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에 보도된 비트코인 채굴공장 내부. 신발 상자보다 조금 작은 고성능 컴퓨터들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팬들이 수백 대의 컴퓨터에서 내뿜는 열기를 빼내고 있다.
콩밭과 사탕수수밭으로 유명한 시우다드 델 에스테는 파라과이에서 손꼽히는 전통적인 농업 도시다. 트럭에는 옥수수가 가득 실려있고, 마을 곳곳에는 옥수수, 사탕수수, 콩이 가득 쌓인 창고가 줄지어 서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마이너’ 농장의 경우에도 사실 겉에서 보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이 농장에는 농작물 대신 밤낮으로 돌아가는 수백 대의 컴퓨터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컴퓨터들이다. 곳곳에 전기변압기가 설치돼 있는 이 컨테이너 가건물 안에는 가상화폐 채굴전용 ASIC칩을 탑재한, 신발 박스보다 작은 400대의 고성능 컴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다.
책꽂이에 꽂아놓은 책들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컴퓨터들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 한쪽 벽에 장착되어 있는 대형 냉각 팬들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실내의 열기를 밖으로 빼내고 있다. ‘라이프마이너’의 창립자인 자이로 보니콘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실내 온도가 6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컴퓨터를 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면 컴퓨터가 과열돼 불에 타버릴 수 있다”며 난처해했다.
다만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려주는 정확한 표지판 같은 건 없다. 세 개의 컨테이너 주변으로 담이 빙 둘러쌓여 있을 뿐 이렇다 할 간판이나 안내문은 없다. 그 이유에 대해 보니콘트로는 “시우다드 델 에스테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지내는 편이다. 왜냐하면 파라과이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법 지대에서 일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도 있다. 부패한 경찰들이 상납금을 갈취해 가거나, 혹은 무장한 갱단들이 컴퓨터를 훔치기 위해 습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보니콘트로는 “마치 서부시대 황금을 찾아 떠났던 골드러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비유는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지난 2009년 채굴될 당시 불과 0.000994달러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4월 1일 기준 현재 5만 8000달러(약 7000만 원)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렇게 치솟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점점 더 채굴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희소성이다. 실제 점점 더 많은 채굴자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보니콘트로는 “5, 6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PC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문제는 이 컴퓨터들이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는 데 있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채굴을 해도 손해인 경우도 있다. 보니콘트로가 채굴 회사를 시우다드 델 에스테로 옮겨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파라과이의 전기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저렴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상태다. 전기료는 1kWh당 0.04유로(약 53원)를 채 넘지 않는다. 이는 독일보다 무려 여덟 배나 저렴한 가격이다. 때문에 현재 파라과이는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값싼 전기료가 가능한 이유는 파라과이 전체 인구 대비 생산 전력량이 많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에 위치해 있는 리오 파라나호에 건설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력발전소인 ‘이타이푸’에서 생산된 연간 전력량은 시간당 약 100테라와트다. 이는 파라과이 전체 인구 700만 명가량이 사용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다.
‘MDX 채굴회사’의 대표인 안토니오 실바(52)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이곳에서 ‘채굴왕’으로 불리고 있는 실바는 “현재 비트코인 채굴을 할만큼 메리트가 있는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1만 유로(약 1300만 원) 아래로 떨어지면 비싼 전기료를 내는 게 사실 부담스러워진다”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비트코인 한 개를 채굴하는 데 소모되는 전력은 시간당 약 70MW인데, 이는 전기자동차를 40만km가량 주행하는 데 필요한 전력과 맞먹는다.
2020년의 경우, 전세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는 시간당 약 80테라와트의 전력이 소비됐다. 이는 핀란드 전체 전력 소모량과 비슷한 양이다. 더 큰 문제는 전력 소비량이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채굴작업이 어려워질수록 소비되는 전력량은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마무시한 에너지 소비량은 비트코인 채굴에 있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암호화폐의 미래는 밝다고 ‘포쿠스’는 말했다. 은행간 연결 없이 직접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결제 시스템은 점차 일반화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나서서 암호화폐 채굴에 참여하고 있는가 하면, 디지털 화폐를 앞장서 도입하는 나라들도 많다.
전직 트럭 운전사이자 향수 공장을 운영했던 브라질 빈민가 출신의 실바가 비트코인 채굴 사업에 뛰어든 이유도 이런 잠재적인 성장성 때문이었다. 6년 전, 암호화폐 채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파라과이로 이주해왔던 그는 당시만 해도 컴퓨터를 살 돈조차 없을 만큼 가난했다. 친구들에게 겨우 빌린 돈으로 컴퓨터 몇 대를 구입했던 그는 정확히 2년 후, 백만장자가 됐다.
시우다드 델 에스테에서 유일하게 포르셰 파나메라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부를 누리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실바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나는 현재 남미에서 가장 큰 채굴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한테 내 성공을 숨겨야 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그의 가치관을 대변하듯 MDX 사무실의 유리문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이것은 금을 캐는 것과 같다. 아니, 더 낫다!”
현재 약 2만 5000대의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는 MDX는 중국 앤트풀에 가입해서 하루에 약 5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데 지불하는 전기료에 대해서는 “나는 매일 2만 유로(약 2600만 원)의 전기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이라면 이는 껌값에 불과하다”라며 개의치 않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4월 1일 국내 거래소에서 처음 7200만 원대를 찍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오늘날 비트코인의 65%는 중국에서 채굴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캐나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에서 주로 채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파라과이는 주요 비트코인 채굴국들 가운데 상위 10위 안에 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 성장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중국자본의 러시다. 실바는 “중국 투자가들이 이곳에서 속속 채굴장을 인수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중국 정부가 국내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를 대비해 두 번째 거점을 건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이런 확장세는 파라과이와 대만의 공식적인 우호관계 때문에 아직은 제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자체적인 암호화 화폐인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할 예정에 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아마도 ‘개인’ 경쟁자들, 즉 개인 채굴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부 개인 채굴자들은 이미 채굴장을 해외로 이전해놓은 상태다.
실바 역시 이미 중국 투자자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그는 수익을 절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주기적으로 4만 개의 새로운 컴퓨터를 구입하고 있다. 실바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1년 반마다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투자 비용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컴퓨터 전체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 유로(약 1300억 원)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컴퓨터 가격 측면에서도 파라과이는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우위에 있는 편이다. 고성능 컴퓨터의 관세가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실바는 “파라과이 관세는 현재 10% 정도다. 하지만 아마 브라질에서는 이보다 다섯 배는 더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당 1500~3500유로(약 200만~460만 원)인 비트코인 채굴용 컴퓨터들은 현재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파라과이까지 배로 운송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가량이지만 실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 실바는 “중국의 채굴장들은 항상 기술적인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최신 컴퓨터의 해외 수출이 막혀있기 때문이다”라고 비난했다.
현재 시우다드 델 에스테에서 얼마나 많은 ASIC 컴퓨터들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략 10만 대의 컴퓨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등록된 비트코인 채굴회사는 한 군데도 없다. 때문에 이들은 세금도 내지 않는다. 이에 새로운 법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시우다드 델 에스테에서 1000여 대의 낡은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는 이그나시오 짐메네스는 “2019년은 사정이 매우 나빴다. 비트코인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통장에 있는 돈을 털어서 전기료를 감당해야 했다”면서 “하지만 요즘과 같은 불장에서는 이 오래된 컴퓨터로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1년 안에 컴퓨터들을 싹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승세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있다. 과연 암호화폐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교환수단으로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을까. 비트코인으로 커피값을 결제하고,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날이 정말 올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는 전환점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