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생존하기 위해 경쟁중인 현재 상황에 대해 “다시 신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2021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막바지를 향해 내달리는 어느 날, 텍사스 레인저스 서프라이즈 훈련장에서 만난 양현종(33)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떠올리며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선수들이 정리돼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현실을 직시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 입단 후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생존 경쟁을 이어갔던 그는 2021년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14년 전 자신의 모습을 유추해냈다.
친정팀의 안정된 자리를 내려놓고 스플릿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입성한 양현종의 하루하루는 도전과 테스트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양현종이 “무서웠다”고 말한 부분은 긴 여운을 안겨줬다. 양현종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양현종이 인터뷰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바로 빅리그 로스터 진입 여부다. 구단에서는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투수들을 발표하고 있는데 3월 26일 현재 양현종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양현종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준비를 해야 되겠죠. 아직까진 구단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담담하게 이야기해나가던 양현종은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매 등판마다 시험을 치르듯 긴장감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는 선수들이 갖는 공통적인 간절함 때문이리라.
양현종은 인터뷰 도중 갑자기 추신수 이야기를 꺼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7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구단 관계자, 코칭스태프, 선수들한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추신수는 양현종이 텍사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을 때 자신이 친한 구단 관계자에게 직접 연락해 새로 온 한국 선수를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양현종은 추신수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자리를 빌어서 (추)신수 형한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구단 관계자들, 코칭스태프, 동료 선수들 모두가 제게 다가올 때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신수 형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저도 신수 형 이야기를 했었고요. 대화의 시작이 신수 형이라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상대방에서도 신수 형 이름을 꺼내며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원래 잘 모르는 사람과 처음 이야기 나누는 게 어렵잖아요. 그러나 신수 형 덕분에 사람들과 좀 더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들이 제게 더 많은 관심을 베풀고 배려해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장난기가 많은 편이거든요. 선수들한테 장난치면서 살갑게 다가가니까 선수들도 마음을 열고 저를 잘 받아주더라고요. 처음 캠프 도착 후 일주일 동안은 선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느라 바빴어요. 지금은 모르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신수 형이 이 팀에서 잘하고 가셨기 때문에 제가 혜택을 받는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양현종은 KBO리그 무대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커브 비중을 높였다. 그는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사진=이영미 기자
메이저리그는 스프링캠프가 중반을 넘어서면 선수들을 천천히 정리해 나간다. 대부분은 원래의 자리인 마이너리그로 돌려보낸다. 양현종은 최근 선수단의 규모가 서서히 줄어들고, 선수들이 사용했던 라커가 깨끗이 치워져 있는 걸 볼 때마다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고 말한다.
“다시 신인 시절로 돌아간 듯했어요. 신인 때 언제 2군으로 내려갈지 몰라 혼자 로스터 짜고 그랬거든요. 제가 들어갈 자리가 있나 싶어서요. 스무 살 때의 일인데 그걸 지금 다시 하고 있네요(웃음).”
양현종은 스프링캠프가 종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팀 로스터를 직접 구상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그 로스터에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해보는 중이다. 나름의 ‘데스노트’ 작성이 그에게 또 다른 야구관을 심어주고 있는 듯했다.
“여기 와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는 중인데 트레이닝 파트나 코치님들한테 모르는 건 자주 질문해요. 미국 문화는 질문하는 걸 좋아하고, 질문을 받은 이는 아주 친절하게 답변해주더라고요.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지만요. 여기선 특히 질문 자체를 높이 평가해줘요. 하나라도 더 배워서 발전하고 싶은 욕심에 모르는 게 있으면 항상 물어봅니다.”
양현종은 3월 20일 시범경기 세 번째 등판이었던 LA 다저스전에서 3이닝 3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5회 팀의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은 세 타자들을 땅볼-땅볼-뜬공으로 가볍게 처리했지만 6회 3피안타를 허용하며 1실점 후 7회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양현종이 6회 안타 3개를 내준 후 더그아웃에서 코칭스태프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준비를 한 끝에 7회 마운드로 향했는지 궁금했다.
“투구 내용이 안 좋을 때면 체인지업이 몰려 안타를 맞곤 했는데 당시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그걸 지적하셨어요. 특히 감독님이 체인지업을 항상 볼로 던져야 한다고 강조하시더라고요. 7회 감독님 말씀대로 해봤고, 결과가 좋게 나타났어요. 덕분에 감독님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범경기 동안의 양현종은 KBO리그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커브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며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커브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될지 정말 몰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수치상 평균 이상이라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커브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커브 등 변화구를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잘 던지지 않던 공이라 자꾸 활용하면서 자신감을 갖는 게 급선무입니다.”
25일 양현종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 시범경기에 첫 선발 등판해 3⅓이닝 5피안타 2실점을 기록했다. 개막전 엔트리 진입을 노리는 양현종한테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양현종은 경기 후 화상 인터뷰를 통해 로스터 합류 여부와 관련해서 “그건 코칭스태프의 결정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답했다. 그는 “첫 게임 때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 재미있게 투구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자신은 팀에서 정해준 보직에 맞춰 준비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양현종의 운명은 곧 결정 난다. 그가 개막전 26인 로스터에 포함돼 메이저리그 초청선수 신분에서 바늘구멍을 뚫고 빅리그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아니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절치부심하며 빅리그 콜업을 기다릴지. 그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