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복잡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이들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있다. 애초 김 씨가 자신의 딸을 빈 집에 홀로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알려졌을 당시 가장 큰 의문은 바로 아래층에 살던 석 씨 부부가 그 사실을 6개월가량 모르고 지내다 뒤늦게 사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김 씨가 10대 후반 가출해 동거하면서 부모와 사실상 인연을 끊은 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부모와 인연을 끊은 딸이 같은 빌라 바로 위층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언론에 “이들은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며 “가족 사이에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구미경찰서에서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3세 여아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석 씨와 김 씨가 사실상 인연을 끊은 사이로 보이지 않는 정황이 거듭해서 드러났다. 일요신문은 이들이 거주한 빌라 주변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두 모녀가 같이 미용실을 찾았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성인이 된 딸과 모친이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는 것은 그만큼 모녀 관계가 각별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관련기사 [르포] ‘절연’ 모녀가 함께 미용실에? ‘구미 3세 여아 사건’ 현장 추적). 그리고 석 씨와 김 씨가 몇 달 전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개됐다.
혈액형 분류법으로 드러난 상황을 ‘모녀 외도설’로 보느냐,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한 시기와 장소를 특정한 것으로 보느냐에 있어서 모녀의 평소 관계가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인연을 끊은 사이’라면 석 씨가 김 씨 몰래 산부인과에서 신생아를 바꿔치기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김 씨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날 수 없는 A형 아이를 출산한 게 되는데, 석 씨가 딸이 외도를 했다는 의심을 받게 될지라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이를 뒤바꾼 셈이다.
반대로 모녀 사이가 각별했다면 둘 다 외도를 해서 각각 아이를 출산한 뒤 딸 김 씨의 외도 사실을 감추려 모녀가 공모해 아이를 뒤바꾼 게 된다.
모녀 사이를 설명할 작은 단서인 두 사람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는 “눈썹을 빼고 둘째가 첫째를 닮았다”(석 씨가 보낸 메시지)와 “엄마가 둘째 눈썹이 없다고 놀리는 중”(김 씨가 보낸 메시지)이다. 첫째가 사망한 3세 아이며 둘째는 김 씨가 2020년 재혼해 낳은 아이다. 메시지 내용만 놓고 보면 김 씨는 아이가 뒤바뀐 것을 모르는 뉘앙스이며 석 씨는 김 씨가 첫째 아이(실제 석 씨 둘째 딸)를 방치한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석 씨와 김 씨가 몇 달 전에도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면 ‘인연을 끊은 사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이 바꿔치기와 아이 방치를 서로 모르고 있는 듯한 내용은 공모에 의한 ‘모녀 외도설’을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라는 경찰 얘기는 석 씨가 조선족이라는 풍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경북경찰청은 3월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석 씨가 조선족이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석 씨는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한국인 회사원으로, 남편 역시 회사원”이라고 밝혔다.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라던 경찰이 ‘평범한 회사원 부부’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애초 20대 여성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재혼하며 빈집에 홀로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판단했던 경찰은 관련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유전자 검사 이후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정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의혹이 거듭되며 전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언론 취재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는 데 반해 경찰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