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GIO는 3~5년 뒤 해외사업에서 망한다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사내 간담회에서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네이버, 일본 북미 유럽 앞으로
3월 1일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로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Z홀딩스는 경영통합을 완료하고 새로운 ‘Z홀딩스’로 출범했다. 양사는 Z홀딩스 지분 65%를 보유한 지주사 ‘A홀딩스’ 지분을 50%씩 가진다. 이해진 GIO는 A홀딩스 공동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번 통합을 통해 Z홀딩스는 일본 최대 규모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용자 3억 명, 클라이언트 1500만 개 이상을 확보했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는 라인·야후와 협업해 올해 상반기에 일본에 출시될 예정이다. Z홀딩스는 2023년 달성 목표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2조 엔(21조 2000억 원), 2250억 엔(2조 4000억 원)을 제시했다. 향후 5년간은 5000억 엔(약 5조 3000억 원)을 투자해 전 세계에서 약 5000명의 인공지능(AI) 엔지니어를 확보할 방침이다.
북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발걸음도 빠르다. 지난 1월 네이버는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지분 100%를 6억 달러(약 6533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이다. 왓패드는 50개 이상의 언어를 지원하고, 전 세계 이용자가 9000만 명에 이른다. 북미 시장에 운영 중인 네이버웹툰과 합치면 1억 6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네이버는 왓패드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글로벌 영상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5월 네이버웹툰은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했다.
유럽시장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월 네이버는 ‘코렐리아 캐피탈’을 통해 왈라팝에 1억 1500만 유로(약 1550억 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왈라팝은 스페인 중고거래 서비스 시장에서 약 63%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패션 리세일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음향기술전문기업 ‘드비알레’, 리쿠르팅 플랫폼 ‘잡티저’, 모빌리티 서비스를 운영하는 ‘볼트’ 등 17개 기업에 투자한 바 있다.
2017년 이해진 GIO가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해진 GIO “망하면 책임지겠다”
네이버의 이 같은 해외 시장 공략은 이해진 GIO의 의중이 강력하게 투영됐다. 규제와 논란을 피해 해외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네이버가 국내 사업 진출을 두고 지나치게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지난 2월 25일 네이버 사내 간담회에서 직원들은 “국내 사업 부문에 있어 공격적인 카카오와 쿠팡에 1위를 뺏기는 것 아니냐”며 경영진에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3월 11일 이해진 GIO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해진 GIO는 “한정된 기술과 기획 인력을 어디에 집중시킬지 판단해야 할 때 국내보다는 해외가 더 좋은 결정”이라며 “3∼5년 뒤 제가 하자고 했던 해외사업이 망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라고 말했다.
이해진 GIO의 이 같은 결정은 네이버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따라붙은 규제와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네이버는 최근 국내에서 논란을 빚은 서비스를 하나둘씩 접고 있다. 지난 2월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16년 만에 폐지했다. 지난해는 스포츠·연예 뉴스 댓글과 이해진 GIO가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랭킹뉴스가 사라졌다. 2018년에는 포털 뉴스 댓글조작 사건(일명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인해 뉴스편집에서 손을 뗐다. 문제는 네이버 성장의 1등 공신인 ‘검색·광고’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치플랫폼(검색·광고) 매출은 2조 8031억 원으로 네이버 전체 매출의 52%를 차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네이버 내부에서는 총수가 직접 나서서 정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홍보팀과 대관을 강화해 리스크를 낮춰야지 무조건 사업을 접는 이해진 GIO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태도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을 상대로 해외사업에서 성공할지도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규제를 피하지 않고 직접 대응하면서 계열사를 유지·확대해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범수 의장 직접 대응 ‘정면돌파’
경쟁사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행보는 이해진 GIO와 대조된다. 카카오의 각 계열사는 규제에 직접 대응하면서 사업을 키우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는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통과 이후 법인택시 회사와 라이선스를 인수해 법망 위에서 사업을 유지·확대했다. 카카오페이는 바로투자증권과 인바이유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전통 금융사처럼 규제를 적용받더라도 타 금융사의 금융상품이 아닌 직접 증권·보험 상품을 제조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실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카카오는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자산 기준 23위에 올랐다. 반면 네이버는 41위였다. 카카오와 네이버의 전년 대비 자산 증가율은 각각 65%, 33%로 차이를 보였다. 2017~2019년 매출액 증가율은 카카오 90%, 네이버 33%였다. 국내 실적만 놓고 본다면 2010년 설립된 카카오가 1999년 출범해 국내 플랫폼 시장을 지배해온 네이버를 제친 셈이다.
김범수 의장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부회장에 합류해 규제와 관련돼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맡으면 위상이 남달라졌다는 평가다. 서울상의 부회장단에는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을 포함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IT 기업의 젊은 수장들이 포함됐다.
카카오 고위 관계자는 “IT 업계의 목소리를 정부·정치권에 앞장서서 내달라는 요청이나 부탁들이 많으니까. 그 책임감 때문에 김범수 의장이 대한상의에 합류한 것 같다”며 “특히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처럼 국내 IT 기업들의 입지도 이제 예전과 달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