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 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초 석 씨와 딸 김 씨의 관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석 씨는 친자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던 수사 초기 당시 사건 참고인 조사에서 “평소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외손녀가 방치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김 씨가 10대 후반에 집을 나가 동거하면서 사실상 석 씨와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같은 빌라의 2층과 3층에 살았지만 왕래는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도 석 씨의 가족을 두고 “정상적 가족 관계가 아니었고, 가족 간에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을 풀 수 없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봐야 단서를 잡을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껏 두 사람의 관계는 ‘절연’에 가까운 것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최근 구미에서 만난 모녀의 측근은 “두 사람의 사이가 전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한 지인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김 씨가 평소 지인들에게 엄마 석 씨와의 카톡 내용을 캡처해 보냈다”며 “직접 본 것이 여러 개이고 내용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씨가 출산 후 몸조리를 석 씨의 집에서 했으며 이후에도 몇 개월 동안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친정집에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밖에도 모녀가 사실상 인연을 끊은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은 계속해서 드러났다. 또 다른 지인은 같은 빌라의 2층과 3층에 살았던 두 사람의 왕래가 잦았으며 석 씨 부부가 ‘아이가 보고싶다’고 하면 김 씨 부부가 곧잘 아이를 데리고 가곤 했다고 한다.
엄마는 딸 집에 생필품이 떨어지면 사다주기도 했다. 김 씨의 한 측근은 “김 씨가 석 씨에게 아이와 관련된 생필품이 떨어졌다고 연락하면 석 씨가 이를 주문해주거나 사서 보내기도 했다. 관계가 나쁘다거나 연을 끊은 사이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이는 석 씨가 앞선 참고인 조사에서 “평소 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진술한 것과는 상반된다.
일각에서는 ‘석 씨의 출산과 임신이 사실이라면, 가족들이 정말 몰랐을 수 있냐’는 의문도 나왔다. 현재 석 씨의 남편은 석 씨는 절대 임신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서 직접 석 씨의 사진을 공개하며 “임신한 사람의 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진 속 석 씨의 모습은 임신부의 체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녀의 지인은 기자에게 “방송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석 씨가) ‘저렇게 살이 쪘었던가?’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고 말했다. 즉, 측근이 기억하는 평소의 석 씨는 사진 속 모습보다 더 날씬한 체형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석 씨의 임신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며 살이 쪄 보인다는 얘기일 뿐 임신부로 보인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사진이나 체형만으로 임신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한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의 프랑스인 남편도 부인의 날씬한 몸을 근거로 “아내는 출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DNA 결과를 부정했으나, 한국과 프랑스 양국 수사 결과 DNA 검사에는 오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선례로 볼 때 ‘임신부 치고는 날씬한 체형’이 DNA 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편, 일부 지인들은 아이를 무척이나 예뻐했던 김 씨가 이런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그가 숨진 아이를 양육할 당시만 해도 매우 애지중지하며 키웠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 씨가 아이의 작은 변화도 알아차리고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했다. 김 씨의 외도로 이혼까지 하게 된 전남편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 씨 혼자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위에 말을 했다고 한다.
석 씨는 줄곧 출산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사진=SBS 방송 영상 캡처
이 때문에 김 씨가 그토록 아끼던 아이를 버리고 혼자 집을 떠난 이유를 두고도 여러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김 씨가 재혼을 해 지금의 남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계속 키우기가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김 씨는 아이를 버리고 인근 빌라로 이사를 간 지난해 8월 남자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남편과 오래전 헤어졌는데 경제적 문제 등으로 양육이 힘들었다”며 아이를 방치하고 떠난 사실을 인정했다.
김 씨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지난해 초 이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생활하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로 인해 모녀관계가 급격히 나빠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녀관계가 좋았다는 지인의 증언 대부분은 두 사람이 같은 빌라에 살았던 2018~2020년 초에 몰려있었다. 김 씨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면서 최근 석 씨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져 아이를 두고 집을 떠났을 수 있다. 수사 초기 석 씨가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평소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토록 딸에 대한 모정이 강한 여성이었다면 사라진 자신의 친딸을 찾는 행보를 보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행적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 역시 김 씨와 전남편이 모두 최근에야 친모가 석 씨라는 사실을 알았고 처음에는 전혀 믿지 못하는 반응이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경찰 관계자도 “김 씨에게 숨진 아이와 석 씨의 관계를 알려주었는데 믿지 못했다”며 김 씨는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검이 실시한 다섯 번째 DNA 검사에서도 석 씨와 숨진 아이는 친자관계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석 씨 가족은 여전히 DNA 검사의 오류를 주장하고 있다. 앞서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딸 김 씨가) 아이를 빌라에 두고 떠났고, 아이가 사망한 것에 대해선 당연히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가족들도 아이를 지키지 못해 후회와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다만 수많은 루머에 대해서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석 씨의 출산 사실 자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여전히 수사는 답보상태다. 현재 경찰과 검찰은 DNA 검사 결과는 얻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는 충분히 모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지 못할 경우 ‘빼돌리기’인 약취죄의 공소 유지가 가능하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 씨 전남편, ‘장례식에 안왔다’ 오보에 괴로워해 구미에서 만난 석 씨 모녀 지인들에 따르면 요즘 김 씨의 전남편은 사라진 친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한다. 친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놀란 김 씨 전남편 A 씨는 친딸로 알았던 아이가 장모가 낳은 아이, 다시 말해 처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실제 친딸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일부 매체의 오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 방송사에서 사건 초기에 김 씨의 전남편이자 숨진 아이의 친부였던 A 씨가 이혼 당시 아이를 버리고 갔으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도한 까닭이다. 일요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당시 지인들과 아이의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인이었던 석 씨 남편도 만났다고 한다. 현재 A 씨는 구미 지역의 보육원과 아동복지 시설 등을 방문해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고 있다. 경찰의 수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아이가 A 씨의 친자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미 등 인근 지역에서는 A 씨에 대해 ‘아이를 버리고 갔다’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근 숨진 아이의 혈액형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A 씨의 혈액형이 잘못 알려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 A 씨의 혈액형은 AB형인데 다수의 매체에서 O형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에 A 씨는 헌혈증서 등을 증거로 자신의 혈액형을 해명해야만 했다. 최근 A 씨와 통화했다는 한 지인은 “A 씨 역시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며 사실관계 확인 없이 쏟아지는 보도로 상처를 입고 있다”며 “부디 정확한 취재 후 기사를 작성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구미=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