 아이를 대신 보냈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는 ‘왜 출산했나’라는 질문에는 답이 되지만 ‘왜 방치했나’는 답이 못 된다. 그런 애틋한 모정으로 손주로 둔갑시킨 아이를 사망할 때까지 몰랐다는 부분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리 출산설
딸과 엄마가 비슷한 시점에 임신을 해서 같은 성별의 아이를 출산했다는 점을 근거로 모녀가 ‘불법 대리모’였다는 설도 제기됐다. 20대 김 씨가 돈을 목적으로 대리 출산을 했다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40대 중반인 석 씨가 함께 대리모가 됐다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불법 대리모설’을 제기한 네티즌들은 ‘행여 김 씨가 유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석 씨가 함께 대리 임신을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국 석 씨와 김 씨가 둘 다 출산에 성공했고 김 씨가 출산한 아이는 대리 출산을 요청한 집으로 보내고 석 씨가 출산한 아이는 김 씨의 딸로 키우려 했지만 결국 석 씨와 김 씨에게 모두 버림받았다는 주장이다.
‘불법 대리모설’은 “왜 출산했나”와 “왜 방치했나”를 모두 충족시키는 가설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석 씨는 출산 사실을 감추고 김 씨는 사망한 아이가 자기 딸인 줄 알았다고 거듭 주장한 이유를 두고,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뭔가 더 큰 범죄를 감추려 하기 위함’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불법 대리모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모녀가 동시에 불법 대리모가 됐다면 그 목적은 돈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출산 전후 이들이 상당한 거액을 받았어야 하는데 경찰 수사 과정에서 그런 큰돈이 오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석 씨 부부가 살던 집과 아이가 방치돼 시신으로 발견된 빌라는 모두 원룸 형태다.
게다가 경찰은 석 씨가 출산 임박 시점이던 2018년 자신의 휴대전화 등으로 ‘출산 준비’ ‘셀프 출산’ 등의 단어를 검색했으며 그 즈음 평소보다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다닌 증거를 확보했다. ‘불법 대리모설’은 불법적인 의료 시술을 해주는 병원이나 의사를 기반으로 하는 터라 석 씨가 ‘셀프 출산’을 검색할 이유가 없다. 또한 김 씨의 아이만 정상적인 출산 기록이 남아 있다는 부분도 ‘불법 대리모설’로는 설명이 안 된다.
김 씨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모녀 외도설
상황은 3월 25일 혈액형을 통해 급변한다. 김 씨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혈액형이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라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 씨가 출산한 아이는 김 씨와 전남편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혈액형이라 모녀가 공모해 두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추측에 의한 설이다.
이는 당시 석 씨와 김 씨가 둘 다 외도를 해서 임신·출산을 했고 김 씨가 낳은 아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속이기 위해 혈액형이 맞는 석 씨의 아이로 바꿔치기를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석 씨와 김 씨가 모두 외도로 아이를 출산했다는 ‘모녀 외도설’로는 ‘석 씨가 왜 출산했나’에 대한 답이 모호하다. 출산 전부터 김 씨 아이의 혈액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감안해 출산을 강행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26일 현재 구미경찰서는 혈액형 분류법으로 드러난 상황을 바탕으로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한 시기와 장소를 특정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씨가 아이를 출산한 산부인과 기록에 따르면 김 씨가 낳은 아이의 혈액형은 A형이다. 김 씨는 B형(BB), 전남편은 AB형으로 둘 사이에선 A형 아이가 생길 수 없다. 경찰은 김 씨가 외도로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산부인과에서 김 씨가 출산한 아이의 혈액형 검사를 하기 전에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다고 보고 있다. 즉, 산부인과에서 혈액형 검사를 실시한 시점은 석 씨가 이미 아이를 바꿔치기한 뒤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석 씨가 산부인과에서 병원 관계자와 김 씨 모르게 아이를 바꿔치기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김 씨가 산부인과 모자동실을 사용해 신생아와 함께 병실에 있었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생기지만 혈액형 검사도 하기 전인 갓 태어난 신생아가 바뀌었는데 아무로 몰랐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석 씨가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아무도 모르게 산부인과로 데리고 와서 다시 김 씨가 낳은 신생아를 몰래 데리고 나갔다는 대목도 이해가 쉽지 않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