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 입회장의 전광판에 골드만삭스 로고가 비치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국내도 최상위 부자들은 주식 투자에 적극적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부자의 자산구성을 보면 일반부자(금융자산 10억 원 이상)는 45%가, 작은 부자(금융자산 1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는 23%가 금융자산이었다. 부자들은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폭락과 반등 국면에서 주식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그러면 운용하는 재산이 수백억, 수천억 원인 거액자산가들은 주식자산을 어떻게 관리할까.
최근 미국 증시를 강타한 아케고스(Archegos) 사태는 거액 자산가들의 주식투자 비밀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자산과 수익을 최대한 은밀하게 관리하려는 초고액 자산가들은 패밀리 오피스를 즐겨 활용한다. 미국에서 패밀리 오피스는 단일 패밀리를 영업대상으로 할 경우 일반 투자자문사와 달리 각종 금융규제를 받지 않는다. 자산현황 등을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스타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영입해 은밀한 수법으로 고객가문의 자산을 불려주며 막대한 수수료를 받는다. 아케고스도 그런 종류의 자금을 운용한 곳이다.
이번에 드러난 거래 운용규모를 감안하면 아케고스는 엄청난 슈퍼리치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애초 맡긴 자산이 천문학적 규모일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새 미국 증시가 가파르게 오른 점을 감안하면 초기 투자금을 크게 불렸을 가능성도 상정할 만하다.
이번에 드러난 수법은 총수익맞교환(Total Return Swap·TRS)이다. 국내에서는 라임펀드 사태로 유명해졌고, 대기업 총수 등 거액자산가 사이에 인기를 끈 투자기법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SK실트론 투자기법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가족인 10명의 투자자에게 100억 원씩 1000억 원의 투자금을 모은 펀드회사 ‘A’가 있다고 치자. A는 10종목에 각 100억 원씩 투자하려하는데, 연간 수익률 목표는 100억 원, 10%다. A는 기본 수수료 2%에 초과수익률의 20%를 성공보수로 떼기로 했다. 1000억 원을 그대로 투자하면 15% 수익이 나도 A는 0.2%인 30억 원을 벌 수 있다. 그래서 투자금 1000억 원을 담보로 갑·을·병·정 4곳의 증권사에서 연 2% 금리로 각 1000억 원씩을 빌려 투자금액을 5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투자금액이 큰 만큼 주식 보유상황을 감추기 위해 소유권은 4곳의 증권사가 갖되, 주가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은 A가 감당하는 조건이다. 대신 연 1%의 수수료를 주기로 했다. TRS계약이다. 15%의 수익을 내면 이자비용 80억 원, TRS 수수료 50억 원 등 130억 원 빼도 620억 원이 남는다. A는 기본수수료 20억 원에 초과수익 520억 원의 20%인 104억 원 등 124억 원을 챙길 수 있다. 100억 원씩 투자한 10명은 수수료를 제외하고 각각 49억 6000만 원의 수익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주가가 하락했을 때다. 4곳의 증권사는 담보 1000억 원을 감안해 자산가치가 80% 이하로 떨어지면 강제로 팔아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로 한다. 그런데 정말 A의 보유종목 주가가 20%로 떨어졌다고 치자. 4곳의 증권사는 A에 “추가 담보를 내지 않으면 주식을 팔아 빌려 준 돈을 회수하겠다”는 통보(마진콜·Margincall)를 하게 된다. 만약 A가 장기적으로 성과에 자신이 있으면 투자자들을 설득해 추가 투자를 받아 담보를 늘리면 된다. 하지만 투자자 설득이 어려우면 마진콜에 응할 수 없게 되고, 증권사들은 주식을 팔게 된다.
갑이 가장 먼저 주식을 매수가의 80%선에서 팔았다면 대출원금은 물론 수수료까지 모두 챙길 수 있다. 그런데 갑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주가가 하락하게 된다. 이어 을·병·정도 주식을 팔게 되는데, 늦을수록 더 낮아진 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일부 매수가의 75% 아래부터는 원금 손실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밖에 없다. 행동이 늦으면 다른 증권사가 손실을 줄이게 된다.
아케고스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노무라, 크레디트스위스(CS), 웰스파고 등과 이런 거래를 했다. 지난해 미국과 중국, 한국의 기술주와 미디어주가 급등하면서 아케고스는 큰 수익을 낸 것으로 보인다. 수익이 나면서 이자와 수수료 수익에 맛을 들인 PB들은 아케고스에 더 많은 돈을 빌려주게 된다. 애초 투자원금은 100억 달러 규모로 알려졌지만, 차입으로 운용자산을 500억 달러까지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올해 들어 기술주 주가 급락으로 아케고스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험에 처하자 골드만삭스가 지난 3월 26일 발 빠르게 사상 최대 규모의 시간외거래, 블록딜(Block Deal)에 나섰다. 골드만삭스는 가장 먼저 회수 방아쇠(Trigger)를 당기며 대출금 대부분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회수에 나선 곳들만 매도에 따른 가격 급락으로 원금 일부를 떼이게 됐다. 노무라와 CS 등이 올 1분기 실적에 심각한 손실(Significant Loss)을 예고한 이유다.
전세계 금융권이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비슷한 유형의 투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케고스 한 곳이라면 충분히 시장에서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여러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소유자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패밀리 오피스나 TRS 거래의 특성상 시장에서 관련 노출액(Exposure)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TRS 거래에서 PB(프라이빗뱅커) 역할을 수행하는 IB(투자은행)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뿐이다. 3월 29일 골드만삭스에 뒤통수를 맞은 IB들이 긴급회의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라임사태에도 TRS가 등장한다. 증권사들은 라임펀드에 손실이 발생하자 빌려준 돈을 먼저 회수했고, 그 결과 펀드 손실을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가 떠안게 됐다. 국내에서는 대기업 총수 등 거액자산가 사이에도 TRS 거래가 상당한 인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실트론 지분 29.5%를 SPC(특수목적회사)와 증권사와의 TRS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금융위는 증권사의 SPC에 대한 대출을 기업대출이 아니라고 판단, 사실상 실소유주가 최 회장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국내에서도 TRS와 함께 이와 유사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가 자산가들 사이에 인기다. 차액결제거래는 개인 투자자가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증권사를 통해 매수 금액과 매도 금액의 차액만 결제하는 일종의 파생금융상품이다. 증거금률은 10~100%로 원금 대비 최대 10배까지 레버지리 효과를 낼 수 있다.
초고위험 상품인 탓에 그동안 개인전문투자가로 등록한 소수만 CFD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전문투자자 등록 기준이 완화되면서 투자 문턱이 낮아지자 증권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교보증권이 2016년 처음 CFD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DB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잇따라 서비스를 출시했다. 삼성증권에 이어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도 각각 상·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서비스 제공을 준비하고 있다. ‘슈퍼개미’와 자산가들의 조세회피처이자 양도세 회피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정부는 파생상품 양도세 과세대상에 CFD를 추가해 4월 1일 이후 발생하는 소득분에 대해 적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CFD 계좌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11%(지방세 포함)의 세금이 부과된다.
한편 이번 사태로 국내에서도 TRS 등 파생상품 거래의 투명성 강화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규제가 강화된다면 이른바 초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속살이 드러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