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정책실장 장하성 주중대사 역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강남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정책 컨트롤타워라는 정책실장들이 모두 부동산 문제로 도마에 오른 셈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박은숙 기자
장관급인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해 주요 국정 과제를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처음 정책실장 자리를 만들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개혁안을 청와대 주도로 추진하기 위해 정책실장을 신설했다.
한 친노 인사에 따르면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관료사회의 저항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힘 있는 청와대’가 필요하다고 봤다”면서 “모든 부처의 정책을 관할하는, 즉 컨트롤타워 의미에서 정책실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첫 정책실장으로 진보성향 경제학자였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 이를 두고 진보진영에선 기대가, 보수진영에선 우려가 나왔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던 이정우 교수는 계층 간 균형발전, 빈부격차 해소에 관심이 많아 노 전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정책실장으론 ‘이정우 카드’를, 경제부총리로는 정통 관료 출신 김진표 현 민주당 의원을 발탁했다. 개혁과 안정의 조화를 모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우 정책실장에겐 정책의 큰 틀을 마련하게 하고, 김진표 부총리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정우-김진표 조합’은 실패에 가까웠다. 둘은 처음부터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각종 정책을 놓고 충돌했다. 공직사회에선 이정우 정책실장을 향해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반면, 청와대는 “관료들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 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둘이 사사건건 부딪히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모두를 교체했다. 박봉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을 신임 정책실장에 임명했고, 김진표 후임으론 이헌재 전 부총리를 내세웠다. 관료 출신들이 경제 투톱에 오른 것이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한 정치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 사진=박은숙 기자
“관료들이 교수 출신 이정우 실장을 공공연히 무시하던 분위기가 있었다. 위에서 결재가 끝난 사안인데도 막상 밑에선 규정 등의 이유로 일이 진척이 안 됐다. ‘법부터 바꾸고 와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이 실장이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며 답답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모습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풀이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 투톱으로 ‘김앤장’을 내세웠다. 김동연 전 부총리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었다. 둘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도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김 전 부총리는 신중한 목소리를 냈지만 장 전 실장은 속도전으로 일관했다.
국정 운영 주도권의 무게 추는 ‘문재인노믹스’ 기획자인 장 전 실장에게로 쏠렸다. 그러다보니 ‘김동연 패싱론’이 회자됐다. 둘 사이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자 문 대통령은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 달라”면서 ‘원팀’을 강조했다. 하지만 엇박자는 계속됐고, 문 대통령은 결국 둘을 동시에 교체했다.
장하성 전 실장 뒤는 ‘왕수석’ 김수현 전 실장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비서관 시절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사회수석을 맡아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하던 김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각별히 여기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실세 중 실세’가 정책실장에 임명된 것인데, 자연스레 김동연 후임 홍남기 부총리 존재감은 약했다.
‘김앤장’에 이어 김수현-홍남기 투톱 관계를 둘러싼 뒷말도 무성했다. 홍남기 부총리 역시 ‘패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 부총리를 ‘원톱’이라며 힘을 실어주려 했지만 그의 ‘영’은 좀처럼 서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전직 기재부 고위 관료는 “홍 부총리가 경제 현안 관련 입장을 밝힌 후 청와대나 당에서 손바닥 뒤집듯 다른 얘기들이 바로 나오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이러니 시장에서 부총리 발언이 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수현 전 실장도 ‘부동산’에 발목이 잡혔다. 대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고, 여론은 흉흉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김 전 실장을 해임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장하성-김수현-김상조는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다. 특정 시민단체에서 정책실장이 연이어 나온 것이다. 셋은 문 대통령의 ‘핵심 경제 브레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며 함께 ‘스터디’를 했던 셋을 발탁한 것에 대해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사진=최준필 기자
“노무현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 같다. 관료 출신들에게 밀리면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 문 대통령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최측근을 정책실장으로 발탁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 간 갈등이 끊임없이 노출됐고, 이는 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전 실장 후임으로 이호승 경제수석을 임명했다. 이 수석은 행정고시를 거쳐 기획재정부에서만 근무한 정통 경제 관료다. 정치색이 분명했던 3명의 전임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집권 마지막 해 ‘안정’에 바탕을 둔 국정운영 기조를 가져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책실장을 폐지했던 박근혜 정부를 제외하곤 이전 정부에서도 이런 양상은 나타났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여론 등에 따라 맞춤형 인물을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는 얘기다. 이정우에 이어 박봉흠 전 실장을 임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불거지자 다시 교수 출신 김병준을 정책실장으로 골랐다.
하지만 김병준 전 실장 역시 관료들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관료 출신의 권오규 변양균 전 실장이 차례로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정책실장은 성경륭 한림대 교수였다. 문 대통령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정’보단 ‘개혁 완수’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성경륭 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수립에 관여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정책실장을 폐지했다. ‘작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정책실을 없애고, 대신 비서실장 중심 체제를 구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책실이 장관과 대통령의 소통을 막고, 부처 위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2019년 8월 정책실장을 부활시키고, 윤진식 당시 경제수석이 이를 겸임하도록 했다. 정부 추진 과제가 미흡하고, 부처 간 혼선이 계속되자 정책 ‘컨트롤타워’인 정책실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윤 전 수석은 이른바 ‘MB노믹스’의 설계자다.
윤 전 수석 뒤는 백용호 전 실장이 이어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 출신 백 전 실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을 거쳐 정책실장까지 오르며 명실상부 ‘왕의 남자’로 불렸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 김대기 전 실장이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정책실장이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