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창업자 고 신춘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농심 대표이사인 장남 신동원 부회장의 2세 체제로 넘어갔다. 서울 동작구 농심 사옥. 사진=최준필 기자
#지분승계 마무리한 농심 2세들
신동원 부회장은 오래 전부터 유력한 차기 수장으로 꼽혔다. 신춘호 회장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을 맡고,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과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이 각각 율촌화학, 메가마트를 담당하도록 일찌감치 후계구도를 정리해 지분을 분배했다. 신동원 부회장은 2003년 지주사인 농심홀딩스 출범 당시 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지분 36.38%를 확보한 이후 42.92%까지 늘려 최대주주에 올랐다. 농심홀딩스는 농심 지분 32.72%를 갖고 있다.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은 농심홀딩스 지분을 13.18% 갖고 있다. 대신 율촌화학 지분 13.93%를 보유해 최대주주 농심홀딩스(31.94%)에 이은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장남과 삼남의 율촌화학 지분은 없다. 농심과 농심캐피탈 지분 각각 1.64%, 10%를 보유하고 있는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메가마트 지분 56.14%를 확보한 최대주주다. 이 때문에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 다툼은 없을 전망이다.
남은 수순은 고 신춘호 회장의 농심(5.75%)과 율촌화학(13.5%) 지분 정리다. 지분 가치는 약 1600억 원에 달한다. 신 회장은 비상장사로는 농심캐피탈 주식(10%)도 보유하고 있다. 정리된 후계구도에 따라 장남이 농심, 차남이 율촌화학, 삼남이 농심캐피탈 지분을 가져가는 방식이 유력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형제가 맡을 계열사대로 부친 지분을 증여받을 것”이라며 “이후 농심홀딩스 배당을 늘려 자금을 마련한 뒤 장남과 차남이 농심홀딩스가 보유한 농심, 율촌화학 지분을 각각 매입해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분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심 2세 체제로 넘어가면서 라면의 세계화와 신사업 강화가 농심의 최대 과제로 꼽힌다. 국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험대 오른 장남의 신사업
신동원 부회장은 1979년 농심에 사원으로 입사해 전무와 부사장, 국제담당 사장 등을 거치고 19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이어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아왔다. 지난해에는 농심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농심은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집콕’과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효과로 매출이 전년보다 12.6% 증가한 2조 6398억 원에 달했다. 신동원 부회장이 20년간 회사를 이끌며 많은 경험을 쌓고 부친의 뒤를 이어 라면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데 대해 업계 이견이 없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거 히트 제품에 기댔을 뿐 자신만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농심은 2017년 가정간편식(HMR) 사업을 시작해 ‘쿡탐’ 등 브랜드를 내놨고, 신동원 부회장은 2019년 주총에서 “농심은 맛을 잘 내는 기업이기 때문에 HMR 사업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현재 HMR 강자 CJ제일제당을 비롯해 풀무원과 동원F&B, 오뚜기 등 경쟁업체들에 크게 밀렸고, 일반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농심의 HMR 제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실제 HMR 사업의 경우, 라면·스낵에 비교해 인프라와 마케팅 차원의 투자가 적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HMR은 냉동식품에 대한 경험치나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은 데다 농심은 테스트 차원에서 투자한 듯하다”며 “한번 해보고 관두는 식이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과 노하우를 갖고 사업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라면사업도 국내 부동의 1위로 독주하고 있지만 오뚜기와 삼양 등 경쟁사들이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며 뒤쫓고 있다. 또 내수시장 성장 한계가 명확하다. 라면과 스낵만으로는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신동원 부회장에 놓인 과제로 해외 라면시장 점유율 제고와 신사업 강화를 꼽는 이유다.
차기 회장인 장남 신동원 부회장이 신사업으로 비건 식품 시장과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단기에 성과를 내긴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건강기능식품 선물세트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업다. 사진=연합뉴스
#비건·건기식 단기성과는 어려워
농심은 지난해 3월 콜라겐을 보충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라이필 더마 콜라겐’을 출시하며 건기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올 1월에는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을 선보였다. 농심 연구소와 농심그룹 계열사인 태경농산이 개발한 식물성 대체육 제조기술을 간편식품에 접목한 브랜드로 식물성 대체육과 조리냉동식품, 즉석 편의식, 소스, 양념 등 총 18개 제품을 출시, 현재 대형마트나 백화점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 중이다. 신동원 부회장은 지난 3월 25일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사업 방향에 대해 “건강기능식품이 유력하다. 콜라겐 제품은 성공적으로 출시했고 지난해 나온 대체육도 올해는 제대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사업과 더불어 중요한 과제는 해외 시장 공략이다. 일단 내부적으로 올해 말 가동 예정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농심 제2공장 설립과 중국 청도 공장 이전 작업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농심은 신라면 등이 미국과 인근 국가에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남미 시장을 또 다른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해외 시장 상황을 낙관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라면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와 영화 ‘기생충 효과’를 보긴 했으나 히트 상품은 인기 수명이 짧아 다른 히트 상품들을 꾸준히 만들어내야 한다. 건기식과 비건식품 등 신사업도 후발주자고, 해외에서는 입지가 강한 건기식 브랜드가 많아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신동원 부회장의 과제는 신사업 청사진을 어떻게 내놓는가다. 그간 건기식 등 몇 가지 내놨지만 유의미한 성과가 없었고, 새로운 사업의 큰 축으로 보기도 어렵다. HMR 시장을 CJ 등에 선점당한 점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심이 신라면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도 신사업에서 그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비건·건기식의 시장 규모는 크지만 농심은 그 분야에 전문성이 없고 후발주자인 데다, 네슬레 같은 대규모 글로벌 회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마켓”이라고 짚었다.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CJ가 만두를 통해 비비고 브랜드를 알린 뒤 이 브랜드를 앞세워 국물요리와 김 등으로 세계적 식품을 늘리는 모습과 달리 농심은 신라면과 같은 단일 품목으로 해외 시장에 접근하기에 확장성에 제한이 있다”며 “다만 라면의 맛을 국가마다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고, 세계적으로 한국식 매운맛에 대한 니즈가 커지는 만큼 꾸준히 각국에 맞는 히트 상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농심은 세계 100개국을 대상으로 라면을 수출 중이고 중국과 미국에 각각 4개와 2개(설립예정인 1곳 포함) 공장을 가동 중인 만큼, 잘하는 분야에 중점을 두고 역량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HMR 사업도 꾸준히 진행해 새 제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도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HMR 제품 중 하나로 라면 자체를 고급화하고 품질을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건 식품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건강기능식품 ‘라이필 더마 콜라겐’은 지난해 200억 원의 매출을 내며 시장에 안착했다”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