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배구조 문제 해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만큼 사업 진출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지난해 10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현대차가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는 진작 있어왔다. 중고차 매매업은 중소상공인들의 영역이었으나 이들의 매매업을 보호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기한이 2019년 2월 종료됐다. 중고차 업계는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으나 동반위는 2019년 11월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영위 가능성이 깃들자 현대차는 공식적으로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반드시 (중고차) 사업을 해야 한다”며 중고차 거래 시장 진출 계획을 밝혔다.
중고차 사업을 담당할 계열사로는 현대글로비스가 거론된다. 중고차 경매장을 운영해온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데도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고차 매매업 진출이 단순히 사업 확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의선 회장의 그룹 장악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가진 대주주지만 현대차 2.62%, 현대모비스 0.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그룹 내 주력 사업 지분이 취약하다. 정 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순환출자를 깨고 정 회장이 지분을 상당수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중심의 지주사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다만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을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 보유한 계열사’에서 ‘20% 이상 보유 계열사’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오는 12월 30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정의선 회장은 올해 말까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0% 이내로 낮춰야 한다. 어차피 매각할 것이라면, 중고차 매매업으로 사업을 확장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주가가 높아졌을 때 지분을 매각, 이를 활용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가 지난해 10월 현대차의 중고차 거래 시장 진출 계획을 밝혔다. 김동욱 전무가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그러나 중고차업계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를 비롯한 중고차업계는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면 중고차 매매업 생태계가 파괴되고 중소업체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막는 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25일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의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조 의원은 “완성차업체인 현대차가 자동차 시장에 대한 막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면 처음에는 중고차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며 “그러나 막상 중고차 시장에서 독점력을 확보하면 소비자 이득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고차 매매 이익만 좇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의선 회장의 바람이 무산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중고차업계의 반발이 거센 것도 문제지만 중고차 매매업과 관련된 국토교통부 장관도 공석인 탓에 논의가 더욱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상황이 복잡해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차의 중고차 매매업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는 탓에 정의선 회장이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중고차 매매사업으로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정의선 회장은 보유한 지분을 줄여야 하는데 단순히 시장에 매각해버리면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기에 다른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