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택배사들이 택배비를 인상한 이유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배송 업무뿐 아니라 배송 전 대리점에서 물품 분류 작업을 택배기사가 직접 이행해 배송 업무가 제 시간에 끝나지 못하면서 과로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국 정부와 택배사,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로 꼽힌 분류 작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택배 분류 작업을 위한 인력 추가 투입과 분류시설에 대한 투자를 택배사가 부담해 택배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대책을 시행하는 데 택배사 측에서 연간 최대 1000억 원 정도 비용이 투입된다. 과로사 방지 대책이 기업 부담으로 작용하자 ‘택배비 인상’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일각에선 택배비 인상이 택배기사 처우 개선의 해답이 될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택배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택배비만 인상해 택배사만 ‘배부른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불공정 구조 개선이 먼저
롯데글로벌로지스와 CJ대한통운은 최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택배비를 인상했다. 개인 고객 대상 택배비는 전과 동일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소형 기준 택배비를 1750원에서 1900원으로 150원 올렸다. CJ대한통운은 소형 기준 계약 단가를 1600원에서 1850원으로 250원 인상했다. 한진택배는 초소형 택배에 대해 1800원 이상으로만 계약을 진행 중이다.
택배비 인상이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실제 현장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택배비를 인상하면 택배기사의 배송 수수료가 높아져 배송 부담이 덜할 것이라지만 현장에선 지금과 같은 수익구조로는 택배비 인상으로 처우 개선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비자가 내는 택배요금은 판매자와 택배사, 대리점, 택배기사가 나눠 갖는다.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배송 구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택배요금의 30% 수준. 2500~3000원의 택배비에서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700원대 후반~800원대 정도다. 택배기사는 자기 몫에서 부가세 10%를 내고 남은 금액을 다시 대리점과 나눈다. 대리점 수수료는 최대 30%다. 최종적으로 택배기사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약 500원이다.
택배비가 인상돼도 마찬가지다. 업계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CJ대한통운이 택배비를 250원 인상했을 때 택배기사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부가세, 대리점 측과 나눈 비용을 제외하고 약 770원이다.
택배기사의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는 데는 ‘백마진’도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백마진은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업자가 택배비에서 챙기는 부가수익으로 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택배사는 월 배송 1만 건이 넘는 유통업자의 물량을 따내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다 택배비 일부를 판매자에게 돌려주는 백마진, 즉 리베이트를 제안한다. 정부 조사 결과 백마진은 배송 1건당 600원, 택배수수료의 75% 수준으로 집계됐다. 일부 유통업자는 포장과 창고임대료 등 물류 처리비로 1000원 정도의 백마진을 챙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비 인상보다 백마진 관행 철폐가 먼저라는 현장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택배기사 김 아무개 씨는 “백마진을 없애면 택배비 인상을 하지 않아도 수수료 올리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및 처우 개선을 위해선) 택배비 인상과 백마진 거래구조 철폐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며 “백마진에 대해선 현재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국토교통부와 논의 중이니 곧 개선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방지에 대해 백마진 철폐 대신 택배비 인상에 더 동의하는 분위기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한 택배비가 열악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택배 적정 운임, 수수료율 산정을 위한 용역에도 착수했다.
#택배비 인상에 눈물 흘리는 자영업자
택배사들의 인상은 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택배비 인상으로 수익 창출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 온라인을 통해 수제 포토카드와 봉투 등을 판매하는 김 아무개 씨(26)는 “제품 마진도 적은데 택배비가 인상되면서 남는 게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선 택배비 인상에 대한 소규모 업자들의 토로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수제쿠키를 판매하는 A 씨는 최근 커뮤니티에 “제가 발송한 물건들은 3000원에 배송됐는데 며칠 전에 5000원으로 가격이 인상됐다”며 “마진이 높지 않은데 택배비까지 이러니(오르니) 부담이 많이 돼요. 어떡해야 할까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이 같은 호소에 대해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 물량에 맞춰 요금표가 정해져 있어 업체별 협상에 대해선 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택배비 인상에 대해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올라온 반응 캡처
대형 이커머스나 TV홈쇼핑업체들은 택배 물량이 많기에 택배사와 협상을 통해 택배비를 기존보다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는데, 물량이 적은 자영업자들은 이마저도 어렵다. 결국 소규모 업체나 자영업자일수록 택배비 인상으로 인한 타격이 크다. 하지만 현재 택배비 인상으로 피해를 입는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택배비 인상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에 한해 일정 기간 감소한 마진을 보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