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월 16일 서울시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5대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사실상 사외이사 모두 ‘유임’
지난 3월 25~26일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기 만료 예정인 사외이사 26명 중 22명을 재선임했다. KB금융(김경호, 선우석호, 스튜어트 솔로몬, 정구환, 최명희)은 5명을, 우리금융은 6명 중 5명(노성태, 박상용, 정찬형, 전지평, 장동우)을 재선임했다. 신한금융은 6명(박안순, 변양호, 성재호, 이윤재, 최경록, 허용학)을 재선임하고 4명(배훈, 곽수근, 이용국, 최재붕)을 신규 선임했다. 하나금융은 6명(김홍진, 박원구, 백태승, 양동훈, 이정원, 허윤)을 재선임하고 2명(권숙교, 박동문)을 새로 선임했다. 사실상 연임이 불가능한 4명을 제외하면 모두 ‘유임’된 셈이다. 상법에 따라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는 6년(계열사 포함 9년) 이상의 임기를 수행할 수 없다.
지난 3년간 금융권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라임 등 잇따른 금융사고에 휘말렸다. 이와 관련해 사외이사들이 찬성표만 던지는 ‘거수기’로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KB금융 사외이사들은 총 20회 열린 이사회에서 모든 안건에 ‘찬성’ 또는 ‘특이의견 없음’ 의견을 냈다. 우리금융은 14회의 이사회에서 한 번도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금융은 10회의 이사회 중 반대 의견이 한 번 나왔다. 신한금융은 16회 이사회 중 반대 또는 보류 의견이 다섯 번 나왔다.
앞서 국내외 최대 의결권 자문사는 공식적으로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진옥동 은행장을 기타 비상무이사로 재추천하고, 기존의 사외이사 6명을 유임하는 신한금융의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6명의 사외이사를 연임 또는 선임하는 우리금융의 안건에도 반대했다.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도 ISS와 비슷한 이유로 신한·우리금융 이사진 연임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신규로 선임되는 사외이사진에 대해서는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4대 금융지주에 대한 ‘주주총회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받은 진옥동 행장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또 진 행장과 사외이사들은 조용병 회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그를 이사회에서 해임하지 못했다”라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금융지주에 대해서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라임 사태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해임 권고’ 다음으로 높은 ‘직무 정지 상당’의 제재를 사전 통보받았다”며 “그런데도 5명의 사외이사 후보들은 지난해 손 회장의 연임을 지지했다”라고 지적했다.
3월 26일 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우리은행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외이사 연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융정의연대 제공
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노동조합 등은 사모펀드 사태 등에 대해 경영진과 사외이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지적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금감원은 라임펀드 판매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2차례 열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진 못했다. 4월 중으로 3차 제재심을 열고 결론을 낼 전망이다. 이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손태승 회장과 진옥동 행장의 징계가 최종 확정된다.
금융정의연대는 “지난해 금융위는 DLF 사태 관련 징계로 손태승 회장에 ‘문책경고’를, 우리은행에는 약 197억 1000만 원의 과태료와 6개월의 영업정지(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 결정을 내렸다”며 “하지만 손 회장은 이에 불복하고 징계 취소 행정소송과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연임에 성공했다. 회장으로서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신의 연임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번 라임 관련 징계도 최종 확정되면 불복하고 행정소송에 돌입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제강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4대 금융지주의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사외이사들은 그들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연임되고 있다. 향후 더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연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외외사 전문성·여성 비율 여전히 부족해
디지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금융은 전체 사외이사 후보군 중 디지털전문가를 20명에서 25명으로 늘리고, ESG 전문가를 신설해 10명을 포함시켰다. KB금융도 디지털·IT 사외이사 후보를 총 11명으로 늘려 비중을 11%대에서 13%로 높였다. 하나·신한금융은 디지털·IT 분야 후보 비중을 각각 15.8%, 13.5%로 구성했다.
그런데도 올해 4대 금융지주의 새롭게 합류한 사외이사들의 대부분은 경영, 경제, 법률 관련 전문가다. 그나마 신한금융의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 교수 신규 선임이 눈에 띈다. 신한금융의 나머지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는 곽수근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배훈 변호사법인 오르비스 변호사, 이용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 등이다. 기존 사외이사가 배출되던 인력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SG·디지털을 포함한 전체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로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활동한 것은 맞지만, 의무만 강조하기보다 권한도 확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4대 금융지주의 총 사외이사 33명 중 여성 사외이사가 4명에 불과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2022년 8월부터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여성 등기임원을 최소 1명 이상 선임해야 한다. 4대 금융지주 중 신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곳은 하나금융뿐이다. 이는 여타 기업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매출 기준 국내 100대 상장사에서 올해 새로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97명이다. 남성 66명(68%), 여성 31명(32%)이다. 금융지주들이 신규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비율(16.6%)보다 두 배가량 많다. 우리금융은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다.
이와 관련, 우리금융 관계자는 “이사회의 다양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여성 사외이사 후보군을 2019년 20명에서 지난해 32명으로 확대했다”며 “내년 8월까지 여성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포함시켜야 하는 만큼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여성 사외이사 후보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여성 신규 사외이사 후보자를 찾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하나금융이 신규 선임한 권숙교 고문은 KB금융에서 사외이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만큼 여성 사외이사 신규 인력풀이 제한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 사외이사를 충원하지 않아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셈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여타 대기업에서도 여성 사외이사 후보자를 영입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며 “고위 임원직을 지낸 여성이 적다 보니 모든 기업에서 모셔와야 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