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기슭의 아오키가하라는 자살숲으로 유명하다. 입구에는 자살을 만류하는 팻말이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자살숲’이라는 꼬리표가 생겨난 것은 1960년 일본의 인기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파도의 탑’을 출간하면서부터다. 소설 속 주인공 남녀는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자살한다. 이후 일본 전역의 자살 희망자가 이 숲으로 몰렸고, 점점 발견되는 시신도 늘어났다. 통계에 의하면 “2015년까지 매년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자살명소’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사고를 보면, 절벽이나 다리 등에서 투신하거나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가령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랄지, 나이아가라폭포, 에펠탑 같은 관광지가 자살명소로 시달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아오키가하라는 다르다. 20년간 이곳을 답사한 르포라이터 무라타 라무 씨는 “자살 최적지로 알려진 아오키하라는 오히려 그 대척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절벽이 있긴 하나 기껏해야 높이가 3m 정도다. 뛰어내려도 다치기만 할 뿐 좀처럼 목숨을 끊기 어렵다. 또 숲에는 사슴이 뛰어다니지만 부딪혀 숨질 확률도 극히 낮다. 그래서인지 “아오키가하라에서는 목을 매거나 음독자살자가 많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케이스다.
심지어 아오키가하라는 용암이 굳어진 지형이다. 1200년 전 후지산 분화 때 흐른 용암류가 식은 자리에 나무가 자라면서 숲이 형성됐다. 나무들이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묘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쓰러진 나무들이 제법 많다. 무라타 씨는 “나뭇가지 모양이 제대로 된 것이 적어 목맬 장소를 찾으려면 꽤 고생해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음독자살의 경우 아주 고통스럽다”고 한다. 무라타 씨는 “과거 노년 커플의 시신을 아오키가하라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며 “두 사람의 손은 가슴을 쥐어뜯은 채였다.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목숨을 끊기가 쉽지 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아오키가하라는 죽음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인생은 부모님이 선사한 소중한 선물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을 생각해보세요.” 숲 입구에는 자살을 만류하는 절절한 팻말이 세워져 있을 정도다.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분위기 탓일까. 아오키가하라 숲은 여러 차례 영화 배경지로도 등장했었다. 예를 들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씨 오브 트리스’, 제이슨 자다 감독의 ‘포레스트: 죽음의 숲’ 등이 유명하다. 2018년에는 세계적 유튜브 스타 로건 폴이 이곳에서 시신을 발견한 장면을 업로드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유명한 만큼 소문도 많고, 과장된 정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라타 씨의 탐사를 바탕으로 아오키가하라 숲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자.
영화 ‘포레스트: 죽음의 숲’의 한 장면. 주인공이 나침반을 꺼내들자 바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침반이 작동되지 않는다
세간에는 “아오키가하라 숲에 들어가면 나침반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 떠돈다. 영화 ‘포레스트: 죽음의 숲’에서도 주인공이 나침반을 꺼내들자 바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주인공은 빽빽한 숲에서 길을 잃고, 점점 숲 속 깊이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라타 씨는 “20대 시절 나침반만 들고 두 차례 아오키가하라 숲을 종단한 적이 있다”며 “거의 헤매지 않고 종단했었다”고 밝혔다. 자철광을 포함한 암석이 숲에 있긴 하지만 “매우 약한 자력이므로 나침반을 가슴 높이로 사용한다면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 한다
흔히 출구가 없는 ‘미로의 숲’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루머다. 무라타 씨는 ‘일부러 헤매보자’는 생각에 나침반도, GPS 없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결과 “30분 만에 저절로 숲을 나오게 됐다”고 한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아오키가하라 숲의 면적은 30㎢ 정도다. 소문과 달리 산책로와 안내간판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심지어 139번 국도가 숲을 뚫고 지나가기까지 한다.
문제는 산책로를 벗어난 경우다. 사방에 나무밖에 없고 특색 없는 풍경이 계속돼 길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딱히 아오키가하라만이 아니라, 울창한 숲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무라타 씨는 “아오키가하라에서 시신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일부러 자살하러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숲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유령이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괴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유령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2021년 2월 개봉한 영화 ‘자살숲 마을(樹海村)’의 배경이 된 괴담이다. 영화 속에서는 숲에 버려진 사람, 자살한 사람 등이 모여 사는 끔찍한 마을이 나온다. 이에 대해 무라타 씨는 “20년간 숲을 들락거렸으나 그러한 취락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유령 마을이 아닌, ‘진짜 마을’은 숲에 존재한다. 항공사진을 보면 139번 국도를 따라 직사각형 모양으로 정비된 마을을 찾을 수 있다. 일명 ‘민박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반듯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으며, 70여 채의 민가가 늘어서 있다. 이름 그대로 민박집들이 운영 중이다. 사실 아오키가하라 숲 주변은 관광지다. 후지큐 하이랜드, 후지 사파리파크 등에 놀러가는 사람이나 후지산 등산객들이 민박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오키가하라의 소문과 진실에 대해 보도한 일본 매체 ‘주간여성’.
#숲에서 들개나 곰이 인간을 습격한다
“유기견이 들개가 되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인간을 습격한다”는 괴담도 유명하다. 무라타 씨는 “숲에서 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숲에서 발견되는 시신들 가운데는 동물이 갉아먹은 흔적이나 난폭하게 셔츠가 뜯긴 자국을 더러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반달가슴곰의 서식 범위 안에 들어가는 건 사실”이라면서 “따로 울타리가 있는 게 아니므로 곰이 숲으로 오려면 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비의 베일을 벗긴다고 해도 아오키가하라 숲이 일본에서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무라타 씨는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오키가하라를 찾아와 목숨을 끊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은 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