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결혼식을 올린 김 씨와 박 씨. 양가 부모님과 함께 촬영한 모습. 사진=박 씨 제공
김 씨와 박 씨 사이를 단순하게 사실혼으로 표현하기에는 사연이 깊다. 박 씨의 형부인 최 아무개 씨는 “김 씨와 박 씨는 10년을 연애했고 여러 지인을 모시고 결혼 축하까지 받았다. 장인, 장모가 친아들보다 더 사랑해줬고 매해 김 씨를 사위라고 여겨 생일도 챙겨줬다. 명절 때는 복돈도 꼭 챙겨줬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김 씨와 박 씨가 만난 건 21세 때였다. 둘은 물류회사 거래처 직원으로 서로를 알게 됐다. 이들은 얼마 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김 씨는 군대 복무 후 물류회사가 아닌 대부업계로 이직했다. 10년 연애 뒤 이들은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서 둘은 ‘2년 신혼 생활 후 2세를 갖고 그때 혼인신고 하자’고 합의했다. 이들은 여느 부부처럼 양가에서 축복받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2년 뒤 박 씨가 신설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서 2세 계획이 미뤄지게 됐다. 신설 회사이다 보니 업무가 많고 야근도 잦았다. 김 씨도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출퇴근하면서 술 약속이 있을 때면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외박을 하기도 했다. 박 씨는 “당시에는 외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같이 있는 직원들과도 통화로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와 박 씨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2010년쯤 김 씨가 퇴사하면서다. 김 씨가 퇴사 이후 직장을 알아봤지만, 알아본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이 직전 회사에 비해 크게 적었다. 그런 까닭에 김 씨는 2012년 퇴직금 등으로 선술집을 차리면서 장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선술집이 잘되지 않았다.
김 씨는 선술집 장사를 시작한 이후 생활비를 보태지 않았다. 수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약 1년 만에 선술집을 접었다. 박 씨는 “선술집 장사 실패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일어난 변곡점 같다. 당시 산부인과에서 배란일을 받아와 남편에 알렸는데 그때부터 술 마시고 들어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돈벌이가 없어지자 박 씨에게 월 200만 원 정도를 요구하게 된다. 이 같은 내용은 판결문에도 드러난다. 피해자인 박 씨는 법정에서 “김 씨가 무절제한 소비로 월 300만 원씩 신용카드를 사용해 가계에 큰 부담이 됐다”고 진술했다.
다행인 건 박 씨가 2014년부터 다니던 직장에서 배운 해외물류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박 씨는 이 사업을 통해 꽤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 비록 김 씨는 생활비를 주지 않고 용돈을 타 썼지만 박 씨는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지원해줬다고 한다. 김 씨는 박 씨 명의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사용하는 일이 잦았다. 박 씨는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싸우기도 했지만 김 씨를 절대적인 믿음으로 지원했다. 내 남편 나가서 기죽지 말라고 계절마다 옷 사주고, 벤츠도 사줬다. 그랬더니 바람이 나더라”라고 한숨을 쉬었다.
2016년 6월경 김 씨는 박 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김 씨는 “대부업체에 투자를 하고 투자금 대비 30%를 수익금으로 받는 사업이 있다. 사업 자금으로 3억 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생활비 상당의 수익금을 벌 수 있는데 돈이 부족하면 적어도 2억 원은 투자해야 하니 2억 원을 빌려 달라. 투자를 해 받는 수익금으로 돈을 갚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금 5000만 원과 5000만 원권 수표 2장을 남편에게 줬다.
김 씨가 박 씨에게 투자금 목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메시지. 사진=박 씨 제공
재판부는 “둘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대화 내용으로 비춰볼 때 박 씨 주장이 일치해 신빙성이 있다”면서 “김 씨가 ‘사업하려면 3억 원은 필요하다‘거나, ’2년 동안 벌어서 1억 5000만 원 지원해줬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내용 등을 볼 때 김 씨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이렇게 받아낸 돈을 사업자금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박 씨에게 받은 1억 원 수표를 입금하고 그 가운데 9900만 원을 내연녀 정 아무개 씨에게 이체했다. 이 돈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내연녀와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식당을 차리는 데 쓰였다.
박 씨가 이들의 관계를 알아차린 건 2017년 4월이다. 김 씨는 제주도에 지인들과 골프 치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박 씨가 알기로는 김 씨가 현금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도 식당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갑자기 박 씨는 궁금증이 들어 식당에 전화해 남편 일행이 몇 명 왔다갔는지 물었다. 여자 2명, 남자 1명, 어린이 2명에 아기가 1명이라고 했다. 박 씨는 어떤 조합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바람이 났구나’ 싶었다고 했다.
2019년 박 씨는 사업이 어려워져 폐업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박 씨가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한 식당 공사현장에서 김 씨와 마주쳤다. 박 씨가 “여기 왜 있느냐”고 묻자 김 씨는 “지인이 식당 일을 잠시 도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내연녀와 차린 식당이었다.
김 씨는 휴대전화도 박 씨 명의로 된 것을 갖고 다녔다. 박 씨는 김 씨의 한 달 전화 사용내역을 뽑았고 그중 집 근처 중국집에 건 내역도 있었다. 박 씨는 중국집에 전화해 김 씨가 최근 주문했던 주소를 물어봤고 내연녀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도 알게 됐다. 김 씨의 외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김 씨는 내연녀 정 씨와의 사이에서 2015년, 2016년 아이를 둘 낳은 아빠였다. 제주도도 정 씨 가족과 함께 간 여행이었다.
박 씨는 그동안 지원한 차, 용돈, 카드값 등은 제쳐놓더라도 사업 투자금만큼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해 고소를 결심했다. 그러자 김 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재산을 정확히 반반 나누고 마무리하자”고 했다. 박 씨는 “사업도 어려워졌고 그를 지원하다 빚만 생겼는데 뭘 반반 하자는지 모르겠다. 빚을 반반 나눠 갚겠다는 건지 황당했다”고 분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사기가 인정돼 지난 3월 김 씨에게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투자금으로 받아간 돈을 정 씨와 출산한 두 아이를 부양하기 위한 생활비로 사용했고, 대부업체 투자를 위한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거나 수익으로 빚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항소했다. 박 씨는 “1년형이 선고됐지만 그가 법정구속 되지는 않았다. 변호사 선임할 돈은 있고 빚 갚을 돈은 없는지 묻고 싶다. 2심에서는 구속이 꼭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허무하게 보낸 젊은 날 세월을 생각하면 부모님께도 죄스럽고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빚만 남았다. 주변 친구들과 직원들도 내가 나쁜 생각 할까봐 돌아가면서 함께 지내줬다. 몸무게는 확 줄고 만신창이가 됐다”며 원통해 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