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시즌 주목받는 신인 롯데 김진욱은 2군 경기에 이어 1군 시범경기에서도 호투를 펼치며 눈길을 끌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시범경기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찼다. 빅리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 추신수(SSG 랜더스)가 연일 집중 조명을 받았다. 김진욱(롯데 자이언츠), 장재영(키움 히어로즈), 이의리(KIA 타이거즈) 등 특급 신인 투수들도 프로에 첫선을 보였다.
이뿐 아니다. 앤드류 수아레즈(LG 트윈스), 아리엘 미란다(두산 베어스), 라이언 카펜터(한화 이글스) 등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 외국인 투수들이 KBO리그 공식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데이터 전문가로 알려진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신임 감독의 현란한 시프트도 화제다. 정규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롯데 특급 신인 김진욱, 명불허전 데뷔전
올해는 유독 야구계의 기대를 모으는 특급 신인 투수가 많다. 김진욱, 장재영, 이의리가 대표적이다. ‘베이징 키즈’(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야구를 시작한 세대)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이들은 이정후(키움), 강백호, 소형준(이상 KT 위즈)처럼 프로 첫해부터 KBO리그를 정복할 기세다. 올해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야구대표팀이 에이스 기근에 시달리는 터라 이들이 ‘괴물 신인’으로 성장해주길 모두 바라고 있다.
강릉고 출신 김진욱은 신인 2차 지명 전체 1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중학 시절 전학 이력으로 연고 지역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됐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롯데가 행운을 잡았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김진욱에 대해 “이미 고교 선수로는 완성형에 가까웠다.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은 웬만한 프로 선수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프로 입단 후 출발도 나쁘지 않았다. 김진욱은 두 차례 2군 연습경기에서 4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삼진 7개를 잡았고, 안타는 2개만 맞았다. 직구는 최고 시속 147km까지 올라왔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김진욱을 선발 후보로 점찍고 1군에 불러 올린 뒤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도 주눅 드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프로 생활이) 재미있다. 앞으로 더 재밌을 것 같다’고 하더라. 마인드가 남다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범경기 데뷔전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지난 21일 키움과의 부산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2⅔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볼넷 2개를 허용하긴 했지만, 최고 시속 146km의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를 고루 섞어 키움 강타선을 빠르게 제압했다.
허 감독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잠깐 흔들린 뒤에도 금세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더라. 아주 만족스러운 투구였다”고 했다. 다만 올해는 김진욱을 무리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더라도 투구 이닝을 100이닝으로 제한한다. “팀의 미래가 될 투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리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9억 신인’ 장재영의 혹독한 신고식
장재영은 장정석 KBSN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감독으로 몸담았던 키움에 1차 지명돼 계약금 9억 원을 받았다. 9억 원은 2006년 한기주(당시 KIA)의 10억 원에 이은 신인 계약금 역대 2위 금액이다. 덕수고 1학년 때 시속 150km 안팎의 강속구를 던져 유명해진 그는 고교 시절 내내 메이저리그(MLB)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다.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먼저 경험하는 게 낫다”는 아버지 조언에 따라 키움에 입단했다.
프로 데뷔를 앞둔 지금은 구속이 더 빨라졌다. 지난 17일 KT와 고척 연습경기에서 직구 최고 시속 155km, 평균 시속 153km를 각각 기록했다. 정규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날이 따뜻해지는 5~6월께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비공식 최고 구속이 시속 157km까지 나왔다. 프로에서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시속 160km 도전도 문제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프로 공식경기 데뷔전에서는 제구 문제로 고전했다. 동기생 김진욱이 상대팀 선발 투수로 나섰던 21일 부산 시범경기에 키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는 동안 2피안타 3볼넷 2탈삼진 3실점(1자책)으로 부진했다. 폭투와 악송구 실책, 밀어내기 볼넷이 이어지면서 진땀을 흘렸다. 최고 시속 153km의 직구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빠른 공만으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선수 자신도 느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마운드를 운영해 나갈지 깨닫는 게 본인의 몫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고 성장해 가는지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KIA 신인 이의리는 시범경기 호투로 경쟁자들 못지않은 잠재력을 선보였다. KIA를 떠난 양현종도 주목한 투수다. 사진=연합뉴스
#‘양현종 후계자’ 이의리의 기분 좋은 반란
이의리는 올해 KIA가 1차 지명으로 뽑은 왼손 투수다. 2월까지만 해도 ‘9억 신인’ 장재영과 ‘2차 전체 1순위’ 김진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연습경기가 시작되자 ‘실전용 투수’로서 진가를 뽐내기 시작했다. 프로 스카우트 중 일부는 “신체적 능력은 장재영, 현재 기량은 김진욱이 더 낫지만, 프로에서는 이의리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자체 청백전이 기점이었다. 이의리는 팀 선배 타자들을 상대로 1⅔이닝 동안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직구 최고 시속은 147km였고, 안타는 맞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KIA 에이스였던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투구였다. 미국에서 구단 유튜브로 지켜본 양현종은 “무시무시한 공을 던진다.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감탄했다. 처음으로 다른 팀을 상대한 13일 한화 연습경기에서도 2⅔이닝을 안타 없이 무실점으로 막았다. 사사구 3개를 내줬지만, 탈삼진 3개를 앞세워 위기를 벗어났다.
관심이 쏠린 첫 시범경기 등판도 완벽에 가까웠다. 25일 광주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롯데 타선을 5이닝 2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3회부터 5회까지 마지막 3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고, 특히 5회는 세 타자를 모두 스트라이크아웃 처리했다. 비시즌 동안 몸무게를 90kg까지 늘린 덕에 최고 구속도 시속 148km까지 나왔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스피드건으로 측정한 수치도 높지만, (타석에서 보는) 체감 구속은 더 빠를 것 같은 투수”라고 칭찬했다.
대형 왼손 유망주 이의리의 등장은 KIA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희소식이다. 양현종이 미국으로 떠난 뒤 확실한 국내 에이스가 없어 고민이 깊었기 때문이다. 이의리의 목표도 팀의 바람과 일맥상통한다. 이의리는 “점점 ‘1군에서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양현종 선배의 빈자리를 메우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심상치 않은 실력 보여준 LG 수아레즈
올해 KBO리그엔 왼손 외국인 투수가 유독 많아졌다. 지난 시즌에는 10개 구단 외국인 투수 20명 중 에릭 요키시(키움)와 채드 벨(한화)만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그중 채드 벨은 시즌을 다 치르지 못하고 중도 퇴출됐다. 올해는 키움과 재계약한 요키시 외에 새 얼굴 세 명이 추가됐다. 수아레즈, 미란다, 카펜터다. 셋 다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온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야구계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왼손 파이어볼러’다.
수아레즈는 LG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적료 40만 달러를 주고 영입한 빅리그급 투수다. 일찌감치 직구 최고 시속 151km를 기록해 기대감을 부풀렸다. 지난 10일과 17일 각각 KT와 두산을 상대로 연습경기를 치렀는데, 두 경기 합계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구위와 제구력을 모두 갖춘 데다 구종까지 다양해 상대 타자들이 애를 먹었다. 사령탑 첫 시즌을 앞두고 이런저런 구상에 한창인 류지현 LG 감독은 “수아레즈에 관해선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좋은 선수”라고 단언했다.
수아레즈는 첫 시범경기부터 그 믿음에 화답했다. 25일 잠실구장에서 두산을 상대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삼진 2개를 곁들였고, 안타는 한 개만 맞았다. 아웃카운트 9개를 잡는 동안 공을 33개만 던졌다. 수아레즈가 미리 약속된 이닝을 다 소화하고도 강판 후 불펜에서 공을 더 던진 이유다. 직구 최고 구속은 역시 시속 151km로 측정됐다. 그럼에도 수아레즈는 “나는 파워 피처가 아니다. 공을 원하는 곳으로 던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해 남다른 ‘클래스’를 과시했다.
#1이닝도 못 채운 미란다, 그래도 개막전 선발
미란다는 두산이 7년 만에 영입한 왼손 투수다. 지난해 한화 카펜터와 함께 대만 프로야구에서 뛰었다. 중신 브라더스 소속으로 10승을 올리고 한국에 왔다. 대만 리그 이전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모두 거친 특이 경력의 소유자다. 두산은 그런 미란다의 경험과 적응력을 높이 사 새 외국인 투수로 선택했다.
스프링캠프에선 무난한 실력을 보여줬다. 지난 14일 키움과 연습경기에서 초구부터 시속 150km 강속구를 뿌리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2이닝 동안 총 38구를 던지면서 1실점. 김태형 두산 감독은 “왼손 투수인데도 공에 힘이 있다. 던지는 모습만 봐도 힘이 좋다는 게 느껴진다. 첫 실전부터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위를 보여줬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시범경기 첫 등판이 문제였다. 미란다는 22일 한화와 잠실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1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아웃 카운트 두 개를 잡는 동안 공을 59개나 던졌다. 변함없이 최고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안타 3개와 볼넷 5개를 내주고 7실점 했다. 제구가 안 되는 강속구는 실전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김 감독은 “외국인 투수는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한데, 출발이 좋지 않아 염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KBO리그가 처음이라 힘들어 한다’고 생각해야 위안이 될 것 같다. 충분히 구위가 좋은 투수이니 개막 전 남은 실전에서 잘 던지길 바라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산은 일찌감치 미란다를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로 낙점한 상태다. 김 감독도 거듭 그 사실을 확인했다. “개막전 선발은 경험이 중요하다. 외국인 투수가 맡아주는 게 베스트다. 우리 팀은 미란다로 준비를 해왔고,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 미란다가 감을 못 잡더라도, 일단 부딪혀 적응하게 한 뒤 승부를 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만 출신 카펜터, 196cm 장신 투수의 위력 과시
한화 카펜터는 미란다와 마찬가지로 대만 프로야구 출신이다. 2018년과 2019년엔 메이저리그에서 15경기에 등판했고, 지난해 라쿠텐 몽키스로 이적해 10승을 올렸다. 한화는 계약 당시 “카펜펜터는 커브, 슬라이더 등을 던지는 기교파 투수로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다. 좌완 선발로서 이닝이터의 역할을 기대해 새 외국인 선수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카펜터는 올해 몸값 50만 달러(약 5억 6000만 원)를 받는다. 이 안에 옵션 10만 달러(약 1억 1000만 원)가 포함돼 실제 보장 액수는 40만 달러다. 새 외국인 선수 상한액(100만 달러·이적료 포함)를 꽉 채운 LG 수아레즈와 기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펜터는 스프링캠프 시작과 동시에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 훈련 시작 9일 만에 참가한 캠프 첫 라이브피칭에서 최고 구속 시속 146km의 직구를 던져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화 관계자는 “직구 평균 구속도 시속 143km를 기록했다. 대기 타석에 있던 동료 타자들이 환호성을 지를 만큼 공이 좋았다”고 귀띔했다.
시범경기 성적도 구단과 감독을 모두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카펜터는 21일 LG와 대전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3⅔이닝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직구 최고 구속 시속 147km를 찍었고, 낙차 큰 커브도 일품이었다. 매 이닝 삼진을 잡았다. 첫 이닝부터 LG 간판타자 김현수와 이형종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게 백미였다.
카펜터 자신도 투구에 만족스러워했다. “탈삼진 능력이 내 장점이지만, 정규시즌에선 뜬공과 땅볼 유도도 많이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넷을 주는 걸 무척 싫어한다. 안타를 맞더라도 공격적인 투구를 하겠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커브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제구력이 뛰어나 직구 외에 3~4가지 구종을 모두 원하는 곳에 던졌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피칭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카펜터가 장신(196cm)이라서 KBO리그 타자들 입장에서는 기존에 상대했던 왼손 투수들보다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 커브의 낙폭이 훨씬 큰 게 장점”이라고 호투 비결을 분석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