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1위 빗썸코리아(빗썸)의 인수전이 수개월째 진척되지 않으면서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빗썸 강남센터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접촉했다는 투자자는 많은데…움직임 전무한 이유
빗썸 인수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올해 초다. 빗썸은 2020년 8월부터 매각 작업을 본격화했으나 지지부진하다가 올 초 넥슨 지주사 NXC의 인수 검토 소식이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월 초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가 빗썸 실소유주인 이정훈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의장 등이 보유한 빗썸홀딩스 지분 65%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홀딩스는 빗썸의 최대주주로 지분 74.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다. 넥슨과 빗썸, 그리고 빗썸 주주들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여러 인수 후보가 등장하면서 인수전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 이유로 빗썸의 몸값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 열풍에 힙입어 2020년 빗썸 매출은 2192억 원, 당기순이익은 1275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매출(1447억 원)과 당기순이익(130억 원)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좋아졌다. 따라서 본래 넥슨과 협의되던 가격은 5000억 원이었는데 협상 과정에서 이정훈 의장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복수의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넥슨은 5000억 원을, 빗썸은 7000억 원부터 수조 원대까지를 매각대금으로 제시 중이다. 가격 차이로 물밑협상이 길어지고 있으며 이견이 좁히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 사이 빗썸이 다른 투자자들과도 접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수전은 한층 복잡해졌다.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JP모건, 글로벌 신용카드 브랜드 비자,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후오비글로벌, 국내 빅테크 네이버 등이 빗썸과 접촉했다는 소식이 최근 증권가에 퍼졌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고공행진을 거듭한 비트코인 시세로 몸값이 뛰면서 넥슨과 가격 협상이 길어지는 듯하다. 많은 후보군이 거론되지만 여전히 넥슨이 가장 유망할 것으로 보이는데 진척되는 움직임은 없다”며 “들려오는 후보들은 많지만 빗썸과 미팅만 했을 뿐 인수 의지와 무관하게 언급된 곳도 있다”고 봤다.
다른 후보군 역시 높아진 빗썸의 눈높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빗썸의 지배구조도 복잡해서 실소유주 논란이 있고 아직 경영권 분쟁 중이라 매각 주체가 누군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정훈 의장이 매각 주체지만 그와 대척점에 선 주주 비덴트가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덴트는 빗썸 지분 10.29%, 빗썸홀딩스 지분 34.24%를 보유하고 있다. 이정훈 의장의 빗썸홀딩스 지분율이 명확하게 공개되진 않았으나 디에이에이(빗썸홀딩스 지분율 30%)·BTHMB HOLDINGS(10.7%)와 기타주주(25.06%) 등이 그의 우군으로 파악된다.
온갖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비싼 가격에 인수하기는 부담이고, 매수자는 물론 빗썸 주주들 간에도 이해관계가 달라 인수전이 성공리에 마무리되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지배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협상 파트너들도 빗썸의 요구 사항이 자주 바뀌어 협상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1위 빗썸코리아(빗썸)의 인수전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은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체계…이번에도 매각 발목 잡나
이런 가운데 네이버의 인수전 참여 소문은 시장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현지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네이버는 현재 클라우드와 AI 등 IT 관련 서비스와 콘텐츠, 커머스 등 플랫폼 자체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또 금융당국의 규제에 민감하기에 비싼 가격에 잡음 많은 빗썸을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네이버는 일본에서 이미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고 투자할 다른 사업도 많은데 굳이 거래소를 살 가능성은 적다. 넥슨과 가격 경쟁을 해가면서 인수하려고 들진 않을 것”이라며 “네이버 투자팀과 빗썸이 만나서 미팅을 진행했다는 얘기를 IB 측에서 흘리면서 화제가 됐지만 미팅을 했다는 정도지 인수 의지가 크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JP모건 등 미국계 자본도 빗썸의 주먹구구식 조직문화로 매력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빗썸의 경영체제는 굉장히 주먹구구식으로 2019년 미국 진출을 하려다가 접촉했던 투자자들이 학을 떼면서 무산됐다는 후문이 있다”며 “명확한 지시 전달 및 문서화 시스템이 없어 구두로 말해놓고 수시로 말이 바뀌는 등 구조적 문제가 있는 듯하다”고 예측했다.
이와 관련,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도 “네이버는 워낙 정부의 관심을 많이 받는 기업이기에 빗썸을 인수할 것인지 의문이고, 해외금융사가 거래소를 사는 것도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 본업과 연관성도 찾아야 한다”며 “변수는 결국 복잡한 지배구조와 매수자와의 가격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라고 짚었다.
앞서 2018년 성형외과 의사 출신 김병건 BK그룹 회장은 컨소시엄을 꾸리고 빗썸 인수에 나섰지만 매각대금을 다 치르지 못했다. 같은 해 빗썸 지주사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아티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우회상장 논란도 일었다. 2019년엔 자동차 카펫 제조 전문업체 두올산업이 빗썸 인수를 추진 중인 김병건 회장의 자회사 SG BK그룹의 새 주인으로 올라서는 형태로 빗썸 인수를 시도했지만 자금 조달 실패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한편 빗썸 인수와 관련해 투자자들 중 모건스탠리와 네이버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NXC와 빗썸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